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실 저축은행 사태가 비리 사건으로 확전되면서 서민들의 분노가 더 커지고 있다. 사진은 영업정지명령 후 혼잡한 삼화저축은행 창구(왼쪽)와 부산저축은행 사태로 예금을 날리게 된 고객들의 시위 현장. |
부산저축은행그룹 등 전국 저축은행 비리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검찰은 저축은행의 각종 이권사업 및 정·관계 인사들을 상대로 전방위 로비를 주도한 의혹을 받고 있는 핵심 인물들을 잇따라 구속하면서 사정 칼날을 서서히 정·관계로 겨냥하고 있다.
검찰은 저축은행들이 사외이사로 영입한 인물들 대부분이 정치권과 금융권 고위인사라는 사실에 미뤄 이들이 정·관계 로비스트로 활동했을 가능성도 열어놓고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실제로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은 2004년부터 3년 동안 삼화저축은행 사외이사를 맡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허준영 코레일 사장도 2008년 11월부터 5개월간 강원도민저축은행 사외이사로 재직하며 5000만 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남 전 법무부 장관은 제일저축은행과 신라저축은행 두 곳에서 사외이사로 활동한 것으로 드러났고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장과 대전지방국세청장을 지낸 김창섭 세무법인 대주 회장도 제일저축은행 사외이사로 등재돼 있다. 또 옛 체신부 장관을 지냈던 이대순 전 국회의원과 검사장 출신인 박영관 변호사는 신라저축은행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현 정부에서 지난해 8월까지 2년 동안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지낸 장태평 더푸른미래재단 이사장은 솔로몬저축은행 사외이사이고, 손영래 전 국세청장은 제일2저축은행 사외이사로 등재돼 있다.
검찰은 각 저축은행들이 사외이사들과 전문 로비스트를 동원해 전방위 구명로비를 전개한 정황을 잡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대검 중수부는 5월 24일 부산저축은행 2대 주주인 박형선 해동건설 회장을 소환해 강도 높은 조사를 실시한 뒤 27일 불법대출에 관여한 혐의 등으로 구속했다.
박 회장은 부산저축은행그룹 박연호 전 회장의 광주일고 2년 후배이자 김양 부회장과는 동기 동창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은 2005년 3월 경기도 시흥시 영각사의 납골당 사업과 관련해 가짜 스님을 내세워 부산저축은행 5개 계열은행으로부터 1200억 원의 부당 대출을 받은 의혹을 받고 있다.
특히 검찰은 해동건설의 사세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급성장한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검찰은 박 회장을 상대로 부산저축은행이 120개 특수목적법인을 설립해 각종 부동산 사업을 벌이는 과정에서 과거 정권 유력인사들을 상대로 로비를 했는지 여부를 집중 추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전·현 정권을 망라하고 정·관계에 마당발 인맥을 구축하고 있는 박 회장이 과거 정권은 물론 현 정권 인사들을 상대로 구명로비를 전개했을 가능성도 열어놓고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검찰은 또 부산저축은행이 퇴출 위기에 몰리자 정·관계 로비스트 역할을 맡긴 당사자로 지목받고 있는 금융브로커 윤여성 씨(구속)의 입을 여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검찰은 부산저축은행 고위 임원들이 윤 씨를 통해 청와대 실세를 비롯한 정관계 유력인사들을 두루 접촉해 구명로비를 펼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부산저축은행 내에서 ‘회장님’으로 통했던 윤 씨는 여권 실세들을 비롯해 정·관계에 마당발 인맥을 구축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실제로 검찰은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 법률지원단장을 지냈던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차관급)이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감사 무마’ 청탁과 함께 물방울다이아몬드를 비롯해 억대의 금품을 수수했다는 윤 씨의 진술을 확보하고 29일 은 전 위원을 소환조사했다. 은 전 위원은 은행 고위관계자와 여권 실세를 연결시켜 준 의혹도 받고 있다. 의혹이 불거지자 5월 26일 사의를 표명한 은 전 위원은 이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현 정부 핵심인사라는 점에서 그의 비리 혐의가 드러날 경우 상당한 후폭풍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한 검찰은 부산저축은행 김양 부회장이 2006년 인천 효성도시개발 등 SPC(특수목적 법인)를 설립해 효성지구 사업권을 인수하고 인·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윤 씨 등을 기용해 지방자치단체와 정치권을 상대로 로비를 시도한 정황을 잡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특히 검찰은 효성지구 사업 예정지에 한나라당 J 의원의 땅 8000여㎡가 포함돼 있어 사업 초기부터 특혜시비가 일었던 점에 주목하고 J 의원이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여부도 은밀히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검찰 일각에서는 부산저축은행 고위 임원이 야권의 차기주자 중 한 사람으로 지목받고 있는 거물급 정치인 A 씨의 ‘스폰서’ 역할을 자임하면서 지속적으로 정치자금을 지원한 정황을 잡고 사실 관계를 은밀히 파헤치고 있다는 얘기마저 나돌고 있다. 검찰은 부산저축은행 핵심 임원들이 광주일고 출신이라는 점에서 호남권 일부 유력 정치인들이 구명로비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됐을 것으로 보고 박 회장과 사외이사들을 상대로 혐의 사실을 집중 추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화저축은행도 전방위적으로 구명로비를 전개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삼화은행 불법대출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는 지난 4월 1일 이 은행 대주주인 신삼길 명예회장을 전격 구속한 바 있다. 검찰은 불법대출 혐의와는 별도로 신 씨가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해 정·관계에 광범위한 로비를 벌이면서 은행 부실을 속여왔다는 정황을 잡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실제로 검찰은 삼화은행의 압수물 분석 과정에서 신 씨가 여권 거물급 정치인의 동생인 B 씨를 비롯해 정·관·재계 인사들과 폭넓게 교류를 해온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검찰은 또 신 씨가 지인들을 매개로 정·관계에 전방위 로비를 전개해 왔고, 횡령한 돈으로 조성한 비자금을 은행 구명로비에 사용한 정황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특히 신 씨와 절친인 B 씨 및 대기업 회장인 C 씨가 정진석 수석과도 가깝고, 정 수석이 삼화은행 사외이사를 지냈다는 사실에 미뤄 B·C 씨가 구명로비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B 씨의 경우 여권 거물 정치인의 친동생이라는 점에서 검찰 수사 추이에 따라 적잖은 정치적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삼성꿈장학재단(삼성재단)과 학교법인 포스텍(포항공과대학)이 부실 우려가 제기됐던 부산저축은행에 각각 500억 원을 투자하는 과정에도 정·관계 유력인사들이 개입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삼성재단과 포스텍은 지난해 6월 KTB자산운용을 통해 1000억 원을 조성해 부산저축은행에 투자한 바 있다.
검찰은 두 재단이 500억 원이라는 거액을 약속이나 한 듯 부산저축은행에 투자한 배경에 강한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검찰은 부산저축은행이 두 재단의 자금을 유치하는 과정에 정·관계 유력인사가 개입했고, 거액의 리베이트가 오갔을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검찰은 여권 거물급이 포스텍 투자건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포스텍 500억 투자건에 깊숙이 개입한 당사자로 지목받고 있는 포스텍 고위임원 K 씨가 여권 핵심실세인 L 씨와 막역한 사이라는 점에 미뤄 L 씨가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은밀히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저축은행 사태는 전·현 정권을 망라한 총체적 권력형게이트 사건으로 확전되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 ‘저축은행 리스트’에는 권력기관 유력인사들과 현 정권 실세뿐만이 아니라 여야 거물급도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다.
따라서 ‘리스트’ 뇌관이 폭발할 경우 청와대와 정치권 전체가 격랑에 휩싸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과연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과 미래권력까지 복잡하게 얽혀있는 리스트 뇌관을 건드릴 수 있을지 정치권의 시선이 서초동 검찰청사로 쏠리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