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왼쪽)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현재 경영주체에 따라 금호석유화학·금호산업·금호타이어 세 소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채권단과의 자율협약 아래 박찬구 회장이 경영하는 금호석유화학은 금호피앤비화학 금호폴리캠 금호미쓰이화학 금호항만운영을 거느리고 있다. 채권단 경영하에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 진행 중인 금호산업(최대주주 미래에셋삼호, 지분율 11.62%)에는 아시아나항공(자율협약) 서울고속터미널 충주보라매 속리산고속 금호리조트가 속해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대한통운을 자회사로 두고 있지만 매각이 진행 중이고 대한통운이 거느린 금호터미널 아스공항 아시아나공항개발은 대한통운에서 분리돼 아시아나항공에 남는 것으로 정리돼 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금호산업 아시아나항공 등의 경영에 사실상 관여하고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워크아웃 중인 금호타이어(최대주주 우리은행, 지분율 24.8%) 한 곳의 경영만을 맡고 있다.
두 형제의 분리경영은 지난해 2월 채권단과 합의된 사항이다. 박찬구 회장은 지난해 3월 경영 복귀 이후 그룹 이미지(CI) 사용 중단, 그룹 IDC(인터넷데이터센터) 서버 사용중지 및 이전, 자체 그룹웨어 오픈, 공개채용 단독 진행, 단독의 인사 시스템 마련 등 분리경영을 넘어 계열분리를 위한 절차를 밟아왔다. 현재 금호아시아나그룹과 함께 쓰고 있는 서울 신문로 금호아시아나 본관 사무실도 서울 강남 이전을 검토했으나 임대계약 등에 묶여 보류된 상태다.
금호석유화학은 지난 11일에는 이사회를 열고 보유 중인 금호타이어 주식 전량(138만 8794주, 지분율 1.49%)을 장내 분할 매각하기로 결의, 실행에 들어갔다. 0.7%를 갖고 있는 금호산업 지분도 모두 팔 예정이다.
박찬구 회장 분리경영 행보의 가장 결정적인 것은 지난 3월의 계열 제외 신청. 금호석유화학은 지난 3월 18일 공정거래위원회에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를 기업집단에서 제외해달라고 신청했다. 금호석유화학의 신청을 받은 공정거래위원회는 90일 이내, 즉 6월 18일 이전에 결론을 내려야 한다. 공정위의 심사는 현재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 경쟁정책국 담당자는 지난 17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현재 이해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자료를 제출받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공정위의 심사결과가 어찌 나오든 금호석유화학 측의 분리 의지는 식지 않을 전망이다. 금호석유화학 관계자가 “이번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해도 매년 기업집단 지정을 하기 때문에 다시 신청할 것”이라고 밝힐 정도다. 이에 대해 계열 제외 당사자인 박삼구 회장 측은 “공정위 결정에 맡길 뿐”이라면서도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는 “어차피 계열분리는 하는 건데 박찬구 회장 쪽에서 좀 서두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찬구 회장의 이러한 강력한 분리 행보의 원동력은 경영실적에서 나온다. 금호석유화학은 지난 2월 박찬구 회장이 “이르면 연내 자율협약을 졸업하겠다”고 호언할 만큼 실적이 좋다. 지난해 매출액 3조 8863억 원, 영업이익 3596억 원에 이어 올 1분기 매출액 1조 6000억 원, 영업이익 2884억 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이어가고 있는 것.
여기에 연초 9만 200원이던 주가도 연일 상승세를 타고 지난 18일 24만 1000원까지 급등했다. 이는 계열분리가 시장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힘이 있을 때 실질적·법적 계열분리를 실행해 부실 이미지를 털어내겠다는 의도인 셈이다.
형 박삼구 회장의 대외적 영향력에서도 완전히 벗어나겠다는 박찬구 회장의 의지도 크다. 최근 진행 중인 검찰의 비자금 의혹 수사가 시작되자마자 금호석유화학 내부에서 박삼구 회장 측에 의혹의 눈초리를 보냈을 정도로 형제간 앙금은 여전하다. 이런 가운데 박삼구 회장은 지난해 11월 채권단과의 합의에 의해 그룹 회장으로 경영에 복귀한 이후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표로 대외활동을 하고 있다. 올 들어 그는 지난 1월 24일 이명박 대통령과 30대 기업 총수들의 오찬 회동, 지난 3월 10일 전경련회장단 회의에 참석했다.
박찬구 회장 측은 박삼구 회장의 그룹 대표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는 눈치다. 앞서 살펴봤지만 박삼구 회장은 공식적으로 그룹의 여러 계열사 중 금호타이어 한 곳만 맡고 있다. 게다가 지분은 더 열악하다. 금호석유화학의 경우 지분 7.70%(보통주 기준)를 쥔 박찬구 회장은 아들 박준경 해외영업 1팀장이 보유하고 있는 8.59%를 합쳐 16.29%의 지분율로 실질적인 최대주주다. 여기에 박 회장 측 주장대로 고 박정구 회장의 아들 박철완 해외영업 3팀장의 11.96%를 우호지분으로 치면 지분율은 28.25%까지 올라간다.
반면 박삼구 회장이 가진 ‘의미 있는’ 지분은 박찬구 회장이 경영하는 금호석유화학의 지분뿐이다. 박삼구 회장의 금호석유화학 지분은 5.30%. 아들 박세창 금호타이어 전무가 보유한 4.26%까지 합쳐 9.56%에 이르지만 현재 경영을 맡고 있는 금호타이어는 물론 주력 아시아나항공이나 이를 거느린 금호산업과도 연관성이 없다. 게다가 이 주식들은 채권단에 담보로 잡혀 있다.
금호석유화학의 한 관계자는 “채권단과 합의했다지만 지분도 없는 계열사 한 곳의 경영을 맡고 있는 박삼구 회장이 그룹을 대표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이제 계열분리가 완전히 이뤄지면 박찬구 회장은 형 박삼구 회장의 그늘에서 벗어나 명실상부하게 ‘금호석유화학그룹’의 대표성을 갖게 된다. 그래서인지 새 CI 도입도 완전한 계열분리와 경영정상화 뒤로 미뤘다.
박삼구 회장이 최근 금호석유화학에 미련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도 박찬구 회장을 자극한 듯싶다. 이런 소문에 대해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는 “억측일 뿐”이라며 부인했다. 소문의 진위 여부를 떠나 박찬구 회장 입장에선 박삼구 회장과 법적 계열로 묶여 있으면 나중에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모르니 빨리 연결고리를 끊는 게 속편할 법하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