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쩨쩨한 로맨스>의 한 장면. |
괴로운 출퇴근 생활을 접고 자유롭게 일하면서 경제활동도 가능한 프리랜서는 직장인들의 로망이다. 하지만 확실한 전문 분야가 없으면 현실적으로 이뤄지기 쉽지 않다. 외식 관련 회사에 다니는 H 씨(여·32)는 프리랜서의 삶을 시작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준비해 왔다. 지난 5월에 관련 자격증 시험도 합격했다.
“어릴 때부터 꽃을 좋아했는데 회사에 다니면서 잠시 잊고 있었어요. 4년차가 될 때부터 본격적으로 플로리스트 준비를 했습니다. 그전에는 계속 꽃을 가까이 하고 트렌드 공부만 했는데 서른 살 넘어가면서 구체적으로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했죠. 자격증을 땄어도 플로리스트로서 경력을 쌓으려면 당분간 직장생활을 병행해야 할 것 같아요. 힘들겠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으니 설레기도 하고요. 동료들은 아직 제가 무슨 일을 준비하는지 잘 몰라요. 그만두기 직전에야 말할 생각이에요.”
금융 관련 회사에 근무하는 E 씨(여·34)도 지금 하는 일과는 전혀 다른 일을 준비하고 있다. 프리랜서 그래픽 디자이너를 꿈꾸는 E 씨는 시간도 부족하고 스트레스도 많지만 평생 할 일을 찾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학 때부터 일러스트나 포토샵 등에 관심이 많아서 취미 삼아 공부를 했었어요. 취업은 전혀 상관없는 분야로 시작했지만 주말에는 간간히 브로슈어 작업 아르바이트도 했습니다. 그러다 디자인 관련 회사에 다니는 선배가 제가 한 작업을 보더니 현직에 있는 전문가 못지않다면서 제대로 배워서 나중에 프리랜서로 뛰어보라는 거예요. 본격적으로 배웠죠. 현재도 평일에 이틀씩 학원에 나가고 있어요. 강의가 끝나면 밤 10시가 넘고 그렇게 집에 갔다가 다음날 출근하려면 체력적으로 달리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도 과감하게 사표 쓰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참을 수 있어요.”
좀 더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위해 공부하는 직장인도 있다. 무역회사에 근무하는 Y 씨(34)는 6개월 전부터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결혼도 했고, 당장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는 상황이라 고민이 많았지만 또 다른 인생을 위해 도전하게 됐단다.
“웬만하면 다니던 회사 그냥 다니라는 충고를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마흔 살이 되면 슬슬 명예퇴직을 걱정하거나 분위기상 이직을 고려해야 하는 터라 30대에 접어들면서부터 걱정이 되기 시작했어요.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을 봐도 정년까지 가는 경우가 많지 않더라고요. 공직도 마찬가지겠지만 퇴직 걱정이 일반 회사만큼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2년 정도 고민하다가 요새는 본격적으로 준비 중입니다. 아침에 1시간 일찍 일어나고 퇴근 후 3~4시간 투자합니다. 이렇게 공부하다가 내년에는 회사 그만두고 제대로 준비해서 시험 볼 생각이에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평생을 대비하는 게 낫다고 봐요.”
IT회사에 근무하는 S 씨(32)도 올해 초부터 사이버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있다. 졸업 후 자격증을 따서 복지시설에서 일할 생각이라고.
“야근도 잦고 그만큼의 보상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사회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은 데다 직장생활을 하면 할수록 건강만 잃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직 젊으니 지금이라도 관심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노인층 인구가 늘면서 복지시설에 대한 전망도 좋더라고요. 동료들은 단순히 사회복지학에 대한 배움의 열망 때문인 줄 알지, 회사 그만두고 완전히 다른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줄은 모릅니다. 물론 지금 회사에서 쌓인 경력도 중요하고 그간의 시간도 아깝긴 하지만 현재보단 앞으로가 더 중요하니까요.”
젊을 때부터 창업을 준비하는 직장인들도 있다. 나이 들어 퇴직금 받아서 창업을 하면 늦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정보 없이 무작정 ‘좋다더라’ 해서 하는 창업은 원치 않는다. 음료회사에 다니다 이직을 위해 잠시 쉬고 있는 L 씨(33)는 디저트 학원 주말반을 등록했다. 이전 직장과 같은 업종에 있는 다른 회사로 이직하지만 그의 최종 목표는 디저트 카페다.
“직장생활을 오래할 생각은 없고요, 마흔 전에는 창업할 겁니다. 외식 창업을 하려면 그 음식을 만들 줄 알아야 하는데 퇴직 후 창업하는 분들 보면 생소한 분야에 뛰어들거든요. 잘 모르니까 실패하는 것 같아요. 전 확실하게 목표가 있으니까 제가 직접 만들 수 있을 때까지 공부할 겁니다. 전 동료들에게 꼭 하고 싶은 게 있다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카페나 디저트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다는 걸 아니까 정보도 많이 주고 그래요.”
의료기기 회사에 다니는 J 씨(여·31)도 서른다섯 살 전에 창업을 할 생각이다. 직장에 다니면서 평생을 마무리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피부 관리 학원에 다니고 있어요. 예전부터 좋아하고 관심 있었던 분야고 앞으로 수요가 더 늘면 늘었지 줄지 않을 것 같거든요. 이제는 평범한 직장여성들도 피부관리실에 일상적으로 다니고 하니까요. 학원비도 비싸고 직장생활과 같이 하는 게 벅차긴 해요. 그래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지금 힘든 게 낫죠. 40~50대에 새로운 걸 시작한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지금 다니는 회사도 나쁘진 않아요. 급여도 적은 편이 아니고 주 5일 근무에 야근도 거의 없거든요. 왜 다른 일을 생각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친구들이 더 많습니다. 하지만 향후 10년을 봤을 때는 지금부터 준비해서 창업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100세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인생 2모작이 아니라 3모작, 4모작이 필요할 수도 있는 일이다. 일찍부터 인생 2모작을 준비하는 젊은 직장인들이 대견해 보이는 이유다.
이다영 객원기자 dylee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