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모르던 시절 개인 홈페이지에 남긴 한 줄의 글 때문에 유명 아이돌 그룹의 인기 멤버가 팀을 탈퇴했고, 포털 사이트에 군 면제 방법에 관한 질문을 올린 인기 가수는 이후 네티즌들의 집중공격을 받았다. 모두 온라인에 ‘흔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연예인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직장인들도 알게 모르게 남겨진 온라인 활동 기록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기본적으로 인터넷은 공개된 공간이라는 사실을 망각해 낭패를 겪는 것이다. 무심코 쓴 글은 종종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온라인에 남긴 흔적 때문에 식은땀이 난다는 직장인들의 이야기를 모아봤다.
일반적으로 개인 홈페이지나 메신저는 지극히 사적인 공간으로 취급된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정보가 흘러나가기도 한다. 무역회사에 근무하는 O 씨(여·28)는 얼마 전 개인 홈페이지의 사진을 모두 비공개로 바꿨다. 직장 상사가 자신의 홈페이지를 자주 드나든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팀원들과는 사내 메신저 말고 포털 사이트의 메신저도 이용하고 있어요. 메신저에서 개인 홈페이지로 바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좀 꺼려지긴 했지만 사적인 부분은 지켜주겠지 하고 생각했죠. 그런데 얼마 전 우연히 상사가 제 홈페이지를 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동료들과 여행 이야기를 하는데 상사가 저보고 갔다 왔으니 잘 알지 않느냐며 묻는 거예요. 전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거든요. 알고 봤더니 제 홈페이지를 본 거죠. 굉장히 기분이 나쁘더라고요. 마치 누군가 제 일기장을 훔쳐본 느낌이었죠. 바닷가에 놀러가서 비키니를 입고 찍은 사진이나 망가진 표정의 ‘셀카’ 등 각종 사진들이 있었거든요.”
식음료 회사에 다니는 S 씨(여·26)도 온라인 흔적 때문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을 겪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내 메신저 기능을 미처 다 파악하지 못해 생긴 일이다.
“전에 데이터 저장용으로 쓰던 컴퓨터를 제가 쓰게 됐어요. 업무 관련 자료가 좀 있어서 다른 분들이 가끔 사용하기도 해요.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과장님이 갑자기 저를 부르더니 일이 많이 힘드냐고 묻더군요. 이후에 다른 부서의 동기한테 영문을 알 수 없다고 했더니 혹시 메신저 기록을 안 지웠느냐고 하는 겁니다. 사적으로 쓰는 메신저는 내용 저장 여부를 묻는데, 사내 메신저는 그런 게 없어서 기록이 남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게 착각이었어요. 그동안 자동 저장된 대화들이 클릭 한 번에 주르륵 다 뜨지 뭐예요. 쌍욕만 안 나왔지 심한 말도 많이 했는데 말이죠. 흔적을 바로 싹 지웠지만 그 과장님을 볼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렸어요.”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이 있다. 업무와 관계없는 온라인 사이트에서 활동을 했어도 흔적이 남을 수가 있다. 특히 온라인에서는 아무리 위장을 해도 아는 사람은 안다. 자동차 관련 회사에 근무하는 C 씨(여·29)는 요즘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 공간이 없어 답답하다고 호소했다. 그동안 회사에서 생긴 에피소드를 인터넷 공간에서 풀어놓으면 공감하는 댓글들이 많아 위로를 받곤 했는데 이제는 그런 재미가 없어졌다고.
“많은 직장인들이 이용하는 인터넷 취업 카페가 있어요. 직장인들의 애환이 담긴 글이 자주 올라옵니다. 얼굴을 알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에 마음 놓고 상사 흉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죠. 저는 글을 재미있게 쓰는 편이라 공감해주는 댓글들도 많았어요. 마지막으로 썼던 글도 특정 상사를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내용이었는데요, 어떤 분이 제가 다니는 회사와 부서를 언급하면서 ‘거기 맞죠?’ 하고 댓글을 달았는데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그 상황에 있던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자주 등장하는 그 상사가 아닌가 싶어 겁이 덜컥 났어요. 이후 그간 썼던 글을 다 지우고 지금은 조용히 지내고 있습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크게 유행하고 있지만 상사와 연결되는 것에 대해선 ‘노 땡큐’를 외치는 직장인들이 많다. 금융회사에 근무하는 L 씨(30)는 상사와 엮이지 않기 위해서 상사의 트위터를 먼저 팔로잉(트위터에 올린 글을 받아보는 것)했단다.
“얼마 전에 동료가 걱정을 하더라고요. 팀장님이 먼저 팔로잉을 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됐는데 그것도 모르고 그동안 회사 얘기를 한 적이 많다고 하면서요. 다행히 아직 제 트위터를 팀장님이 모르시더군요. 그래서 선수 쳤습니다. 새로운 계정을 하나 더 만들어 팀장님을 팔로잉했습니다. 제가 사적으로 쓰던 트위터 계정과 팔로어들을 팀장님 모르게 그대로 살려두려면 이 방법밖에는 없더라고요. 그리고는 트위터에서 회사 관련 글들은 대부분 삭제했습니다. 팀장님이 제가 개인적으로 쓰는 트위터를 알아낼 리는 거의 없겠지만 또 혹시 모르니까요.”
이제 이직을 준비할 때도 온라인 흔적 체크는 필수다. 지원자의 인성을 단 한 번의 면접보다는 그간의 온라인 행적까지 더해 파악하는 기업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IT 회사에 다니는 P 씨(32)도 이런 상황이 이젠 남의 일만은 아닌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가까운 친구들도 기억나지 않는 오래된 인터넷 활동 기록들까지 들춰보고 있더란다.
“최근에 친구한테 연락이 왔어요. 제 홈페이지에 있는 예전 사진 몇 장을 비공개로 해달라고 말이죠. 20대 때 같이 여행 갔다가 밤새 술을 진탕 마시고 널브러져 있는 사진들이 몇 장 있었거든요. 이직을 준비하고 있는데 요새는 온라인 흔적까지 철저하게 보는 회사들이 많다면서 부탁하더라고요. 그 친구는 오래 전부터 꾸준하게 온라인 기록들을 체크하고 관리해온 것 같았어요. 저도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인터넷 동호회에 올린 글이나 댓글도 쓸데없는 내용이나 과격한 댓글은 삭제한 후 탈퇴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흔적 관리도 철저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화학 관련 업체에 다니는 Y 씨(31)도 온라인 활동 점검에 들어간 계기가 있다. 인터넷상에 얼마나 많은 흔적이 남아 있었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서부터다.
“어느 날 아는 선배가 유용한 프로그램이라고 보내줬는데요, 일명 ‘신상털기’ 프로그램이었어요. 이걸 실행시키고 제가 자주 사용하는 아이디를 입력하니 제가 활동한 온라인 흔적들이 고스란히 나오더라고요. 각종 포털은 물론이고 중고거래 사이트에 게임, IP 주소까지 사람들이 좀 모이는 사이트는 없는 게 없었죠. 누가 알아볼까 싶었던 정부나 종교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 댓글까지 다 나오니 찝찝하더군요. 요새는 시간 날 때마다 흔적 지우기에 ‘올인’하고 있습니다.”
온라인상에 올린 글들은 나를 대변한다. 인터넷상의 흔적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일종의 ‘증명’이다. 무사한 직장생활을 위해서는 이제 입은 물론, 손가락도 조심해야 하는 시대다.
이다영 객원기자 dylee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