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송원 대표(왼쪽)와 홍라희 관장. |
홍송원 대표와 홍라희 관장의 관계가 가까웠다는 것은 이미 미술계에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 2007년 ‘삼성특검’ 때는 홍 대표도 소환조사를 받을 정도로 두 사람은 ‘운명공동체’나 다름없었다. 미술계에서도 ‘홍송원은 홍라희 사람’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다. 그렇게 가까웠던 두 사람이 최근 송사에 휘말리며 ‘루비콘강’을 건너고 만 것이다.
지난 20년 가까이 사실상 동업자로 지내왔던 홍 대표가 등을 돌린 이유는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 여러 가지 추측이 나오고 있지만 ‘홍 대표가 오리온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한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사실상 재벌가 안주인들과 등을 졌다’는 설명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
홍 대표는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스틸 라이프’ 등 오리온그룹 계열사 소유의 그림들을 담보로 380억 원을 대출받아 그중 188억 원을 횡령하고 오리온그룹 비자금 40억 원을 은닉해준 혐의 등으로 지난 몇 달간 검찰 수사를 받은 바 있다. 이와는 별개로 홍 대표는 오리온그룹 계열사 조 아무개 사장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벌여왔다. 홍 대표가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조 사장에게 소송을 제기했다는 것은 사실상 오리온그룹과 등을 졌다는 의미다. 뿐만 아니라 홍 대표는 검찰 소환 조사에서 오리온그룹 비자금 의혹과 관련해 오리온 측에 불리한 진술을 했다는 것이 검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결국 이런저런 계기로 재벌가와 멀어지게 된 홍 대표가 ‘그동안 돌려받지 못했던 돈이라도 받아야 겠다’는 마음으로 소송을 걸었고 그 첫 번째 타깃이 홍라희 관장이었다는 것. 홍 관장은 재계 1위 삼성그룹 안주인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서미갤러리와 가장 많은 거래를 해왔다.
그간 서미갤러리는 재벌가 안주인들의 가교 역할을 담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서미갤러리를 통해 미술품뿐만 아니라 부동산이나 귀금속 등도 거래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서미갤러리의 자회사는 한때 유력 재벌가의 안주인들이 지분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홍라희 관장이나 이화경 오리온그룹 사장 모두 서미갤러리의 주 고객이었다. 뿐만 아니라 D 그룹 안주인인 P 씨나 또 다른 D 그룹 회장 부인인 L 씨 역시 서미갤러리를 자주 드나들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갤러리들의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중견기업 회장은 “과거 이재용 사장과 임세령 씨의 경우도 양가 부모들이 갤러리를 통해 자주 어울리면서 혼사가 오갔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미술계에서는 홍 대표가 재벌가 안주인들의 미술품 거래를 대행했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가까웠다는 점에서 그들의 은밀한 부분까지 세세하게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한편 검찰은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그림 로비 의혹과 오리온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 수사하는 과정에서 서미갤러리뿐만 아니라 홍 대표의 자택까지 압수수색했다. 검찰 관계자는 “(압수수색을 통해) 관련 사건 이외에도 흥미로운 내용을 많이 발견했다”고 전했다. 검찰 안팎에서는 검찰이 확보한 내용 중에 유력 재벌가의 미술품이나 부동산 거래 내용 등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검찰이 압수수색을 통해 찾아낸 내용들을 먼저 나서서 들여다볼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홍 대표가 적극적으로 입을 열 가능성은 적지 않다. 홍 대표가 홍 관장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 역시 홍 대표가 ‘히든카드’를 쥐고 있지 않으면 섣불리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미술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한 미술계 종사자는 “결국 이번 소송은 구속까지 당하며 궁지에 몰린 홍 대표가 다른 재벌가 안주인들에게도 던지는 일종의 메시지인 셈”이라며 “재계가 홍 대표와 홍 관장이 벌이는 민사소송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