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 2월 1일 일본 롯데 마린스 스프링 캠프를 찾은 신동빈 회장이 이승엽과 악수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신동빈 회장이 스티븐슨 주한미국대사와 사직구장에 들러 롯데 자이언츠의 ‘쓰레기봉투 응원’을 하며 웃고 있다. 연합뉴스 |
롯데의 2세 경영체제 전환은 타 그룹에 비해 비교적 늦게 이뤄졌다.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한 신격호 총괄회장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44년 동안 1세 경영을 유지해왔다. 그리고 2011년, ‘신동빈호’의 새로운 항해가 시작됐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그러나 ‘야구경영’만큼은 일찍이 후계구도를 확정지었다.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와 일본 지바 롯데 마린스의 구단주인 신격호 총괄회장은 오래 전부터 신동빈 회장에게 야구 경영 전반을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의 야구애가 그만큼 남달랐기 때문. 롯데 구단 관계자는 “양 구단에 대한 신 회장의 애정이 각별하다. 롯데 자이언츠와 지바 롯데 마린스는 독립적 법인이지만 구단에 대한 지원이나 관심 정도에 차등을 두지 않는다”고 밝혔다.
롯데그룹의 야구경영은 한국에서 먼저 꽃을 피웠다. 실업팀으로 출발, 1982년 프로야구팀으로 전환한 롯데 자이언츠는 부산과 마산을 연고지로 창단됐고 현재 프로야구 대표 인기 구단으로 자리 잡았다. 지바 롯데 마린스는 1992년 롯데의 옷을 입었다. 일본 프로야구가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로 분리된 1950년 창단됐고, 1992년부터 현재까지 지바현에 본거지를 두고 있다.
홀수 달은 한국에서, 짝수 달은 일본에 머물며 셔틀 경영을 해온 신격호 총괄회장은 일본의 선진 야구 문화를 국내 야구에 접목시키는데 앞장섰다. 이만수 SK 와이번스 2군 감독과 타격왕을 겨뤘던 재일동포 홍문종 선수의 영입이 그 대표적인 예다.
신 총괄회장의 야구애는 아들 신동빈 회장에게 고스란히 이어졌다. 신 회장은 한국 선수들의 일본 프로야구 진출과 빠른 적응을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베푼다. ‘국민타자’ 이승엽과 김태균 선수의 일본 야구 진출 역시 신 회장의 작품이다. 그는 2004년 메이저리그 진출에 실패한 뒤 삼성 잔류와 일본 진출을 놓고 고심하던 이승엽 선수를 설득, 영입에 성공했고 2005년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신 회장은 김태균 선수의 영입에도 직접 관여했다. 이후 구단을 직접 찾아가 김 선수에게 “약점을 철저하게 파고들어 공격하는 일본 야구에 대응하라”는 등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뿐만 아니다. 국내에서 재기를 노리던 ‘핵잠수함’ 김병현에게 러브콜을 보내 야구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신 회장이 ‘스카우트의 귀재’로 불리기 시작한 건 제리 로이스터 전 롯데 감독의 영입 때부터다. 그는 긴 침체기에 빠진 롯데 자이언츠의 부활을 위해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국내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외국인 감독을 선임한 것. 당시 신 회장은 지바 롯데 바비 발렌타인 감독의 추천을 받고 로이스터 전 감독을 직접 찾아가 스카우트에 나섰고 영입에 성공했다.
신 회장의 안목은 적중했다. 2008년 롯데 자이언츠는 8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이는 중국 멜라민 파동으로 타격을 입은 롯데그룹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신 회장은 선수들에게 1억 5000만 원의 포상금을 지급한데 이어 2군 전용구장인 상동구장을 만들고, 원정 경기 때 항공편을 지원하는 등 적극적인 투자를 선보였다. 배재후 롯데 자이언츠 단장은 “바쁜 중에도 야구 소식을 꼼꼼히 챙기고 수시로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물어보곤 한다. 해박한 야구 지식을 겸비했다. 부산까지 내려와 자주 응원하곤 한다”고 귀띔한다.
그러나 기대감이 너무 컸기 때문일까. 롯데 자이언츠는 3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를 로이스터 감독 경질로 대응했다. 1분도 채 걸리지 않는 전화 한 통화로 계약은 종료됐고, 팬들의 재계약 지지 광고 운동에도 불구하고 로이스터 감독은 돌아오지 못했다. 팬들의 실망은 컸다. 영입에 적극 나섰던 처음과 달리 일사천리로 진행된 경질 절차 때문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 ‘짠돌이’란 이미지도 굳어졌다. 롯데가 제9구단 창단 반대 의사를 피력한데다가, 타격 7관왕·9경기 연속 홈런 세계신기록을 기록한 이대호의 7억 원 연봉 요구를 거절했기 때문. 롯데 팬들은 “7000만 원을 더 줄 수 없는 근거가 이대호가 실책 12개로 팀 내 고과 4위란 것 때문이라니. 이대호는 롯데의 자존심이다. 선수와 구단 모두 상처를 받고 말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통큰 치킨, 통큰 피자 등 롯데마트의 ‘통큰’ 전략을 주도하는 신 회장의 그룹 경영과 상반되는 야구단 ‘절약 경영’에 실망감을 드러낸 것.
이에 롯데도 분위기 전환에 나섰다. 양승호 감독을 선임해 2011 시즌을 새롭게 시작했고, 백화점·식음료·카드 등 롯데그룹 계열사들의 유통망을 활용해 스포츠 마케팅에 집중했다. 신 회장은 한·일 롯데 양 구단을 부지런히 오고 가며, 2010년 일본 시리즈 우승을 일군 지바 롯데와의 활발한 교류를 직접 지시하기도 했다. 조현봉 롯데 자이언츠 운영팀장은 “지바 롯데가 아무래도 야구 역사가 우리보다 오래된 만큼 배울 점이 많은 게 사실이다. 전지훈련·외국인 선수 교류 등 포괄적인 교류를 추친 중”이라며 양 구단의 협력에 기대감을 드러냈다.
최근 몇 년간 5월 이후 뒷심을 발휘하며 순위를 끌어올렸던 롯데 자이언츠. ‘통큰 경영’을 필두로 하반기 시장을 겨냥한 신 회장의 뒷심이 야구단 성적과 맞물려 어떠한 시너지 효과를 낼지 주목된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