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호진 회장 | ||
진로 인수설 얘기가 나오면서 무수히 많은 기업들의 이름이 오르내렸지만 태광의 이름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애초 진로 인수전에 참여한 기업은 롯데, CJ, 두산, 하이트, 대한전선 등이었다. 하지만 이번 인수의향서 접수가 마감된 뒤 대상, 동원, 무학, 태광 등이 추가로 밝혀진 것.
이 중 태광의 참여는 업계에선 예상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태광그룹이 태광산업을 주축으로 인수의향서를 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태광은 단숨에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태광이 이번 인수전에 참여한 어떤 기업들보다도 더 탄탄한 재무구조를 갖고 있을 뿐더러 자본차익을 노리는 머니게임의 성격이 아닌 실제로 신규사업에 진출한다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태광의 진로 인수 프로젝트는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이 직접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 회장은 이번 프로젝트에 관해 “못 먹는 감 찔러보는 게 아니다”라며 “50년이 넘는 제조업 경험과 수출을 통한 해외시장 개척 경험, 기업인수합병을 통해 부실회사를 되살린 경험으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이 회장은 경영에 나선 이래 기업인수합병을 통해 그룹 볼륨을 성공적으로 키운 경험이 있다.
지난 96년 창업주인 이임룡 회장이 세상을 뜬 뒤 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그는 지난 97년 유선방송 지역방송사업(SO)에 진출해 태광을 국내 최대의 SO사업자로 끌어 올렸다.
태광은 서울과 중부권의 SO 20개사와 2백40만 가구의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다. 직접적인 지역 커버능력은 수도권에 한정된 SBS를 능가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증권가에선 태광이 갖고 있는 SO사업의 자산가치를 7천억원 안팎으로 평가하고 있다. 태광이 이에 투자한 돈은 1천억원 안팎이다.
이런 이력 때문에 이 회장의 인수합병 행보가 더욱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회장은 지난해 가을 무렵 사내에 태스크포스팀 구성을 지시해 그룹 본사회장실이 있는 신문로 흥국생명 빌딩에 인수팀이 결성됐다.
태광산업과 흥국생명투신운용 등 계열사 직원들이 투입된 이 팀에서 지난해부터 극비리에 이번 인수 프로젝트를 준비해 온 것이다.
태광의 위력은 오너인 이 회장의 의지뿐만 아니라 태광이 보유하고 있는 엄청난 현금력에서 기인한다.
자본금 55억7천만원인 태광산업의 유보율은 지난해 6월 기준으로 2만6천%이다. 쉽게 말해 태광 내부에 쌓인 돈이 1조6천억원 가량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부채비율은 13%대이다.
태광이 마음만 먹으면 1조5천억~3조원대를 호가하고 있는 진로 인수가를 전액 자체 보유자금만으로도 결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태광의 전임 회장인 이임룡 회장이 사돈을 이기택 야당 총재로 두었던 까닭에 정치 외풍에 대비해 철저한 현금 위주의 ‘안전 경영’을 펼쳐왔기 때문이다. 이런 수익성 위주의 경영 덕분에 태광은 80~90년대 국내 증시의 황제주였다.
이는 진로 인수가가 애초 1조원대에서 최근에는 3조원대까지 올라가고 있는 국면에서 가장 유리한 점이기도 하다.
이번 인수전에 참여한 기업 중 돈 문제에 자유로운 기업은 롯데와 CJ 정도이다.
두산의 경우 지난 최근 몇 년간 한국중공업(두산중공업) 인수, 대우종합기계 인수 성공 등으로 유난히 인수전에 강한 체질을 선보였지만 역으로 잇단 인수전 성공으로 인해 자금 마련이 다른 기업보다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두산은 컨소시엄 구성 파트너와 ‘아직도’ 협상중이다.
CJ는 롯데와 비교해 자금력이 낫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소주업에 진출해 있지 않다는 점에서 롯데의 조건에 밀린다고 할 수 없다.
반면 롯데는 자금력은 인정받고 있지만 부산 대선주조가 계열사로 편입돼 있어 독과점 시비에 걸릴 공산이 크다. 이는 산소주를 팔고 있는 두산이나 계열사에 소주회사가 있는 하이트도 마찬가지.
독과점 시비에 걸리지 않는 인수 후보군은 대한전선이나 동원, 태광 정도인 것.
일각에선 진로 인수전이 결국은 자금싸움으로 승패가 갈릴 것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돈 많고 걸릴 것 없는 태광의 등장이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