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11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2주기 심포지엄에 참석해 발표를 경청하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그러나 친노 세력의 규합엔 단순한 ‘노무현 가치’ 계승 여부를 떠나 김대중-노무현 정부로 이어진 10년 집권 전반에 대한 평가 문제, 두 정부의 추구노선과 계승 인물 논쟁이 결부돼 있다. 세 사람의 의지를 언제라도 무너뜨릴 수 있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 봉하마을 그룹, 독자세력화로 나선 유시민 국민참여당 그룹 등 분파들의 연대 및 결합의 수위와 시기에 따라 정치지형이 급변할 수 있다는 점이 세 사람을 긴장시키고 있다.
손학규 대표는 확고한 당권을 기반으로 공식적인 틀을 통해 친노 그룹을 아우르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4·27 재·보궐선거로 중단했던 ‘100일희망대장정’을 재개하는데, 민주당이 ‘무공천’ 결단을 내려 야권후보 단일화를 이뤘던 전남 순천 지역이 시작이다. 이로부터 전국을 순회한 다음 오는 31일 서울에서 일정을 마무리한다. 전국을 돌며 대안세력으로서의 존재감과 집권 이후 미래상을 국민에게 보여주겠다는 계획이다.
손 대표는 수도권이 정치기반인 데다 기존 야권 인사들과는 다른 정치경로를 걸어왔던 만큼 친노 그룹뿐만 아니라 김대중 정부 세력과도 등거리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김 전 대통령의 햇빛정책과 노 전 대통령의 개혁성에 대한 계승을 내걸며 호남과 영남의 야당 지지기반을 끌어들여야 한다. 손 대표가 천안함 침몰사건과 연평도 포격도발 당시 북한에 대해 취한 태도를 놓고 ‘햇볕정책 비판’이라는 당내 시선에 한껏 몸을 사려야 했던 것도, 그가 지난해 10월 당 대표에 취임하자마자 봉하마을을 찾아 노 전 대통령 무덤 앞에서 ‘정치적 사죄’를 했던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손 대표는 당내 친노 그룹 가운데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등 상징성이 강한 인물들을 가까이에 두고 있다. 이들을 통해 친노 그룹을 아우를 수 있다고 판단한다. 지난 경남 김해 을 보궐선거에서 유시민 대표의 ‘몽니’에 밀려 민주당 후보를 내지 못했지만, 결국 김태호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된 터라 야권 단일후보로서의 대표성에서 유 대표를 앞서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손학규 대세론’이 형성되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진단한 것이다.
손 대표는 2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때로는 ‘낡은 진보’와 갈등이 생길 수 있지만 이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 갈등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위대한 엔진”이라며 “진보는 이념굴레에 갇히지 말고 민생 우선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한 소신을 밝히면서 자신감을 표현했다. 그는 특히 “민주당은 6월 민생국회에서 정체성을 명확히 해야 한다. 서민ㆍ중산층의 삶이 우선순위가 돼야 할 것”이라며 “민주당이 추구하는 민생 우선의 정치는 ‘민생진보’로, 양적 성장지표보다 내실 있는 민생지표를 중시하는 개념”이라고 자신의 노선 좌표를 제시했다.
또 다른 유력 대권 주자인 정동영 최고위원은 원내외 활동 반경이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정 최고위원은 친노 인사들과의 직접적인 접촉이 적은 대신, 가장 진보적인 복지노선과, 야권 단일정당 건설론에 깊이 관여해 있다. 그는 이달 말로 예정된 환경부·노동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참여하며 환노위 활동에 주력해 향후 대권레이스에서 자신의 정책 콘텐츠에 해당하는 복지정책에 노하우를 쌓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 ‘범진보’의 중심으로 나서겠다는 복안이다.
그는 최근 현안인 저축은행 부실사태와 관련해서도 “당내 진상조사단을 구성하는 한편 6월 국회에서 국정조사를 추진해야 한다”며 “감사원장 시절 저축은행 사태를 알고도 청와대 눈치를 보느라 방치한 김황식 국무총리와 저축은행 사외이사를 지낸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 허준영 코레일 사장의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가장 강한 목소리를 냈다.
정세균 최고위원은 측근인 김진표 의원이 최근 원내대표에 선출되며 힘을 받기 시작했다. 정 최고위원 측에선 상대적으로 가장 많은 친노 의원들의 지원을 받아 이룬 결과라는 점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정 최고위원은 지난 18일부터 23일 노 전 대통령 서거 2주기 추도식까지 광주에서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잇는 민주성지행진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남부민주벨트론’을 주창하며 민주·진보세력의 결집을 강조하고 있다. ‘전북의 적자’로 자부하면서 안희정 충남지사, 김두관 경남지사 등 친노 인사들을 앞세워 부산·경남에서도 자신의 지지세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들 세 사람의 공통과제는 야권 단일화다. 지난해 6·2지방선거, 올해 4·27 재보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단일화는 곧 승리’라는 공식을 확인했지만 단일화의 지연과 그 과정에서의 불협화음은 오히려 패배로 끝나는 과정을 지켜봤다. 이들의 첫 관문은 친노 진영의 상징적 인물인 문재인 이사장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문 이사장의 ‘대권 역할론’에 대한 목소리가 잇따라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김진표 원내대표는 문 이사장이 차기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데 대해 “선의의 경쟁은 국민을 감동시킨다”면서 “좀 더 많은 다양한 인재가 대선레이스에 참여하는 것을 적극 장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야권단일화를 위한 1차 목표가 친노세력인 만큼, 당내 대선주자들은 다음 주 이들과의 접촉을 최우선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세 주자는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가치계승을 목표로 내년 총선과 대선 승리를 향해 속도를 내고 있지만, 야권 단일화를 둘러싼 제 정파 간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현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이들에게 ‘친노잡기’는 바로 앞에 놓인 가장 힘겨운 과제와 다를 바 없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