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구본무 회장, 구본능 회장, 구본준 부회장. |
프로야구단 LG 트윈스가 투타 모두 상위권을 휩쓸며 단독 2위를 굳건히 하고 있다. LG 트윈스는 탄탄한 팀워크를 바탕으로 선두 SK 와이번스의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기도 하다. 이 같은 상승세 속엔 LG전자 CEO(최고경영자)이자 LG 트윈스 구단주인 구본준 부회장의 ‘신바람 경영’이 숨겨져 있었다. 최근 ‘턴어라운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LG전자 경영 성과와도 맞물려 구 부회장이 쾌재를 부를 법도 하다. 야구단 ‘신연봉제’ 도입을 진두지휘하며 팀 분위기 쇄신을 이끈 구 부회장의 야구사랑은 형님들인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고 한다. <일요신문>이 연재하고 있는 ‘재계 리더들의 스포츠애(愛)’, 그 네 번째는 이야기는 LG그룹 구본무·본능·본준 삼형제의 야구 사랑이다.
“솔직히 LG만큼 오너가 직접 구단을 챙기는 팀은 찾아보기 힘들죠. 기업 경영 방식이 야구단 운영에 100% 통한다고 볼 순 없지만, 요즘 야구 관계자들 사이에선 ‘구본준 구단주의 신연봉제가 LG의 상승세에 큰 역할을 했다’고 인정하고 있어요. 솔직히 다른 구단에서도 신연봉제 도입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을 정도니까요. 5월 말까지 LG가 이 분위기를 이어간다면 타 구단들도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5월 중반까지 계속되는 LG 트윈스의 상승세에 다른 구단 모두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는 한 야구단 관계자의 전언이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LG그룹 오너들의 ‘야구애(愛)’가 올 시즌에야 비로소 이렇게 꽃을 피운다는 분석이 나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LG그룹 오너 삼형제의 야구사랑 이야기는 LG 트윈스 창단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0년 1월 18일, 구본무 당시 LG그룹 부회장(현 LG그룹 회장)은 인기 구단이던 MBC 청룡을 인수하며 야구단 운영에 뛰어들었다. 그룹 후계자로서 한창 경영수업을 하던 중이었지만 틈날 때마다 잠실야구장을 찾아 응원할 정도로 야구를 향한 그의 열정은 각별했다. 출장 중에도 팀 성적을 꼼꼼히 챙기는 터라 구 회장의 비서는 해외에서도 국내 프로야구 뉴스를 열독해야만 했다.
구 회장의 이 같은 관심에 구단 선수들 역시 놀라긴 마찬가지. 매년 LG 트윈스의 일본 오키나와 전지훈련 캠프를 찾아 격려하는 구단주의 열정에 선수들은 힘을 얻었다. 봄마다 치러지는 ‘단목행사’도 그 일환이었다. 구 회장은 경남 진주시 단목리에 있는 그의 외가로 선수들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하고 우승 기원 고사를 지냈다.
지난 2000년 프로야구 선수협회 파동으로 단목행사는 자취를 감췄지만 구 회장의 야구애는 식지 않았다. 서울 한남동 자택으로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 전원을 불러 격려했고, 오키나와 전지훈련 캠프에선 선수단 회식을 주재하며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면 백지수표를 풀겠다’는 화끈한 당근책을 제시하기도 했다.
구 회장의 야구사랑은 둘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에게 고스란히 이어졌다. 학창 시절 야구선수로 활약한 구본능 회장이다. 흙먼지 날리는 학교 운동장에서 야구공과 함께했던 그때의 기억은 그를 야구계의 든든한 후원자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구 회장은 야구계 발전을 위해서라면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2008년엔 강원도 양양군에 위치한 남애초등학교 학생들을 위해 LG 마크가 새겨진 유니폼과 연식야구장비 일체를 지원했다. 환경이 열악해 야구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학생들의 사정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LG 야구단 관계자는 “워낙 야구에 대한 관심이 커서 지원이 필요한 곳이 있으면 남몰래 선행을 베푸신다”며 구 회장의 전폭적인 후원에 감사를 나타냈다. 구본능 회장은 또 전술·규칙 등 야구 전반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자랑한다. LG 트윈스 백순길 단장의 말이다.
“구 회장님 옆에서 야구를 보면 긴장이 배가 됩니다. 어떤 질문을 던지실지 두렵기 때문이에요. 선수 전원의 장단점은 물론 전술까지 꿰뚫고 계십니다. 회장님과 이야길 나눠본 야구 관계자들 모두 그 지식의 깊이에 혀를 내두를 정도니까요. 저 역시 야구 관련 지식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인데, 경기 중에 회장님이 던지는 질문에 대해선 가끔 말문이 막힙니다.”
사비를 털어 <사진으로 본 한국야구 100년>을 발간한 구본능 회장은 판매 금액 일체를 기부해 장충리틀야구장 전광판을 세우기도 했다. 요즘도 가끔 동문들과 만나 야구를 즐기는 구 회장은 지난 2006년 제11회 일구상 대상을 수상한 자리에서 “물 당번이 주 임무다. 볼보이로 뛰기도 하고 그라운드에 선을 긋는 것이 내 포지션”이란 말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구본무·본능 두 형의 넘치는 야구사랑은 셋째인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에 이르러 곱절이 됐다. 경남중학교 야구팀에서 투수로 활약한 바 있는 구 부회장은 지난 2008년 LG 트윈스 구단주로 취임하면서 ‘혁신의 칼’을 빼들었다. 취임 직후엔 당시 대표로 있던 LG상사 내에 직장인 야구팀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야구의 매력은 직접 야구공을 던져볼 때 비로소 깨닫게 된다’는 그의 신념이 작용했기 때문.
뿐만 아니다. 구 부회장은 ‘책임경영과 성과주의’를 강조하는 LG그룹의 인사원칙을 야구단에 적용했다. 입단 연차와 상관없이 성적이 좋은 선수의 연봉을 올려주는 ‘신연봉제’를 도입한 것. 때문에 연봉 5억 원을 받았던 박명환 선수는 5000만 원에, 연봉 2400만 원에 불과했던 오지환 선수는 1억 원에 재계약을 했다.
또한 ‘외부 인력보다는 내부 인력을 키워야 한다’는 LG 경영 방침을 반영, ‘자유계약선수(FA) 영입 금지’를 선언해 2군 선수들의 사기를 높였다. LG전자 CEO로 취임한 이후 부쩍 바빠진 그지만 틈날 때마다 잠실야구장을 찾아 선수들을 응원한다. 다시 LG 트윈스 백순길 단장의 이야기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잠실경기 거의 전 게임을 보러 오셨습니다. 격식을 따지는 걸 워낙 싫어하는 분이라 야구장에도 아무 말 없이 나타나곤 해요. 혼자 오셔서 야구만 보다가 9회 경기 종료 직후 몰래 나가시죠. 요즘은 밤늦게 전화가 걸려와 ‘우리 LG, 중계 채널이 어디냐’며 다급하게 물어보곤 하십니다. 하루 일정이 끝난 뒤 댁에 돌아가는 차 안에서 챙겨보시는 듯했어요.”
구 부회장은 요즘도 지인들과 합심해 만든 야구 동호회에서 투수로 활약하고 있다. 구리에 위치한 LG 트윈스 2군 경기장에서 사회인 야구팀과 종종 시합을 한다고. 오랫동안 사회인 야구에서 활약해 온 한 야구인은 “마운드에 올라 60대로 보이지 않는 스피드와 공의 궤적을 보여 놀라곤 한다. 20~30분간 무려 180개의 공을 던진 적도 있다더라. 솔직히 그 연배에 그만 한 투수는 없다”며 구 부회장의 소문난 실력에 대해 혀를 내둘렀다.
올 시즌 프로야구 최대 화두로 떠오른 ‘쌍둥이의 부활’. LG그룹 오너 삼형제의 한없는 야구사랑에 LG 트윈스가 과연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는, 야구계의 속설을 방망이로 두들기며 상승세를 계속 이어갈지 주목된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