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이후 한화의 급격한 상승세는 김승연 회장의 야구단 쇄신책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사진은 5월 11일 한화 대 LG 경기에서 장성호의 역점 홈런으로 경기를 뒤집은 한화 선수들이 환호하는 모습. 연합뉴스 |
“그룹 오너가 나서니 팀 분위기가 확 바뀌네요. 한화그룹 내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야구단 위상이 이젠 달라졌습니다. 선수들도 숨겨뒀던 승부욕을 꺼내 200% 이상 실력을 발휘하고 있어요. 다른 구단들도 이젠 우리 한화를 상대하기 껄끄러운 팀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팀 분위기에 덩달아 신이 난 한화 이글스 구단 관계자의 이야기다. 지난 5월 15일, 한화그룹은 대대적인 야구단 개편에 나섰다. 일차적으로 대표이사와 단장을 전면 교체했다. 대덕테크노밸리 개발사업을 진두지휘한 정승진 대표를 한화 이글스 대표로 선임하고, 한화그룹 내 기획통으로 평가받는 노재덕 상무를 단장 자리에 앉혔다.
코칭스태프의 보직도 변경했다. 1군과 2군의 투·타 코치를 모두 교체해 분위기 전환을 꾀했다. 구단 직원의 대우도 달라졌다. 야구단 직원들의 연봉을 한화그룹 계열사 가운데 최고로 알려진 한화케미칼 수준에 맞췄다. 홍보팀 전용으로 중형차 한 대도 지원받았다.
선수단 투자도 과감해졌다. 현재 한화는 2군 전용 구장 건립과 대전 한밭야구장 리모델링을 추진 중이다. 또한 지난해까지 롯데 자이언츠에서 강타자로 활약하던 멕시코 출신 카림 가르시아를 영입하는 등 우수 선수 확보를 통해 명문 구단으로 도약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구단 관계자는 “숙소 리모델링과 실내 연습구장 건립도 추진 중이다. 스카우트 인력도 8명으로 늘어났다. 선수단 보약도 준비 중이다. 선수들이 더 힘을 낼 것”이라고 전했다.
사실 지난 2년간 계속된 한화의 부진을 두고 오너의 무관심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8개 구단 중 유일하게 2군 전용구장이 없었던 한화다. 인근 청주구장이 있긴 하지만 고정적으로 운동장을 확보하지 못한 탓에 선수들은 훈련에 애를 먹어왔다. 지난 2007년 한화와 대덕구가 신탄진 인근에 2군 연습구장을 짓기 위한 협약을 체결했으나 4년째 제자리걸음이었다. 보다 못한 염홍철 대전시장이 “한화의 연습장 겸 2군 경기장 추진, 제가 더 급하네요”란 글을 트위터에 올려 답답함을 토로한 바 있다.
뿐만 아니다. 한화의 스카우트 인력은 8개 구단 중 가장 부실했다. 전국에 퍼져 있는 유망주들을 단 2명의 스카우트가 발굴해왔다. 이는 8명에 달하는 LG 트윈스 스카우트팀의 4분의 1 수준. 팀의 하락세에도 불구하고 그룹의 무관심 경영이 계속되자 지난 5월, 인터넷 포털 다음 아고라에선 김 회장에 대한 야구팬들의 청원 운동이 일어났다. ‘제대로 된 투자를 하든지 아니면 야구단 매각을 하라’는 비난이었다.
구단 관계자는 “최근 한화그룹 상황이 워낙 안 좋지 않았나. 야구단 입장에선 충분한 예산이 확보됐음에도 눈치가 보여 제대로 쓰질 못했던 거다. 야구단 태생이 기업이다 보니 구단을 운영할 때 그룹의 상황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한화의 2연속 최하위 기록도 그룹 분위기와 맥을 같이 했던 것”이라며 “이번에 그룹 차원에서 예산 외 비용을 들여 지원을 자청한 덕분에 한화도 이제야 겨우 미뤄왔던 계획들을 추진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귀띔했다.
각종 구설수에 오르기 전까지만 해도 김 회장의 야구사랑은 각별했다. 그는 실업야구단을 창단하겠다던 김종희 선대회장의 유지를 받아 프로야구 제7구단을 창단했다. 11억 원을 투자해 대전구장을 개축, 보수하는 한편 4억 4000만 원을 들여 청주구장에 야간조명 시설을 설치했다.
오너의 관심에 힘을 얻은 한화 이글스는 1992년 페넌트레이스 1위 외에도 한국시리즈 준우승 5회의 만만찮은 실력을 보였고, 20세기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김 회장의 ‘야구애’는 그의 세 아들에게도 이어졌고, 이들은 야구장을 자주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로 일반석에 앉아 팬들과 함께 응원을 한다고.
얼마 전 검찰의 비자금 수사가 마무리 되자 그룹 분위기는 서서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지난 5월, “필요하다면 우리의 영혼마저도 미래형으로 혁신해나가자”며 의지를 보인 김 회장은 야구단에 다시금 애정을 보이며 대대적인 지원을 약속했고, 그의 특별지시는 침체돼있던 한화의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김 회장은 스포츠 마니아답게 비인기 종목에 대한 관심도 크다. 그는 15년간 대한아마복싱연맹 회장을 맡아 체육인으로서 또 다른 면모를 보였다. 정규예산 75억 원 외에도 각종 행사비와 포상금 23억 원 등 총 100억 원의 예산을 지원했고, 외국인 코치를 초빙해 경기력 향상과 선수 저변 확대에 기여했다.
특히 1984년 LA올림픽 때는 불공정한 심판 판정에 적극 항의해 미국의 엄청난 텃세를 물리친 바 있다. 편파 판정 심판을 공식 제소, 국제복싱연맹을 통해 조직적인 이의를 제기하는 등 강경 대응으로 주목을 받았고, 이 같은 김 회장의 노력에 보답이라도 하듯 한국은 복싱사상 최초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마복싱 관계자는 “당시 올림픽 심판들을 휘어잡는 김 회장의 리더십에 모두 놀라고 말았다. 링에 서 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선수 입장을 헤아릴 줄 알더라”고 전했다.
그러나 4년 전 어긋난 아들사랑으로 보복폭행 사건이 빚어지면서 김 회장은 암초를 만났다. 당시 사건은 복싱계에서 쌓은 김 회장의 명성을 한순간에 무너뜨리고 말았다. 하지만 시련의 폭풍이 지나간 뒤 그는 스포츠 사랑을 통해 다시 한 걸음씩 정상의 자리로 오르고 있다.
김 회장은 지난 2002년부터 사격연맹 명예회장직을 맡아 한국 사격의 재정적인 후원자로 나서기도 했다. 한화 계열사인 한화갤러리아를 통해 ‘갤러리아사격단’을 창단하고, ‘한화회장배’ 사격대회를 창설했다. 사격연맹 관계자는 “충분한 지원 덕분에 공기소총뿐 아니라 권총 클레이 등 다양한 사격 종목 후원이 가능해졌다. 광저우아시안게임을 비롯, 각종 국제대회에서 보인 한국 사격의 선전도 든든한 지원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고 전했다.
그룹 조직 개편을 시작으로 올 한 해 혁신의 칼을 뽑아든 김승연 회장. 그가 그간의 시련을 뒤로하고 한화 이글스의 부활에 발 맞춰 날아오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
비온 뒤 땅 굳자 장애물 풀쩍풀쩍
▲ 김승연 회장이 2006도하아시안게임 마장마술 단체전에 출전한 막내 아들 김동선이 금메달을 딴 직후 축하해주고 있다. |
그렇게 잘 달리던 승마선수 김동선은 그러나 지난해 광저우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선수 생명을 마감할 뻔한 사건에 휘말린다. 호텔주점에서의 폭행 등으로 재물손괴 혐의로 경찰에 불구속 입건돼 구설수에 올랐던 것.
폭행 사건에 연루된 선수의 대표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는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이러한 여론에도 불구, 김 선수의 대표 자격은 유지됐고 그는 재벌가 자제 특혜 논란 속에서 광저우아시안게임 마장마술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했다.
당시 아시안게임 마장마술대표팀 신창무 코치는 “안 좋은 일이 있었던 만큼 실력으로 보답하겠다면서 더 노력하더라. 실제 한국팀 경기력에 큰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승마 선수로서의 그의 장점은 열정이라고. 신 코치는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지 항상 연구를 한다. 기술 습득에 대한 열의가 있다. 말 위에서 약간 흔들리는 단점만 보강한다면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아이비리그 다트머스대학에 재학 중인 그는 학업과 승마를 병행하고 있다. 각종 구설수에도 불구하고 국가대표로서 금메달을 목에 건 김동선. 부전자전이랄까. 그간의 김승연 회장의 행보와 짐짓 닮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