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전선 설윤석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티이씨리딩스. 이 회사는 모기업 대한전선과의 거래를 통해 지난해만 무려 3배 가까운 매출상승을 기록했다.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주목할 점은 티이씨리딩스의 지분을 설 부회장을 위시한 대한전선 총수일가가 점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53.7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설 부회장 외에도 동생 윤성 씨(36.97%)와 어머니인 양귀애 대한전선 명예회장(9.26%) 등 오너일가가 100%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폐쇄적인 구조는 자칫하면 비자금 조성 및 편법증여 등의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사고 있다. 실제로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 일가 역시 오너일가가 그룹을 장악하는 시스템을 토대로 편법과 비리를 자행해 엄청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티이씨리딩스는 지분관계뿐 아니라 매출액도 눈길을 끌고 있다. 총 자본금 8700억 원을 보유하고 있는 티이씨리딩스는 지난해 973억 원대의 매출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2009년 매출액인 348억 원보다 무려 3배 가까이 상승한 것으로 10명이 채 되지 않는 직원 수와 회사규모를 감안하면 엄청난 실적을 올린 셈이다.
문제는 티이씨리딩스의 구체적인 거래내역이다.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티이씨리딩스는 특수관계회사인 대한전선과 눈에 띄는 거래를 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이 회사가 지난해 달성한 매출 973억여 원 중 무려 946억 7000만 원이 대한전선과의 거래였는데 비율로 따지면 97%에 달하는 수치다.
확인결과 티이씨리딩스와 대한전선 간의 이러한 거래는 비단 지난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2009년에도 티이씨리딩스의 매출 348억 2100만 원 중 347억 7600만 원이 대한전선과의 거래로 인해 발생했다. 이는 무려 99%에 달하는 것으로 매출의 전량을 사실상 대한전선과의 거래에 의존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티이씨리딩스와 대한전선의 특수한 거래관계는 과거 수년간 이들 회사 간 거래한 매출 비중을 살펴보면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대한전선은 2004년 티이씨리딩스의 658억 5500만 원 매출 중 653억 400만 원을(99%), 2005년 805억 1500만 원 중 795억 100만 원을(99%), 2006년 620억 100만 원 중 608억 5600만 원을(98%), 2007년 460억 5400만 원 중 446억 2900만 원을(97%), 2008년 479억 3200만 원 중 460억 3900만 원을(96%) 각각 차지했다. 대한전선이 최대 지분을 갖고 있는 계열사인 티이씨리딩스와 내부거래를 통해 ‘일감’을 몰아주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는 설 부회장이 그룹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 및 영향력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 재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지난 2004년 대한전선에 입사한 설 부회장은 만 6년 만에 부회장 자리에 등극해 재계의 주목을 받았다.
1981년생인 그는 2009년 10월 경영기획부문 전무, 2010년 2월 부사장을 지낸 후 사장자리도 거치지 않고 두 단계 널뛰기 승진을 했다. 실제로 설 부회장은 2005년 과장, 2007년 부장, 2008년 상무, 2009년 전무, 2010년 부사장 등 매년 한 직급씩 승진을 거듭해 왔는데 여타 대기업 총수 자녀들의 승진현황과 비교해 봐도 단연 눈에 띄는 경우였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입사 10년 만에 임원 자리에 오른 것과 비교해 봐도 상당히 파격적인 인사임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재계를 놀라게 한 것은 설 부회장이 전례없는 초고속 승진을 했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설 부회장이 유독 재계의 주목을 받은 이유는 그가 대한전선 3세임을 감안한다 해도 그의 나이가 올해 서른 살에 불과하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 때문일까. 재계 최연소 부회장으로 이름을 올린 설 부회장의 파격적인 승진을 두고 재계 일각에서는 여러 가지 말이 많았다. 경영능력과 실무경험보다 최대주주이자 오너 3세라는 것이 유례없는 파격인사에 크게 작용했다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던 것도 사실이다. 동시에 오너일가의 핵심인물이자 대한전선의 개인 최대주주로서 그룹의 전반적인 경영에 대한 각오와 책임이 남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재계 일각에서 설 부회장이 티이씨리딩스를 통해 그룹 전반을 장악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이유도 이러한 배경에 연유한다. 상당한 증여세를 감수하면서 자녀들에게 부의 대물림을 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재벌들이 경영리스크가 작은 사업을 다루는 비상장 계열사를 통해 터널링(편법경영)을 시도하고 있는 나쁜 관행과 무관치 않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일감 몰아주기’는 오너 2, 3세 편법경영의 대표적인 수법으로 그들로 하여금 ‘땅 짚고 헤엄 치기’식 경영을 가능케 해주는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티이씨리딩스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대한전선 역시 일감 몰아주기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대한전선은 재무건전성 회복을 위해 그룹 자체적으로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와중에도 티이씨리딩스에 대한 특혜를 멈추지 않아왔다는 점에서 더욱 눈총을 받고 있다. 실제로 대한전선은 비핵심 자산 일괄 매각을 통해 추가유동성 자산을 확보하는 한편 올 초에는 무주리조트와 세부리조트까지 매각하는 등 대대적인 사업구조조정을 단행해왔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