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건복지부가 영상장비 수가 인하정책을 추진하자 그만큼 부담이 커지는 병원업계에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사진은 CT 촬영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2011년 건강보험 재정위기가 엄습했다. 연간 3조~5조 원에 달하는 국고지원에도 불구, 지난해 1조 2994억 원의 적자를 냈던 건강보험이다. 올해 역시 1조 2000억 원 안팎의 적자가 예상됨은 물론, 2030년 그 적자규모가 약 50조 원에 달할 것이란 발표가 나오자 건강보험 재정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높아져만 갔다.
이에 복지부는 지난해부터 거론돼왔던 영상검사 수가 인하 방안을 강력 추진하고 나섰다. 영상장비 수가를 CT 14.7%, MRI 29.7%, PET 16.2%로 인하해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것. 의료수가란 국민건강보험공단(공단)과 환자가 의료서비스 제공자에게 제공하는 돈을 말하는데, 이는 서비스의 정도·경제지표 등을 토대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심의해 결정한다.
고가 의료검사에 해당됐던 CT·MRI 등의 수가가 인하되면 공단과 환자의 부담은 줄고 병원의 부담은 그만큼 늘어나게 된다. 결국 건강보험 재정 1291억 원과 환자 부담액 387억 원이 고스란히 병원의 손실액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러한 복지부의 영상검사 수가 인하 정책에 병원계는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복지부가 수가인하 폭을 정한 기준과 절차에 불법적 요소가 있다는 것. 특히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되는 MRI 비급여 비율을 산정함에 있어 공단 산하 병원 1곳만을 조사해 논란이 일었다.
대한병원협회(협회) 관계자는 “복지부는 전수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의사 때리기’에 나섰다. 제 식구라 할 수 있는 공단 산하 병원 1곳의 비급여 비율을 기준으로 전체 병원에 적용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게다가 국내 병원들의 MRI 급여 대비 비급여 비율이 평균 1 대 0.77에 불과함에도 복지부는 그의 2배에 해당되는 1.4로, 실제보다 두 배 가까이 높게 적용했다. 건보재정 확충을 위해 필요한 비용을 미리 설정해두고 이를 역산해서 비급여 비율을 산정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고 밝혔다.
협회 측은 수가 인하 산출상의 오류도 지적했다. 하루 두 건 이하 검사하는 장비를 제외하고 하루 2000건 이상 사용하는 장비를 계산에 포함시켜 장비사용량(장비당 평균 검사건수)을 부풀렸다는 것. 장비사용량이 많아질수록 수가인하 폭은 더욱 커지게 된다. 결국 병원협회는 지난달 20일, 행정법원에 보건복지부 장관 고시에 대한 무효 행정소송과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했고, 복지부와 병원계의 갈등은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다.
복지부 역시 억울하긴 마찬가지다. 복지부 건강보험급여과 관계자는 “수가 인하 기준을 정하기 위해 각 병원에 비급여 항목과 그 비율을 보내달라는 협조를 구했지만 제출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공단 산하 병원의 비급여 비율을 기준으로 했던 것”이라면서 “병원계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했다. 처음 산정된 비급여 비율은 1 대 2였다. 이후 협회가 제출한 자료를 받아 1.4로 조정한 것이다. 비효율적인 장비 역시 1건 이하로 했다가 2건으로 변경해줬다. 유지보수비도 5% 인상해줬다. 그런데도 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해 섭섭할 따름이다. 이래서야 의료계 동반자로 볼 수 있겠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수가 인하로 인한 복지부와 병원계의 갈등은 이전에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PACS) 수가 인하 정책이다. PACS는 정보통신 기술 확산을 위해 복지부가 장려한 시스템이다. 필름의 원자재 값이 올라가자 비용 절감과 보관상 편리를 위해 PACS 사용을 권장했던 것.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각 병원마다 만만치 않은 PACS 설치비용이 부담됐던 게 사실이다. 당시 복지부가 PACS 수가를 높여줬기 때문에 겨우 설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PACS 수가를 ‘반 토막’ 내버렸다. 병원들은 투자비용을 회수할 기회도 잃은 채 뒤통수를 맞은 셈”이라고 전했다. 때문에 병원계에선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될 때마다 땜빵식 수가 인하를 할 게 아니라 재정 안정을 위한 항구적인 방안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병원계는 무리한 수가 인하는 환자에게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5월 1일 영상장비 수가 인하 정책이 예정대로 시행되자 환자는 전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CT·MRI 검사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는 단면에 불과하다는 것. 기존의 운영 체제를 유지할 경우 대형 대학병원은 약 100억 원의 손실이, 소규모 병원에선 약 15억~40억 원의 손실이 불가피하다.
이에 병원들은 이미 손실 절감을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수가 인하에 대응해 일찍이 영상검사 건수를 두 배로 늘리란 지시가 내려왔다. 비용이 절감되긴 했지만 환자들은 불필요한 검사를 예전보다 많이 하게 될 것 같다”며 우려를 표했다.
영상검사 수가 인하에 성공한 복지부는 약제값 인하에 나섰다. 특허만료 신약과 복제약의 약값을 현행 기준보다 낮게 책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 이로 인해 환자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의 대가는 제약사들이 짊어지게 된다. 벌써부터 의료계에선 “복지부가 의료수가 인하, 약제값 인하에 이어 국민건강보험료 인상을 단행할 것”이란 이야기가 돌고 있다. 의료수가·약제값 인하 정책의 성공은 건강보험료 인상을 앞둔 복지부의 명분을 세워주기 때문이다.
또한 복지 정책이 내년 대선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만큼, 복지부와 공단으로선 건강보험료 인상안을 그 전에 결정지어 놓아야 향후 재정적자로 인한 부담을 덜 수 있다. 이에 복지부 관계자는 “의료수가 인하에 이어 약제값 인하를 실시하고 있는 건 맞지만 그 연장선에서 건강보험료 인상을 계획한다는 건 금시초문이다. 연말 건강보험 재정 정도에 따라 보험료 인상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고 일축했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