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대 대형 군납 비리사건 핵심 인물로 유명세를 탔던 로비스트 린다 김. 지난해 납품비리 수사 중 자살한 방산업체 전 대표 시신을 처음 발견한 것으로 드러나 주목된다. |
2010년 6월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는 군납비리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방산비리 척결을 강조해 온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었다. 검찰이 가장 먼저 칼을 들이댄 곳인 대기업 계열 방위산업체인 A 사. 검찰에 따르면 A 사는 또 다른 방산업체와 공모해 거래선에 중간상을 끼워 넣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이를 해외로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단순 납품 비리를 넘어서 A 사 모기업 오너 일가의 비자금 조성 의혹, 정·관계 로비 의혹까지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었다.
이를 위해 검찰은 A 사의 전 대표 B 씨를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해 조사를 벌였다. B 씨는 오너 일가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수사 당시 B 씨가 조사를 가장 많이 받았으며 (수사진은 B 씨를) 사실상의 공범으로 판단했다”며 “참고인에서 피의자로 신분이 바뀔 가능성이 높았다”고 말했다.
조사를 받던 B 씨는 그러나 6월 10일 오후 2시 30분경 서울 서초구 서초동 한 오피스텔 사무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B 씨가 남긴 유서에 검찰 수사를 비난하는 내용은 없었고, 별다른 자살 동기 또한 없었던 것으로 보아 검찰 수사에 대한 압박감이 원인이 된 게 아니냐는 것이 당시 검찰 안팎의 판단이었다. 핵심 참고인이었던 B 씨가 자살함에 따라 사건은 납품비리 선에서 마무리 지어졌다. 그런데 최근 검찰 내부에서 당시 구체적으로 수사하지 못했던 내용들에 대해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면서 그때 그 사건이 주목받고 있다.
이와 관련, 당시 B 씨의 시신을 가장 처음 발견한 사람이 바로 재미교포 로비스트로 유명한 린다 김 씨였다. B 씨 사정에 밝았던 한 인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살고 있는 김 씨가 한국에 오면 자주 들렀던 곳이 바로 B 씨가 자살했던 오피스텔이었다고 한다. 그 날도 김 씨가 평소처럼 오피스텔을 찾아갔다가 B 씨가 목을 맨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이후 김 씨는 관할 경찰서에 가서 관련 진술서를 작성했다.
B 씨가 일했던 A 사 관계자에 따르면 김 씨는 A 사와 미국 업체 사이를 연결해 준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A 사 전 대표였던 B 씨와도 가깝게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B 씨가 검찰 수사에서 핵심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았었던 만큼, 한때 무기중개상으로 일했던 김 씨가 B 씨를 통해 무기중개상으로 재기를 노렸던 것 아니냐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린다 김 씨는 무기중개업체를 운영한 ‘국제 로비스트’다. 1953년 경북 청도 출생으로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김 씨는 잠시 연예인 활동을 하다가 1979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서 무기상이 개최한 파티에 도우미로 일하다가 유명 무기상의 눈에 띄어 방산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1990년대 중반 대형 군납 비리 사건의 핵심 인물로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탔다. 1996년 국방부 통신감청용 정 찰기 도입 사업인 ‘백두사업’과 관련해 미국 군납업체 로비스트로 활동한 김 씨는 이양호 당시 국방부 장관과 ‘연서’를 주고받는 등 고위층과의 ‘부적절한 관계’ 논란을 낳기도 했다. 백두사업은 22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 대형 국방사업으로 김 씨를 고용한 미국 업체가 최종 사업자로 선정됐다.
이렇게 유명세를 탄 김 씨는 이후에도 꾸준히 국내 언론의 관심을 받아왔다. 2007년 이른바 ‘신정아 사건’이 터졌을 때 언론은 신 씨를 ‘제2의 린다 김’으로 표현했고 이에 대해 김 씨가 상당한 불쾌감을 표했다는 후문이다. 또한 2008년에는 강남의 대규모 부동산 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이 보도되기도 했고, 2009년에는 한 코스닥업체에 사기를 당해(<일요신문> 884호 보도) 업체 대표를 검찰에 고소하기도 했다.
한편 <일요신문>은 린다 김 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최근까지 그가 썼던 전화번호로 연락을 시도했다. 그러나 전화를 받은 여성이 “(린다 김의) 전화번호가 바뀌었다. 바뀐 번호는 나도 모른다”고 말하면서 전화를 서둘러 끊는 등 연락이 닿지 않았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