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으로)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어룡 대신그룹 회장,이화경 오리온그룹 회장 | ||
이런 흐름의 선두에는 애경그룹 장영신 회장과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 대신그룹 이어룡 회장, 대한전선그룹 양귀애 고문, 울트라건설의 박경자 회장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또다른 흐름으로는 필코리아리미티드의 정희자 회장이나 오리온그룹의 이화경 사장처럼 남편 등 가족관계와 별도로 본인의 능력을 인정받는 경우다.
먼저 남편의 부재로 경영자로 나선 경우의 대명사는 장영신 회장.
장 회장은 여성 최초로 전경련 부회장을 맡을 정도로 이 분야의 선구자였다.
올해로 창립 51주년을 맞는 애경그룹의 오늘은 장 회장 손끝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72년 남편이 급작스레 세상을 뜨자 네 자녀를 둔 주부에서 삼경화성 대표로 경영현장에 나선 그는 이후 화학과 생활용품 사업에서 일가를 이뤄 현재는 화학, 생활용품, 유통 등 13개 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으로 일궜다.
장 회장의 성공담이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으로 이어질지 주목받고 있다.
장 회장처럼 딸 둘에 아들 하나를 둔 주부였던 현 회장은 2003년 8월 남편인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사망하자 그해 10월 현대엘레베이터 회장으로 취임해 난파 위기에 몰렸던 현대그룹을 추스르고 시숙과의 경영권 분쟁에서도 방어하는 데 성공했다.
그의 취임 초기 ‘경영에 전혀 경험이 없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그는 취임 이후 1년여간의 시간 동안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현 회장의 경영 좌우명은 ‘순천자흥(順千子興)’. 순리대로 하면 흥한다는 것.
그렇다고 그가 매양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한 것은 아니다.
취임 첫해에 가신소리를 듣던 일부 전문 경영진을 퇴진시키고 그룹안을 다잡은 뒤, 이어 경영권 분쟁에도 법원에 판결을 의뢰해 승리하는 등 어려운 일도 ‘순리’대로 풀어나가고 있다는 의미다.
현 회장의 큰딸인 정지이씨도 지난 2004년 1월 현대상선 재정부에 입사해 현 회장은 12층에, 지이씨는 8층에 모녀가 함께 일하고 있다. 지이씨는 3년 경력직 사원으로 입사해 지난해 말 대리로 승진했다. 지이씨는 진급요건인 영어시험 점수에서도 사내 최고를 기록했고, 오너 자제의 프리미엄인 ‘껑충 껑충’ 승진도 적용되지 않았다. 현 회장이 ‘순리대로 하라’는 의중이 반영됐다는 것.
대신그룹의 이어룡 회장도 가정주부에서 경영인으로 변신한 경우. 이 회장은 남편의 유고를 대비해 사전에 남편으로부터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이 회장의 남편인 양회문 대신그룹 전 회장은 지난 2004년 9월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양 회장은 슬하에 2남1녀가 있었지만 아들들이 모두 대학생일 정도로 나이가 어려 경영권을 승계받기에는 일렀다.
그래서인지 양 회장은 3년 전 자신이 발병했음을 알고 이후 부인인 이어룡 회장에게 경영수업을 시켰다. 본인의 유고를 대비해 어린 자녀들을 대신해 부인에게 뒷일을 부탁한 것이다.
이 회장은 지난 9월 회장으로 취임했다.
매일 여의도 대신증권 3층 회장실로 출근하는 그의 주위엔 생전에 남편이 짜놓은 대로 남편과 대신증권 입사동기생인 김대송 사장 등 3명의 전문 경영인이 경영일선을 맡고 전반적으로 그가 그룹을 이끌어 가는 구도로 가고 있다.
중견건설업체인 울트라건설(옛 유원건설)도 강석환 회장이 지난해 6월 급작스레 사망하자 부인인 박경자 회장이 이끌어가고 있다.
박 회장은 취임 이후 큰 동요 없이 울트라를 이끌어가고 있다. 하지만 최근 모기업에서 울트라건설의 주식을 대거 사들이면서 인수합병설이 나오고 있어 박 회장이 어떤 대응책을 펴나갈지 주목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기업인수합병 시장의 큰손으로 등장했던 대한전선그룹의 설원량 회장이 지난 3월 세상을 떠나자 재계는 깜짝 놀랐다.
대한전선이 인수합병을 시도하거나 인수한 (주)진로나 쌍방울 등 굵직굵직한 프로젝트가 아직 결론을 맺지 못한 마당에 주역이 세상을 떴기 때문이다.
대한전선그룹은 설 회장의 빈자리를 전문경영인과 미망인인 양귀애 고문으로 메웠다.
설 회장의 아들 둘은 아직 대학에서 배우는 나이라 경영 현장에 투입하기에는 좀 더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점도 가정주부였던 양 고문이 경영에 나서게 된 것과 관련이 있다.
이런 남편 부재와는 좀 다른 경우가 필코리아리미티드의 정희자 회장과 오리온그룹의 이화경 사장이다.
정 회장은 남편인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훨씬 더 유명하고 더 돈도 많이 벌었다.
하지만 최근 법원에선 자산관리공사와 정희자씨와 아들 선협, 선용씨 간의 아도니스 골프장 소유권 확인 소송에서 정 회장의 손을 들어주었다. 아도니스골프장이 김우중 전 회장이나 대우재산이 아니라고 인정한 것.
아도니스골프장은 필코리아리미티드가 운영하고 있다. 필코리아리미티드의 전신은 동우개발. 정 회장이 80년대부터 직접 운영하는 회사다. 현재도 아도니스골프장과 에이원골프클럽, 베트남 하노이의 대우호텔 등을 운영하고 있다. 정 회장은 김 전 회장이 국내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남편 일은 남편 일, 내 일은 내 일’이라는 원칙대로 국내에서 활동중이다.
이화경 오리온그룹 사장은 2세 상속자이자 성공한 전문 경영인이다.
아버지인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자가 세상을 뜬 뒤 오리온제과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오리온제과가 국내 제과 3강 자리를 유지하는 데 한몫했다.
이양구 회장은 딸만 둘을 두었다. 오리온그룹은 이 회장의 사망 이후 이 회장의 부인인 이관희 여사의 조율하에 큰딸인 이혜경씨와 작은딸인 이화경씨 둘에게 배분됐다.
이후 지난 2001년 금융과 시멘트쪽의 동양그룹(현재현 회장)과 제과와 엔터테인먼트의 오리온그룹(담철곤 회장)으로 나뉘었다.
현 회장은 혜경씨의 남편, 담 회장은 화경씨의 남편이다.
언니인 이혜경씨는 경영일선에 나서지 않고 대주주로 머물고 있지만, 이화경 사장은 오리온그룹이 출범한 뒤에도 여전히 오너이자 전문경영인에 맞먹는 활약상을 보이고 있다.
2세 경영진들은 물려받은 것으로 평가받는 게 아니라 수성 여부와 얼마나 더 이루었느냐로 평가받는다.
2세 여성들도 예외는 아니다. 애경의 장영신 회장처럼 수성과 확대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여성 경영진들이 속출할지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