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재완 신임 재정부 장관. 오른쪽은 재정부 장관 출신으로 산은금융지주 회장직에 오른 강만수 회장. |
지난 5월 25일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소장파들이 모인 ‘새로운 한나라’ 모임에서 이명박 정부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에 대한 강도 높은 비난이 쏟아졌다. 4·27 재·보궐 선거의 패배를 불러온 민심이반이 강만수 사단이 진행해온 고환율, 감세정책 등 재벌과 대기업을 위한 정책 때문이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비록 경제가 회복되기는 했지만 재벌과 대기업의 배만 불렸고, 서민은 물가 인상과 생활고에 시달리게 됐다는 것이었다. 이미 재정부 장관을 그만두고 대통령 경제특보에서도 물러난 강 회장에 대한 비판이 지금 다시 쏟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한나라당 소장파의 움직임 배경에는 최근 이뤄지고 있는 기획재정부 인사에 대한 불안감이 깔려 있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강회장은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을 맡았지만 취임과 함께 추진했던 고환율 정책이 글로벌 금융위기와 맞물려 환율 불안을 가져오면서 온갖 비난을 받았다. 당시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서는 등 금융시장 불안이 극에 달했다. 또 감세 정책은 ‘가진 자만을 위한 부자감세’라는 공세에 시달렸다. 결국 강 회장은 재정부 장관을 사퇴할 수밖에 없었고 2009년 2월 윤증현 장관이 구원투수로 나섰다.
시장 신뢰가 높고 카리스마를 갖춘 윤 장관은 이후 2년 4개월 사이 한국 경제를 안정권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치솟는 물가를 잡는 데 실패하면서 4·27 재·보궐 선거에서 여당이 패배하자 ‘사퇴론’이 대두됐고, 결국 5월 31일 자리를 물러났다. 그 후임으로는 박재완 고용노동부 장관이 ‘수평이동’해 이 정부의 3번째 기획재정부 장관을 맡게 됐다.
문제는 박 장관이 재정부 장관을 맡게 되면서 재정부에 대한 강 회장의 입김이 세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윤 장관이 자리를 지킬 때만 해도 강 회장의 재정부에 대한 영향력은 제한적이었다. 윤 장관이 ‘따거’(큰 형님)로 불릴 정도로 부하직원들에 대한 장악력이 높은 데다 재정부 전 분야에 대해 두루 알고 있다 보니 재정부 내 강만수 사단이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적었다.
또 윤 장관의 임기 동안 강만수 사단이라 불릴 수 있는 재정부 간부들 중 몇몇은 외곽지대로 밀려났다. ‘최·신·최·강’(당시 최종구 국제금융국장, 신제윤 국제업무관리관, 최중경 차관, 강만수 장관)으로 불리던 환율매파 중에서 당시 최중경 차관은 고환율 정책 실패의 책임을 지고 필리핀 대사로 한국을 떠났다. 최종구 국제금융국장도 금융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신제윤 국제업무관리관은 자리를 지켰지만 그 이후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구성된 주요 20개국(G20) 회담의 주무를 맡아 환율에는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신 관리관은 한 달이 멀다 하고 G20 회담 사전 조율을 위해 해외출장을 다녔다.
강 회장이 재정부 장관이던 당시 대변인을 맡았던 김규옥 국장은 사회예산심의관으로 자리를 옮겼고, 장관 비서관이었던 최상목 국장은 미래전략정책관을 맡았다가 금융위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사무국장으로 임명돼 재정부를 떠났다. 윤 장관이 워낙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데다 이처럼 강만수 사단이 재정부 내에서 힘을 발휘하기 어려운 자리로 밀리면서 재정부에 미치는 강 회장의 입김은 상대적으로 약했다. 다만 강만수 사단을 외곽으로 밀어낸 인사를 한 것으로 알려진 한 재정부 간부는 강 회장의 미움을 받아 자신도 외곽으로 밀려나는 비운을 맛봤다.
그런데 윤 장관의 사퇴와 박 장관의 취임을 앞둔 요즘 이들 대부분은 재정부 등의 주요 포스트를 차지하고 있다. 최중경 차관은 이미 지식경제부 장관으로 복귀해 수출 강공 드라이브를 걸며 강만수 사단의 일원임을 명백하게 드러내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 상임위원은 지난 4월 10일 국제업무관리관으로 자리를 옮긴 뒤 기자실에 인사차 내려온 자리에서 환율 시장에 대한 강력한 구두개입을 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초기 ‘환율 야전사령관’으로 불리며 급변하는 시장 흐름에 맞서 수차례 고강도 개입에 나서 시장에 이름을 각인시킨 바 있다. 그는 이날도 2008년의 경험을 들어 최근 단기외채 급증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은행에 대한 고강도 경고를 했다.
금융위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사무국장에서 물러난 뒤 3개월 정도 자리 없이 지내던 최상목 국장도 최근 정책조정국장을 맡아 재정부로 복귀했다. 김규옥 국장은 차기 예산실장 1순위인 예산총괄심의관을 맡고 있다. 현재 류성걸 2차관이 박 장관과 같은 행시 23회로 퇴진이 유력한 상황이어서 김동연 예산실장의 2차관 임명 가능성이 높다. 대대로 재정부 2차관 자리는 예산실장 출신이 맡아왔다. 이렇게 되면 차기 예산실장에 김규옥 국장이 앉게 될 가능성이 크다.
역시 박 장관과 같은 23회 출신인 주영섭 세제실장이 관세청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면 그 자리에는 김낙회 조세정책관이 앉을 것으로 보인다. 김 국장도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 시절 경제 1분과에 비공식 형태로 파견돼 강 회장과 인연을 맺은 적이 있다.
사정이 이렇게 되면서 강 회장의 재정부에 대한 입김이 예전보다 강해지고 있다. 실제 최근 우리금융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 강 회장에 대해 재정부 관계자가 비판하는 발언을 한 기사가 난 뒤 재정부는 강 회장으로부터 강력한 항의 전화를 받았다. 재정부 대변인실이 나서서 ‘재정부 관계자가 말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해명자료까지 뿌릴 정도로 강 회장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
문제는 강 회장의 입김이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거시 경제정책 전반에 가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모피아(과거 재무부) 출신인 윤 전 장관은 나름의 확고한 경제정책 소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번에 재정부 장관에 임명된 박 장관의 경우 재무부에서 근무한 기간이 2년에 불과하다. 그것도 재무부 세제실에서 근무한 것이 전부다”면서 “박 장관이 거시 경제에 약하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강 회장의 입김이 커질 틈새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재정부 내에서 박 장관과 인연이 닿는 사람이 방문규 대변인에 불과할 정도로 자기 사람도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강만수 사단이 정권 막판 MB노믹스 부활을 내세우며 고환율, 수출주도, 감세 등을 추진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 소장파가 박 장관 취임 전부터 강만수 사단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에도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그러나 박 장관이 자신의 소신대로 조직을 운영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또 다른 재정부 관계자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박 장관이 고용노동부 장관 때도 자신의 소신을 가지고 강력하게 일을 해왔다고 들었다”면서 “재정부 장관이 주는 무게가 있는 만큼 윤 전 장관 때만큼은 아니겠지만 외풍에 대한 저항이 어느 정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서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