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 계열사인 서울시 강동구 성내동의 서울통신기술 본사.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과 삼성전자가 지분 81%를 보유하고 있는 이 회사는 사실상 이 사장 개인회사나 다름없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지난 5월 2일 심상치 않은 내비게이션 하나(SEN-240)가 첫선을 보였다. 이 제품은 삼성전자 계열사인 서울통신기술이 출시한 제품이다. 그동안 도전장을 내미는 대기업마다 연거푸 실패해 ‘대기업의 무덤’이라 불리는 내비게이션 시장에 삼성전자가 다시 뛰어든 셈이다.
출발은 순조롭다. 우선 소비자들의 눈길을 끄는 데 성공했다. 공식적으로는 계열사를 내세웠지만 내비게이션 홍보부스에는 삼성그룹의 로고가 곳곳에 노출돼 브랜드 효과가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때문에 이 내비게이션은 벌써 ‘삼성내비게이션’(삼성내비)으로 통할 정도다. 기능면에서도 삼성전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관성이 엿보인다. 삼성내비는 스마트폰과 연동되는 단말기의 특성을 강조했다. 갤럭시가 컴퓨터 본체의 기능을 하고 내비게이션 단말기는 모니터 기능을 하는 모습이다.
여타 내비게이션 단말기의 경우 새로운 기능이 추가될 때마다 USB를 통해 다운로드 받아야 하지만 스마트폰과 연동하면 운전석에서 바로 기능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회사 측은 안드로이드마켓에 내비게이션 관련 애플리케이션을 계속 선보일 예정이다.
단말기 자체에도 최신 기술이 탑재됐다. 삼성내비는 음성만으로도 작동이 가능한 데다 전화와 문자 응답 기능까지 추가됐다. 조수석에서 무선 마우스와 키보드를 이용해 단말기 조작이 가능한 것도 강점이다.
이처럼 기술력으로는 뛰어나지만 업계에선 최근 화두인 동반성장과 맞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대기업이 또 한 번 중소기업의 사업영역에 진출한 모양새라는 것이다. 한 내비게이션업체 관계자는 “대기업이 막대한 자금력과 기술력을 앞세워 중소기업이 힘겹게 일궈온 시장을 침해하는 것은 불공정 행위”라며 “할 수 있는데 생각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 정도 자본력과 기술력이 없기 때문에 못했다는 점에서 동일선상에서의 시장경쟁이라 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중소기업의 반발을 차치하더라도 이미 삼성전자는 LG전자와 함께 내비게이션 사업에 직접 진출해 낮은 성적표를 받은 바 있다. 두 업체가 지난해 차량용 내비게이션 시장에 진출했으나 매출이 미미했던 것이다. 삼성전자는 출시 후 4개월 동안의 총 판매량이 5000대 수준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고 LG전자의 경우 출시 후 4개월 동안 약 2만 대밖에 팔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일 기간 국내 내비게이션 총 판매량이 60만 대였던 것을 감안하면 시장 진출에 실패한 셈이나 다름없다.
LG전자 측은 부진한 매출실적에 대해 “브랜드 효과를 고려해 다른 제품에 비해 30~70%까지 가격을 높게 측정했던 것이 (부진) 요인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제품마다 차이가 있지만 내비게이션의 가격은 평균적으로 30만 원대. 이번 서울통신기술이 선보인 내비게이션 역시 41만~47만 원대로 상대적으로 비싼 편이라 소비자들이 선뜻 지갑을 열지 불분명한 상황이다.
물론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이번 내비게이션 사업이 성공한다면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에게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사업계획서가 된다. 이번 제품의 경우 내비게이션 단말기 이용시 갤럭시 시리즈나 갤럭시탭과 연동해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삼성전자의 매출도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밥그릇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중소기업들의 방어, 브랜드보다 가격 경쟁력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의 구매 심리 등 내비게이션 시장의 특수성을 서울통신기술과 삼성전자, 그리고 오너인 이재용 사장은 어떤 ‘경로’로 풀어갈까. 업계를 넘어 재계의 뜨거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