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작은 실수가 때로 의도하지 않은 부정적인 평판을 낳는다. 디자인 업체에 근무하는 H 씨(여·29)는 회사 내 평판에 억울한 점이 있다고 호소한다. 입사 초기의 작은 실수로 꼼꼼하지 못하다는 인식이 퍼졌다는 것.
“인쇄용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어요. 입사 초기에 관련 용어가 익숙하지 않기도 하고 업무 숙지에 정신이 없어서 몇 번 오타를 낸 적이 있습니다. 제 딴에는 담당자한테 확인을 받아 안심을 하고 인쇄를 넘겼지만 오타가 발생한 거죠. 분명히 담당자도 같이 확인했지만 오타에 대한 책임은 전부 제 탓이 되더라고요. 이런 일이 몇 번 있고 담당자만 믿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지금은 작업 후 제가 꼼꼼하게 확인해요. 그런데도 이미 ‘덜렁대는 스타일이라 중요한 작업을 맡기면 불안하다’는 인식이 박혀있더군요. 100% 제 잘못도 아닌 데다가 이제는 실수도 거의 없는데 평판은 바뀌지 않네요.”
유통회사에 근무하는 C 씨(32)도 회사 내 평판 때문에 고민이다.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자꾸 부정적인 평판이 생겨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업무적인 부분에서는 꼬투리를 잡힐 게 없을 정도로 열심히 하고 있는데도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다’는 평판이 자꾸 돌고 있단다.
“동료들과 업무 외적으로 대면하는 일이 거의 없지요. 그렇다고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부탁을 거절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다만 말을 짧게 할 뿐인데도 ‘차갑고 무뚝뚝하다’는 평판이 있네요. 사실 제가 말을 더듬는 버릇이 있어서 길게 말하질 않거든요. 길게 말했다가 더듬기라도 하면 바보 같아 보일까봐서요. 그래서 길게 돌려 말하거나 우스갯소리를 하지 않고 짧게 직설적으로 말을 하다 보니 이런 평판이 생긴 것 같습니다. 저랑 메신저를 많이 하는 직원은 평판과 다르다는 말부터 합니다. 이런 속내를 일일이 말하고 다닐 수도 없고 그저 속만 탑니다.”
본인도 모르게 나도는 평판이 부정적이면 억울하기만 하다. 스스로 만든 것도 아니기 때문에 고치기도 힘들다. 평판 때문에 불합리한 처사를 당하기도 한다. 물류회사에서 일하는 S 씨(30)의 이야기다.
“‘성격이 까칠하고 윗사람에게 잘 대든다’는 평판이 돌고 있다고 얼마 전 친한 선배가 관리 좀 하라고 충고를 하더군요. 이런 평판이 누구에게서 나왔는지 짐작이 갔어요. 전에 사수의 일처리 방식에 문제가 있어서 최대한 예의바르게 잘못된 부분을 말씀드리고 무조건 윽박지르려고 할 때도 합리적으로 대답했습니다. 사실 조목조목 제가 옳은 말만 하니까 사수도 할 말이 없는 것 같더군요. 이후에 사수가 윗사람들과의 술자리에서 제 흉을 보고 평판을 안 좋게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아는 상사분이 와서 사수와 잘 지내라고 하셨을 정도니까요. 윗분들에게 평판이 좋은 사수가 하는 말이 기정사실화돼서 내막을 모르는 상사들은 절 안 좋게 봅니다.”
S 씨는 “일만 열심히 하면 처세술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여겼지만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고 덧붙였다. IT업체에 근무하는 B 씨(31)도 마찬가지 심정이다. 클라이언트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협력업체가 잘못한 것을 고스란히 뒤집어쓰고 평판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게 됐기 때문이다.
“협력업체가 프로젝트 시작 단계부터 잘못된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는데 하도 막무가내로 끌고 가서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업체를 바꾸기엔 시기가 너무 늦기도 했고요. 이리저리 뛰고 밤샘작업도 수차례 할 정도로 열심히 했지만 결국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제가 협력사에 문제제기를 한 바로 그 부분에 대해 클라이언트도 만족할 수 없었던 거죠. 그런데다 우격다짐이던 협력업체가 직접 고객사를 찾아가 저에게 책임을 돌려서 일이 난처하게 된 적이 있었어요. 이 좁은 업계에서 업무적인 부분의 제 평판도 크게 나빠졌을 거라 생각하니 속상해서 잠이 안 오더라고요. 얼마 전 연봉협상 결과도 당연히 좋지 않았고 앞으로 평판을 어떻게 개선시킬지 고민입니다.”
이처럼 의도하지 않은 평판으로 고민하는 직장인들이 있는가 하면 원만한 직장생활을 위해 일부러 평판을 만드는 직장인들도 있다. 섬유업계의 Y 씨(여·28)는 회사에서의 이미지가 실제와는 많이 다른 점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실제 제 성격은 굉장히 활달한 편이에요. 친구들과 술자리도 자주 갖고 주량도 꽤 된다는 소리를 들어요. 그렇지만 회사에서는 정반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얌전하고 참하다는 소리를 듣죠. 회식자리에 가서도 조용히 있고요, 술도 거의 못 마시는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잘 먹고 잘 놀았다간 이리저리 술자리에 불려 다닐 텐데 퇴근 후에는 제 개인적인 시간을 좀 더 갖고 싶거든요. 얌전하다는 평판이 일을 차분하게 잘한다는 이미지와 연결되는 것 같아서 일부러 그런 모습으로 몰아가고 있기도 해요. 집에서와 달리 회사엔 옷차림도 수수하게 입고 다녀요. 현재의 평판이 실제와 달라 좀 답답할 때도 있지만, 계속 유지하는 게 사회생활에서는 유리할 것 같네요.”
전자회사에 다니는 O 씨(여·35)도 사내 평판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평판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 아니라 O 씨가 의도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여성스럽고 유순한 부분이 많지만 팀장 직급으로 팀원들을 통솔하기 위해 일부러 강한 이미지를 연출하고 있다.
“기가 세고 여장부 같다는 평판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평판을 만들기 위해 노력도 많이 했어요. 거친 남자 부하직원과 의견 대립이 있을 때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일부러 강하게 나갔습니다. 그러고 나면 화장실에 가서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뺍니다. 아무리 제가 일을 잘해도 직원들과 기싸움에서 지면 일을 추진하는 데 어려움이 있거든요. 이전 회사에서는 원래 성격대로 부드럽게 나가서 부하직원들 관리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이제 추진력이 강하고 기가 세다는 평판이 도니까 여자 상사라고 호락호락하게 보는 직원도 없어서 힘들지만 자꾸 자기 최면을 걸고 있습니다.”
세상살이가 대부분 그렇지만 ‘평판’도 한 번 나빠지면 회복하기가 힘들다. 좋아지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나빠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평판관리, 지금부터 시작해보는 게 어떨까.
이다영 객원기자 dylee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