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5월 청와대에서 열린 금융인 초청 오찬간담회에서 당시 강만수 경제특보(왼쪽)와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작은 사진은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위),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 청와대사진기자단 |
공적자금관리위원회(공자위)는 지난 17일 금융위원회에서 본회의를 열고 예금보험공사(예보)가 보유하고 있는 우리금융 지분(56.79%) 매각과 민영화 방안을 발표했다. 공자위는 지난해까지 거론됐던 분할매각 방식을 접고 우리투자증권 경남은행 광주은행 등 자회사를 포함한 일괄매각 방식을 내놓았다.
우리금융 민영화 방안 발표에 가장 발 빠르게 대응한 것은 산은금융이다. 우리금융에 대한 적극적인 인수 추진 의사를 밝히면서 인수자금 조달 방안까지 내놓은 상태. 예보가 보유한 우리금융 지분 인수를 위한 7조 원 중 1조 원은 내부 유보금에서, 나머지 6조 원은 채권이나 우선주를 발행해 외부에서 끌어올 계획이다.
산은금융의 우리금융 인수 추진은 이명박 대통령 핵심 측근인 강만수 산은금융 회장의 메가뱅크 의지와 맞물려 관치금융 논란을 낳기도 한다. 자산규모 159조 원의 산업은행과 346조 원의 우리은행을 합하면 자산규모 500조 원이 넘는, 세계 50위권 메가뱅크 탄생이 가능해진다. 강 회장은 현 정부 초기부터 ‘메가뱅크 전도사’로 불릴 정도로 자산 규모 500조 원대 메가뱅크 탄생의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이 때문에 산은금융의 우리금융 인수를 ‘국영 메가뱅크 설립’이라며 비판하는 목소리도 크다.
독자 민영화를 추진해온 이팔성 회장의 우리금융은 산은금융의 움직임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정부 소유인 산은금융이 외부에서 모은 돈으로 예보가 가진 우리금융 지분을 사들이는 것은 정부 빚으로 공적자금을 상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입장을 보이는 것이다. 산은금융의 M&A 추진에 대한 우리금융의 반발 배경엔 금융권 MB계 거물들 간의 신경전도 깔려 있는 듯하다. 이 대통령의 고려대 후배이자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 서울시향 대표를 지낸 이팔성 회장은 금융권 내에서 대표적인 MB계로 통한다.
그런데 이 대통령과 가깝기로 치면 같은 소망교회 신도이자 현 정부 첫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강만수 회장이 훨씬 앞서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최근 사석에서 이 회장이 강 회장에 대해 “나보다 높은 사람”이라 했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다. 강 회장이 최근 사석에서 이 회장과 자주 비교되는 것에 불쾌감을 표시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대형 M&A에 정부 입김이 강하게 작용해온 전례를 볼 때 MB계 ‘서열’에서 앞서는 강 회장의 산은금융이 중심이 되는 메가뱅크 추진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점쳐지는 분위기다.
그런데 인수 주체는 산은금융이 될지 몰라도 자산과 인적 규모에서 크게 앞서는 우리금융 세력이 합병 은행의 중심이 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인원 규모에서 우리금융이 산은금융에 4배가량 앞서는 데다 산은금융에 비해 M&A 경험이 많다는 점도 눈에 띈다. 지난 22일 이순우 우리은행장은 “메가뱅크가 추진된다면 영업력과 고객 구성이 뛰어난 우리은행이 중심이 돼야 한다”면서 메가뱅크 정국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지난 3월 산은금융 회장에 취임한 강 회장에 비해 2008년 6월부터 우리금융을 맡아온 이 회장의 조직 장악력이 크게 앞선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현재 우리금융에선 광주은행을 제외한 대부분 자회사에서 이 회장의 고려대 후배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금융 사외이사진 역시 이 회장 취임 이후로 고려대 출신이나 현 정부와 돈독한 관계의 인사들로 대거 교체돼 왔다. 매년 주총 때마다 ‘코드인사’ 논란이 따라붙었지만 결국 이 회장의 조직 장악력 강화라는 결과를 낳았다. 반면 은행권 경력이 전무한 데다 산은금융 내 지지기반이 약한 강 회장이 합병은행을 잘 이끌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린다.
산은금융의 우리금융 인수 추진이 탄력을 받고는 있지만 다른 경쟁자 출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금융권은 물론 정치권에서조차 산은금융을 중심으로 한 국영 메가뱅크 탄생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공자위도 산은금융의 단독 입찰엔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우리금융 같은 대형 매물이 이렇다 할 경쟁도 없이 산은금융에 넘어갈 경우, 여론 후폭풍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345조 원의 자산을 보유한 KB금융의 행보에 자연스레 관심이 쏠리게 된다. 올 초 회장 및 주요 경영진 교체로 어수선한 신한금융이나 외환은행 인수에 매달려온 하나금융에 비해 KB금융의 인수 여력이 나아 보이기 때문이다. 어윤대 KB금융 회장이 지난해 7월 취임 이후로 메가뱅크에 큰 관심을 보여 왔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어 회장이 이 대통령의 고려대 경영학과 2년 후배로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등 이 대통령의 핵심 인맥으로 통해왔다는 점 역시 돋보인다.
어 회장은 현재의 메가뱅크 정국에서 일단 발을 뺀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지난 13일 KB금융 명동 본점에서 열린 KB금융공익재단 설립기념식에서 어 회장은 “우리금융 민영화와 관련, KB금융의 참여 준비는 안됐다”고 밝혔다. 이는 이 대통령 핵심 측근으로 평가받는 어 회장의 우리금융 인수 포기 발언으로 받아들여지면서 권력층 내부에서 강만수 회장 중심의 메가뱅크 추진이 탄력을 받고 있다는 관측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산은금융의 우리금융 인수 추진이 계속해서 부정적 여론을 양산할 경우에 대비한 KB금융의 입장 변화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산은금융에 대한 비판론이 득세해 KB금융이 대안으로 떠오르기만을 어 회장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란 관측도 등장한 상태다. 항간에는 산은금융의 우리금융 인수를 위한 들러리용 경쟁 파트너로 KB금융이 나서줄 시나리오도 거론되지만 이 경우 KB금융 외국인 주주들이 가만있을지가 의문이다.
일각에선 하나금융이 외환은행 인수가 여의치 않을 경우 외환은행 인수대금으로 쟁여놓은 4조 9000억 원을 우리금융 인수전에 사용할 가능성이 거론되기도 한다.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은 이 대통령과 고려대 경영학과 61학번 동기동창이다. 이런 까닭에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 추진 과정에서 특혜시비가 불거지기도 했다. 우리금융 민영화와 메가뱅크 탄생을 둘러싼 MB계 금융권 거물들의 시선이 뒤엉킨 가운데 이들의 주도권 다툼이 금융권의 지도를 어떻게 바꿔놓을지 궁금해진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