▲ 유명 작가의 이름만 믿고 작품을 사는 경우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 이중섭의 ‘소’ 가품들과 진품(오른쪽 아래). |
일명 ‘문화재 파수꾼’으로 불리는 문화재청의 문화재 감정위원들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문화재청 공인 감정위원은 국내 44명이 전부다. 이들은 공항이나 항만에 상주하며 문화재 감정을 통해 가품을 가려내고 해외로 문화재가 반출되는 것을 사전에 막는 일을 한다. 최근엔 국내 문화재나 예술품의 해외 반출이 쉽지 않을뿐더러 수지가 맞지 않아 반출 사례가 거의 없다고 한다. 따라서 감정위원들 중 일부는 감정에 관한 연구를 위해 종종 현장에 나가 국내 문화재나 예술품 감정을 한다고 한다.
문화재청 평택항 국제여객터미널 문화재감정관실의 김성한 감정위원이 전하는 기막힌 감정 세계의 비하인드 스토리 속으로 들어가봤다.
김 위원은 현재 5~6년째 문화재청의 감정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과거에는 5년 정도 경매 사회를 보는 등 고미술 감정 경험도 갖고 있다.
미술시장이 절정에 이르던 2007년 무렵, 김 위원은 평소 알고 지내던 수집가로부터 미술품 감정을 의뢰받았다. 자신이 15년 동안 소중히 간직했다던 이중섭의 ‘소’ 그림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작품은 수준이 한참 미달인 가짜였다. 뿐만 아니라 수집가가 소유하고 있던 다른 작품들도 거의 가짜 아니면 일명 ‘태작’이라 불리는 조잡한 작품들뿐이었다.
김 위원은 당시 수집가로부터 전해들은 입수 경위를 기자에게 들려줬다. 어느 날 소위 ‘나까마’라 칭하는 중간상인이 그 수집가를 찾아왔다. 그 중간상인은 이중섭의 ‘소’ 그림을 내 보이며 자기 고객의 어머니가 지금 교통사고가 나서 급전이 필요해 어쩔 수 없이 그림을 처분하려 한다며 당시 시세로 1억 정도 호가하는 그림을 2000만 원만 받으면 넘기겠다고 했다고 한다. 수집가는 진위 여부도 따지지 않고 이중섭이라는 이름에 현혹돼 800만 원에 가짜를 구입하게 됐다고 한다.
당시를 회고하며 안타까움을 토로하던 김 위원은 그 뒤 벌어진 더 황당했던 사연 하나를 마저 얘기했다. 김 위원은 그 일이 있고난 뒤 6개월 후쯤인 2007년 말, 다시 수집가의 집을 방문했다. 당시 재방문시엔 방 한 가득을 메웠던 가짜들이 안보였다고 한다. 김 위원이 수집가에게 그림의 행방을 묻자 모든 그림을 귀한 그림 한 점과 교환했다며 조심스레 맞바꾼 그림을 보여줬다고 한다. 그가 꺼낸 그림은 고 박수근 작가의 유화였다. 우리나라 미술시장에서 가장 고가에 거래되고 있는 바로 그 박수근 작가의 작품이다. 박 작가의 작품은 드로잉 작품만 수천만 원을 호가하고 유화작품은 이보다 20~30배의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작품을 보고는 이내 안타까움만 들었다. 그 작품 역시 찬찬히 뜯어볼 필요도 없이 가품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김 위원은 지난 번 감정 때 가짜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던 그의 모습이 떠올라 당시엔 그냥 말없이 돌아와야만 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은 “그렇게 작가 이름만 보고 작품을 구입하지 말라고 충고했지만 수집가 입장에서는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가품이 너무 쉽게 유통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 국보 제94호인 ‘청자참외모양꽃병’을 흉내 낸 가품은 일부러 파손한 후 발굴 당시 깨졌다는 등 이야기를 포장했다. 오른쪽이 진품. |
2009년 1월, 지방의 한 거대 골동품 수집가가 김 위원에게 도자기 감정을 의뢰해 왔다.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였다. 수집가가 조심스레 꺼낸 도자기는 인종 장릉에서 출토돼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국보 제94호인 ‘청자참외모양꽃병’과 거의 흡사했다.
김 위원은 도자기의 깨진 상태를 의심했다. 꽃병은 윗부분과 바닥이 부분 파손된 상태고 몸통에도 상처가 있었다. 수집가는 ‘몸통 상처는 땅에서 파낼 때 포클레인에 찍힌 자국이고 윗부분과 바닥은 그 옛날 매장 당시 파손된 것’이라며 친절히 설명했지만 깨진 부위가 인위적인 느낌이 들었다. 또 오히려 수집가의 장황한 설명이 신빙성을 떨어뜨렸다. 진품은 말이 필요 없지만 가짜는 포장된 이야기가 많다는 것이 김 위원의 철학이었다.
김 위원은 중국이나 북한에서 넘어 왔거나 위조품일 것이라 확신했다. 이유는 전날 김 위원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진짜 국보 제94호 청자화병을 손전등까지 비춰가며 유심히 살펴봤었기 때문이었다. 참외형 몸통의 굴곡과 아래 치마부분의 입체감이 진품에 비해 빈약했다. 또 김 위원이 청자 속 부분을 내시경 플래시로 비춰봤지만 ‘세월의 때’ 즉 ‘경년변화’의 흔적이 보이질 않았다.
김 위원은 “1%의 모순점을 찾아 해명하는 것이 감정이다. 나도 인간인지라 100%의 절대감정은 장담 못하지만 작품의 본질을 보려고 노력한다. 가짜의 가공된 이야기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
‘당신 딸…’ 협박에 목숨 걸고 감정
위작시비와 관련한 유명한 일화는 2005년 이중섭의 ‘물고기와 아이들’ 가짜 소동이다.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이 사건은 당시 이중섭의 차남이 진품이라며 경매에 가지고 나와 1억 2000만 원에 낙찰됐지만 바로 다음날 위작으로 판명이 나 국내 미술계에 큰 상처를 남겼다.
당시 감정위원들은 “진짜의 거침없는 선을 따라갈 수 없다. 위조된 그림 속의 발가락은 힘이 없이 그냥 동글동글하기만 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경매사 직원들은 “그런 소리 말아라. 이중섭 작가의 아들이 일본에서 직접 가져왔다”며 위작 여부를 부인했다.
당시 김성한 감정위원과 함께 위작 사실을 주장했던 어느 감정가는 위작 사실을 밝혀내는 과정에서 갖가지 협박에 시달렸다고 한다. 어느 날은 “당신 딸이 참 예쁘더라”는 협박 전화까지 받았다며 해당 감정위원은 세미나 자리에서 “나는 목숨을 걸고 감정을 합니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