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장파와 친박계가 지지한 황우여 원내대표(오른쪽) 체제가 들어서며 박근혜 전 대표가 당을 장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아직 불안한 대세론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2008년 국회 본회의 참석 모습. 연합뉴스 |
박근혜 전 대표가 한나라당의 슈퍼파워로 등극했다. 그는 황우여 원내대표 경선을 통해 여권의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로 올라섰다. 더구나 손 안 대고 코 푼 격이 됐다. 소장파의 적극적인 구애로 박 전 대표는 별다른 ‘작업’ 없이 손쉽게 당을 장악할 수 있었다. 아직 7월 전당대회라는 대회전이 남아 있긴 하지만 룰 개정 과정에서 ‘박심’이 대부분 관철된 터라 당 대표도 그의 수중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심리적인 대세론은 당내의 ‘표심’에서도 확인된다.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위원회가 전국 당협위원장(국회의원+원외당협위원장 253명)을 상대로 실시한 전당대회 규칙 관련 설문조사에서 당권·대권 분리 문제는 ‘박심’인 ‘현행대로 유지’ 의견이 과반을 넘은 50.9%로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47.3%)을 앞섰다. 이는 지난해 7월 전당대회 결과 대의원 득표 기준으로 당내 친박계 총 지분이 30.3%였던 것과 비교해보면 지지율이 2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이는 친이·중도계의 ‘월박현상’이 시간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증거다.
박 전 대표가 이렇게 당을 확실히 장악해가고 있지만 여전히 당의 확실한 보스로 서기까지는 장애물이 많다. 특히 소장파와의 ‘일시적 연대’에 대한 친박계 내부의 논란이 많다는 것은 그의 당권 장악이 아직까지 불안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친박-소장파 연대를 ‘위장결혼’이라고 부른다. 양측이 정체성이나 정책 등에 있어서 공통점이 없고 오히려 경선 과정에서 상당한 감정적 앙금도 남아 있는 상황에서 황우여 원내대표 체제를 만들어내자 당내에서도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양측의 연대는 오로지 총선 서바이벌(소장파)과 친이계 견제(친박계)라는 정치공학에 의한 일시적인 동거일 뿐 정책이나 가치연대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서로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위장결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소장파를 두고 “총선에서 살아남기 위해 지조도 버리고 힘센 주자에게 묻어가려는 얄팍한 행동”이라는 비판이 흘러나온다. 최근 소장파 일부 의원들이 너도 나도 당권 도전설을 흘리자 친박계 의원들 일각에서 “일부 소장파 인사들이 상습적으로 쇄신운동을 해왔지만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것 이상 아무 것도 아니었다. 제대로 된 쇄신과 반성 없이 당권 경쟁에만 혈안이 돼 있다. 젊음을 가장한 권력쟁취 욕심일 뿐 그 진정성을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문제를 제기한 것도 소장파에 대한 적대적인 분위기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친박계의 한 전략 핵심 관계자는 이에 대해 “지난 경선 과정에서 소장파를 중심으로 얼마나 박 전 대표의 과거를 가지고 흔들어댔느냐. 더구나 유신의 정체성을 이어받은 박 전 대표와는 정치를 할 수 없다고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니던 사람들이 소장파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쇄신을 들고 나오며 박 전 대표의 힘을 빌리려 하고 있다. 국민들은 이 과정들을 다 지켜보고 있다. 소장파가 그간의 소신을 버리고 유신세력이라고 주장했던 박 전 대표와 연대를 했다면 그것에 대한 설득력 있는 해명이 있어야 한다. 그런 과정은 생략된 채 당권을 장악한 신주류로만 인식되는 건 잘못된 것이다. 민심도 소장파의 변심에 대해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친박 내부에서 소장파와의 연대에 대한 부정적 기류가 높아지면서 박 전 대표도 난처한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주로 친박 중진들을 중심으로 소장파와의 연대를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렇게 소장파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함께 그들에 대한 불신도 깊어지고 있다. 친박계 일각에서 “소장파가 적당히 연대한 뒤 결국 나중에 박 전 대표의 등을 향해 칼을 꽂을 것”이라는 주장도 계속 나오고 있다. 영남의 친박 지지층도 소장파와의 ‘갑작스런’ 연대에 대해 부정적인 기류가 강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박 전 대표도 소장파와의 연대가 상당히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마땅한 타개책이 없다는 게 박 전 대표의 딜레마다.
소장파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친박 내부에서 소장파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안다. 하지만 현재로선 박 전 대표가 어쩔 도리가 없다. 미우나 고우나 잡을 수밖에 없다. (영남중진) 영감들이나 붙잡고 계속 정치할 수는 없지 않느냐. 그게 박 전 대표의 딜레마일 것”이라고 말했다. 소장파에서 내년 총선까지 박 전 대표와 연대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는 것도 박 전 대표가 그들의 지원 없이 독자적으로 설 수 없음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친박계의 한 의원은 이와 관련해 “소장파와의 연대는 언제든 깨질 수 있다. 우리가 당장 그들의 쇄신동력을 통해 친이계를 견제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그들 장난에 놀아나지는 않을 것이다. 연대의 기간은 소장파가 얼마나 박 전 대표에게 진정성을 보이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친박계만 본다면 그들과의 연대가 그리 급한 문제가 아니다. 박 전 대표도 원칙 없이 아무나 받아주지는 않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장파와의 연대 딜레마는 7월 전당대회에서 당권 도전자 가운데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이냐의 또 다른 딜레마로 연결된다. 박 전 대표가 당권주자를 누구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총선의 공천은 물론 대선에까지 영향이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주류 이상득계가 원희룡 의원을 전격적으로 내세울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친 이재오계에서도 자체 후보를 내세울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다 소장파의 젊은 후보, 그리고 김무성 홍준표 의원 등의 중진그룹이 가세하는 모양새가 될 것이다.
사실 박 전 대표는 지난 18대 총선 전 당권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 결과는 친이계의 친박 공천 학살로 나타났다. 친박연대 바람으로 정치적 재기를 할 수 있었지만 ‘정치의 생명인 공천을 내팽개친 무책임한 보스’라는 아래로부터의 비판이 많았다. 이번 총선에서도 박 전 대표가 공천에 손을 놓을 경우 친박 진영의 극심한 내부갈등이 초래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배경 때문에 박 전 대표가 이번 전당대회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특정 후보를 지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누구를 지원해야 하느냐, 여기에 그의 딜레마가 있다. 일단 이상득 의원이 내세울 것으로 보이는 원희룡 의원을 지원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있다. 하지만 이럴 경우 원 의원과 이미 등을 돌린 소장파와의 연대는 깨지게 된다. 더구나 차기를 내다보는 박 전 대표로서는 ‘구세대의 막내’라고 불리는 원 의원을 지원할 경우 같은 구세대로 공격당할 수 있다. 그렇다고 소장파의 젊은 후보를 지원하는 것도 딜레마다. 현재로선 이 시나리오가 가장 유력하지만 친박계 중진들의 만만치 않은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
친박계의 한 중진 의원 측근은 이에 대해 “박 전 대표가 지원해준 소장파들이 세대교체를 명분으로 친박 중진들을 내치려고 한다면 우리의 강력한 저항을 받을 것이다. 박 전 대표가 소장파를 통해 최측근들을 잘라내는, 그런 위험한 도박을 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소장파의 젊은 후보를 당권주자로 지원하는 것은, 호랑이 새끼를 호랑이로 키워 잡아먹히게 되는 최악의 경우도 예상해볼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런 대목이다”라고 말했다. 당권을 쥐게 된 소장파가 언제든 숨겨둔 발톱을 드러내며 ‘후보교체론’으로 박 전 대표를 흔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표의 대권전략은 ‘그냥 이대로’다. 별로 힘들이지 않고 여당 접수도 눈앞에 두고 있다. 모든 것이 대세론이라는 블랙홀로 빨려들게 돼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심은 빨려들지 모르지만 민심은 여전히 대세론의 주변만을 맴돌고 있다. 박 전 대표가 소장파와의 연대 등 그를 둘러싼 딜레마를 확실하게 제거하지 못하면 결국 민심은 더 멀어지게 될 것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머리는 ‘끄떡’ 행동은 ‘질질’
박근혜 전 대표는 2006년 6월 당 대표에서 물러난 뒤 4개월여 동안 대선주자 행보를 하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경선 패배로 이어진 주된 원인이었다. 그런 전철을 밟지 말자며 친박 진영에서는 계속 박 전 대표를 압박하고 있다. 특히 외부인사 영입이 정권 재창출의 필수 조건이라며 서두르는 모습도 보인다.
현재 친박 진영에서는 장기과제로 신주류 구축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의 친박세력만으로 정권 재창출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내부적으로 이미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그런데 여기에 박 전 대표의 또 다른 딜레마가 숨어 있다. 주류 의식과 연대감이 강한 대부분의 친박계는 외부인사 영입에 대해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게 사실이다. 2007년 경선 패배 뒤 2008년 총선 학살을 이겨내고 2011년 대세론이 안착되기까지 한 번도 좌고우면하지 않고 박 전 대표를 따라간 열혈 충성파들이 아직 박 전 대표 주변에 건재해 있다. 박 전 대표도 외부인사 영입에 대해 인위적인 정계개편으로 비쳐질 수 있어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친박계의 한 소장파 의원은 이에 대해 “인재영입은 전적으로 박 전 대표 중심으로 조용하게 돌아가고 있다. 최측근 의원들이나 비선라인을 통해 소개받은 사람들을 비밀리에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박 전 대표와의 ‘독대’ 기회도 상당히 제한적인 것으로 안다. 이는 박 전 대표가 검증된 인사들만 가까이 두려는 경향이 심하기도 하지만, 그를 둘러싸고 있는 기존 친박 인사들이 외부인사 영입에 철옹성을 쌓고 있는 것도 이유다. 박 전 대표도 그들의 견제를 단호하게 뿌리칠 수 없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일부 친박 인사들의 기득권 챙기기와 박 전 대표의 소극적인 외부인사 영입 전략이 그의 대권가도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경고가 친박 내부에서부터 나오고 있다. 지난 경선 때 캠프에서 전략전문가로 활동했던 B 씨는 친박계의 폐쇄적인 인사영입 기류에 대해 경고음을 날리고 있다. 그는 이에 대해 “개인적으로 볼 때 앞으로 친박 진영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 외부인사 영입이다. 현재의 친박세력으로는 정권 재창출이 어렵다고 본다. 새로운 주류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념을 떠나 젊은 피가 수혈되지 않고서는 대선에서 어렵다고 본다. 박 전 대표의 경쟁력은 이미 노출됐기 때문에 그것을 떠받치는 신진세력의 확장 없이 박 전 대표만의 브랜드만으로 끝까지 가기는 무리라고 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