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까르푸.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2005년이 열리면서 세계적인 할인점 업체인 까르푸의 한국 점포업체인 한국까르푸를 수중에 넣기 위한 국내 유통메이저들의 눈빛이 반짝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 1996년 한국에 진출한 한국까르푸. 국내 할인점 시장의 강자로 군림하던 이 회사가 설립 10년을 눈앞에 두고 국내 토종기업들의 공세에 현기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2005년 1월 중순. 국내 백화점업계의 3대메이저인 현대백화점그룹이 한국까르푸와 ‘전략적 제휴’를 위한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말이 새나왔다. 이런 보도가 나온 뒤 협상 당사자인 까르푸나 현대백화점 모두 제휴를 위해 협상을 벌이고 있는 점은 인정했다. 하지만 비교적 간단한 상품권 제휴 협상이 지난해 11월부터 이어지는 것 외에는 정작 ‘제휴를 위한 협상 결과’는 아무것도 나온 것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대백화점과 까르푸의 협상설이 공식화된 이후인 지난 1월17일 현대백화점의 경영인이 ‘인수합병 가능성’을 내비쳐 풍랑을 몰고왔다.
두 회사의 제휴 협상이 상품권 공동 사용 같은 영업 제휴에 그치는 게 아니라 까르푸 신규점에 대해 현대백화점에서 투자하는 자본제휴나 까르푸의 지분을 현대백화점에서 인수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는 추측을 낳은 것이다.
두 회사의 이런 협상이 유통업계에 그럴싸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두 회사 모두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먼저 현대백화점그룹. 이 그룹은 백화점과 홈쇼핑이 주력이지만 두 분야 모두 성장곡선의 꼭지점에 와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최근 유통업계의 성장엔진인 할인점 분야에서 현대백화점은 손을 놓고 있다. 그렇다고 이미 포화상태로 접어들며 업체별 우열이 드러나고 있는 국면인 할인점 사업 분야에 새로 뛰어들기에는 현대백화점의 자본력이나 시기에 문제가 있다.
다음은 까르푸. 까르푸는 지난 96년 국내에 진출한 이래 1조3천억원을 쏟아부으며 27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마트(신세계)-태스코홈플러스-롯데마트에 이어 국내 4위다. 이는 세계 1위인 월마트가 국내에서 5위에 불과하다는 점에 비추면 다소 위안이 되지만 세계 2위인 까르푸로선 성에 차지 않는 실적이다.
일각에선 현대백화점 상품권이 몇 년 전만 해도 업계 1위의 매출액을 올리다가 신세계에서 전국적으로 수십 개의 이마트 지점을 낸 뒤 신세계에 밀리자 할인점 사업자와의 제휴를 모색한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또 신세계나 롯데백화점이 명품 아울렛 같은 새로운 업태 도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현대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에서 패션 아이템에 강점을 갖고 있는 현대백화점과 까르푸의 자본제휴설의 배경이 되고 있다. 실제로 현대백화점은 경기도 곤지암에 대규모의 부지를 확보하고 있어서 교외형 아울렛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발판이 있다.
이처럼 양사에서 자본제휴나 영업제휴를 할 만한 충분한 이유는 있지만 어찌된 일인지 간단한 상품권 사용 제휴조차 석 달을 넘기면서도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 까르푸쪽에선 현대와의 제휴는 지난해 6월 현대카드와 까르푸현대카드를 발행하기로 한 영업제휴의 연장선으로 상품권 공동사용 협상을 벌이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즉, 자본 제휴나 소유권 이전 얘기는 ‘현대측에서 너무 앞서가고 있다’는 것.
상품권 제휴건도 현대쪽에서 흘린 얘기지 까르푸에서 그런 협상에 대한 얘기를 언론에 먼저 흘리지 않았다는 것. 제휴설이 흘러나와 이득을 본 것은 제휴설로 주가가 잠시 올랐던 현대백화점이지 까르푸가 아니라는 얘기다.
까르푸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노무현 대통령이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까르푸 회장이 2005년 한국에 2천7백억원을 투자해 점포 3개를 추가로 열기로 했다고 밝히는 등 한국은 까르푸의 우선 투자 대상국으로 사업을 철수하거나 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고 밝혔다.
즉 두 회사 모두 상품권 제휴 협상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시인하고 있지만 이 협상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언제 끝날지에 대해선 입을 다물고 있어서 추측만 무성하게 만들어내고 있다.
국내 유통가에선 현대가 자본제휴를 한다면 교외형 명품 아울렛이 되지 않을까 하는 얘기가 가장 유력하다.
현대가 확보하고 있는 경기도 광주시 8만 평의 물류 부지에 대한 개발제한 요소가 최근에 다 풀렸기 때문이다.
신세계가 이미 미국 첼시그룹과 합작으로 경기도 2006년 말 개장을 목표로 경기도 여주에 명품아울렛 건설을 구체화시키고 있고, 롯데도 일본의 유통업체와 교외형 복합쇼핑몰 사업을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가 광주에 교외형 쇼핑몰을 건설하면 백화점 3강싸움이 교외형 쇼핑몰에서 재현되는 셈. 성장엔진 부재라는 지적을 듣던 현대백화점이 외국계인 까르푸와의 협상에서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