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현 CJ그룹 회장(왼쪽)과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
CJ그룹은 지난 2008년 대한통운 인수전 때도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2006년 싱가포르 물류업체인 어코드익스프레스홀딩스와 삼성물산의 HTH를 인수하며 물류 사업의 확대 의지를 보였다. 문제는 자금이었다. CJ그룹엔 현금성 자산이 1000억 원을 넘기는 계열사가 거의 없다. 당시 4조 원대까지 치솟은 대한통운 인수가를 감당하기 버거웠던 CJ는 결국 최종 입찰에 불참, 인수를 포기하고 말았다.
이번에도 CJ그룹이 대한통운을 인수하기 위해선 포스코에 뒤지지 않는 ‘실탄’이 필요하다. M&A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 2008년 실패 때 아쉬움을 토로했던 이재현 회장이 이번만큼은 꼭 성공해야 한다며 사활을 걸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대한통운의 예상 매각가격은 1조 8000억 원 정도(주당 17만 원)다. 시장에선 CJ그룹의 인수자금 마련 열쇠로 CJ㈜와 CJ제일제당이 각각 3.2%(639만 주), 2.3%(459만 주) 보유하고 있는 삼성생명 지분을 꼽고 있다. 이를 매각할 경우 약 1조 원(20일 종가 9만 5600원 기준)을 확보할 수 있다. 현재 CJ가 손에 쥐고 있는 현금은 약 5000억 원. 부족액 3000억 원은 차입을 통해 마련하면 된다.
문제는 지난 12일로 상장 1주년을 맞은 삼성생명 주가가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삼성생명 주식 투자자들은 최소 10% 이상의 수익을 낼 것으로 기대했지만 손해만 봤다. 지난 1년 동안 공모가 (11만 원)에 한참 못 미치는 9만 원 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 증권가에선 CJ가 대한통운을 인수한 뒤 시장 가격이 11만 원 수준까지 올랐을 때 매각하는 게 더 이득일 것이란 의견이 나오고 있다.
삼성생명 지분을 활용하지 않을 경우 CJ가 빼들 수 있는 카드는 재무적투자자(FI)를 참여시키는 것이다. 최근 금융권에선 이재현 회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CJ가 보유하고 있는 삼성생명 주식을 매각하지 않는 대신 삼성에 FI 참여를 요청했다는 것. 그렇게 되면 CJ는 차입이나 주식 매각 등의 골치 아픈 과정을 생략하고도 포스코라는 막강한 상대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
대신증권 김용식 애널리스트는 “삼성생명 주식을 매각하는 방법으론 조달할 수 있는 금액에 한계가 있다. 전략적 제휴를 통해 삼성이 FI로 가게 된다면 CJ로선 든든한 우군을 얻게 되는 셈”이라며 “물론 CJ가 삼성생명 주식을 매각한 후 3000억~4000억 원을 차입해서 자금을 마련할 순 있겠지만, 보다 안정적이고 확실한 방법으로 삼성에 FI 요청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고 설명했다.
삼성으로선 CJ가 삼성생명 지분을 매각하지 않을 경우 대규모 지분매각(오버행)이 해소되기 때문에 주가 반등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KB투자증권 이상원 애널리스트는 “그동안 삼성생명 주가의 악재 중 하나가 바로 CJ의 삼성생명 지분 보유였다. CJ가 대한통운 인수대금을 마련하기 위해 삼성생명 주식을 언제 내다 팔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투자자들이 주식 매매를 꺼리는 것이다. 주가가 공모가에 한참 못 미치는 9만 원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삼성이 FI로 들어가면 CJ로선 지분을 팔 이유가 없어지므로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는 전략인 셈이다”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CJ그룹 관계자는 “두 오너 간에 어떤 말이 오고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으로선 FI보단 삼성생명 지분 매각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우리금융과 손을 잡았다는 것도 단순한 설에 불과하다”면서 “대신 매각을 하게 된다면 최대한 시장에 영향을 주지 않는 방법으로 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FI를 통한 ‘이재현-이재용 사촌연합’ 성사냐, 삼성생명 주식 매각이냐. 대한통운 인수를 위한 CJ그룹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