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7일 6박 7일간의 방중일정을 마친 김정일 국방위원장 일행을 태운 특별열차가 귀국길에 오르기 위해 단둥역에 진입하고 있다. 연합뉴스 |
김정일 위원장은 5월 20일 새벽, 중국 투먼을 통해 방중 길에 올랐다. 주로 단둥을 통해 방중 길에 오르던 평소와 다른 루트였기에, 처음에는 후계자 김정은이 방중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김정은의 방중설은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고, 실제 중국에서 얼굴을 드러낸 사람은 김 위원장이었다. 그는 투먼을 시작으로 무단장-창춘-양저우-난징-베이징을 거치는 6박 7일간의 살인적인 방중일정을 소화하고 27일 새벽 북한으로 돌아왔다. 무려 6000㎞에 육박한 대장정이었다.
여느 때처럼 이번에도 김 위원장의 방중은 철도편을 통해 이루어졌다. 김 위원장은 최고지도자에 오른 뒤 최초로 방중길에 올랐던 2000년을 포함해 7차례의 해외순방길 모두 철도편만을 이용했다. 심지어 지난 2001년에는 1만㎞에 달하는 모스크바 방문길에도 역시 항공편이 아닌 철도편을 이용했을 정도다.
김 위원장이 해외방문 시 철도를 고집하는 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1976년 헬기사고 이후 비행공포증이 생겼다는 추측도 심심치 않게 제기된 바 있고, 세계의 이목을 끌기 위해 의도적으로 열차를 이용했을 것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일각에서는 대륙 횡단 시 열차를 애용했던 소련 스탈린을 모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하고 있다. 이처럼 온갖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는 가운데 분명한 건 김 위원장이 열차 여행을 유독 선호하는 ‘열차 마니아’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김 위원장의 전용열차는 도대체 어떤 열차일까. 항상 베일 속에 가려져 있는 김 위원장의 특성상 그가 애용하는 전용열차에 대한 세간의 호기심도 매우 높다. 그가 해외방문 시 애용하는 전용열차는 총 6대가량인 것으로 전해진다. 흔히 ‘로열 트레인’으로 불리는 김 위원장의 전용열차는 일반열차와는 다른 최첨단 시스템이 구비돼있다.
일반열차와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차체의 재질이다. 김 위원장의 전용열차 차체는 기본적인 적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방탄재질로 돼 있다. 뿐만 아니라 적의 레이더망을 피할 수 있는 스텔스 쉴즈로 코팅이 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 소식통에 의하면 김 위원장의 전용열차는 레이더 흡수물질로 알려진 ‘RAM’(Radar Absorbent Material)이 포함된 코팅 막으로 처리된 것으로 전해진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스텔스 쉴즈가 완벽하게 적의 레이더망에서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방해는 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외부의 위협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방어수단으로 82㎜ 박격포가 탑재돼있다는 정보도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매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에 등장하는 ‘박격포 전차’의 실사판이다. 한마디로 방어와 공격기능이 장착된 무장열차인 셈이다.
열차의 내부는 더 없이 고급스럽고 편리한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 내부의 기록영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공개된 바 있는 전용열차 내부는 고급스러운 화이트톤 인테리어로 꾸며졌다. 전체적으로 산뜻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기록영화 속에 등장하는 회담칸의 1인용 소파 역시 언뜻 봐도 매우 고급스러운 소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열차 내부는 회담전용 칸을 비롯해 전용 숙소, 식당, 차고, 수행요원실 등으로 짜여 있다. 그 중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회담칸은 각종 위성장비와 첨단시설로 꾸며진 것으로 전해진다. 회담 시 유용하게 쓰이는 대형 평면 모니터를 비롯해 위성TV 및 전화, 인터넷, 네트워크 설비 등이 갖춰져 있다. 5성급 호텔이 부럽지 않은 최고급 수준이다.
전용열차의 운행방식 역시 남다르다. 흔히 김 위원장의 전용열차 운행은 일반 열차운행과 마찬가지로 철도국이 직접 수행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전문가들은 김 위원장 전용열차 운행은 핵심부서인 호위사령부가 직접 수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북한정보전략센터 이윤걸 대표는 “김정일 위원장의 동선은 외부에서 잘 알 수 없다. 철도국이 아닌 호위사령부 소속의 별도부서가 직접 수행한다”고 전했다. 변칙적인 루트 이용과 기습적으로 진행하는 방중 길은 이러한 시스템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보통 김 위원장의 전용열차 운행은 보안을 위해 선두와 후미에서 보호임무를 띠는 보조열차와 함께 이루어진다. 김 위원장이 타고 있는 전용열차의 앞에는 선로안전과 호위업무를 맡는 선두열차가 운행된다. 이번 방중에 등장한 일명 ‘쌍둥이 열차’의 정체 역시 이러한 임무를 띠는 선행열차일 가능성이 높다. 선행열차는 혼란을 가중시키기 위해 전용열차와 외관이 비슷하다. 과거 역사에서 각국 왕들이 위장 마차나 가마를 이용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위장전술로 풀이된다.
전용열차 후미에는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운행하는 지원열차가 함께한다. 지원열차에는 경호 병력과 함께 김 위원장 건강 상황을 체크하기 위한 의료 인력도 탑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방중에도 전용열차의 뒤를 따라 지원열차가 운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김 위원장이 공식적으로 항공편을 이용한 것은 지난 1965년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김일성 당시 주석과 동행했을 때가 유일하다. 무려 46년 전의 일이다. 그 이후 김 위원장은 단 한 번도 항공편을 이용한 적이 없다. 따라서 각국 취재진은 김 위원장이 장거리 열차순방에 나설 때마다 열차 동선을 파악하느라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곤 했다. 김 위원장의 ‘열차 순방’이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한 의도인지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그 의도성을 염두에 두고 ‘열차정치’라는 말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이유야 어찌됐든 앞으로도 김 위원장의 해외순방길은 계속 열차가 애용될 것으로 보인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