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27 재보선 김해 을 패배로 정치적 타격을 입은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 선거 패배이후 친노 지지자들에게도 거센 비판을 받은 유 대표지만 ‘야권 대표주자’ 로서 재기 가능성은 여전하다는 평가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김해 을에서 진 건 뼈아픈 결과였다. 국민들이 국민참여당에게 기대하는 건 분명한데 다만 우리가 아직 미숙해서 정말 국민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라 절감하고 있다.”
김해 을 패배에 대한 아쉬움은 매우 큰 듯했다. 유시민 대표의 측근인 국민참여당의 한 관계자는 재보선 김해 을 패배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양순필 전 국민참여당 대변인은 “결국 진 것이 아쉽긴 하지만 선거전 초반 정당지지율이 6~7%에 머무르다가 막바지엔 20%까지 올라간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선거 결과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지만 우리는 우리가 얻어낸 4만 3000표라는 결과가 그렇게 나쁘다고는 보지 않는다”며 향후에 대한 각오를 전했다.
재보선 패배 이후 국민참여당 내에서는 반성과 고뇌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국민참여당을 포함해 노무현재단과 참여정부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한국미래발전연구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일이 있기도 한 5월 한 달 동안을 ‘친노계의 미래’에 대한 토론의 시간으로 정한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지난 11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2주기를 맞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는 ‘노무현의 꿈, 그리고 현재적 의미’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렸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 노회찬 전 진보신당 대표, 권영길 민주노동당 원내대표, 이재정 전 국민참여당 대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 참석자들은 각기 다른 정당에 속한 이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공통된 뜻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꿈을 현실화시키자는 데에 있었다.
역시 이날 가장 중점이 된 토론 주제는 ‘야권 통합과 연대’에 관한 내용이었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민주주의를 말살시키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과 대결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이념적 정체성은 인정하면서 일치할 수 있는 부분을 만들어야 한다”며 “통합이 가장 좋지만 어렵다면 연합을 통해 일대일 구도를 만들면 집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 원내대표는 재보선 이후 야권 통합에 대해 가장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놓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재보선이 끝난 다음 날 “(야권통합에 관해) 민주당에 서 주도적으로 통합하자고 제안하는 것보다는 국민참여당과 유시민 대표가 어떤 결단을 통해서 통합의 길을 선택한다고 하면 참 좋은 일이 있을 것으로 본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그러나 박 원내대표의 이러한 의견에 대해 국민참여당 측의 거부감은 적지 않다. 재보선 패배로 크게 낙심하고 있는 국민참여당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발언이었다는 분위기다.
기자가 취재 도중 의견을 물어본 국민참여당 측 관계자들 대부분이 “박 원내대표의 진정성이 의심스럽다”는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국민참여당의 한 핵심관계자는 “진짜 통합을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통합이 관심사라기보다 재보선을 통해 기회를 얻은 민주당이 야권연대 논의에서 주도권을 잡으려는 의도로 보일 뿐”이라고 밝혔다. 지난 11일 심포지엄에서도 야권통합 방안에 대한 세부적 논의는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이날 참석했던 한 민주당 관계자는 “야권통합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수준에 그치는 아쉬운 자리였다. 앞으로 주도권 다툼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사안이기에 과연 야권 통합이 현실화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국민참여당이 처한 문제는 비단 야권통합 논의의 주도권 경쟁에서 밀렸다는 것에서 그치진 않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뒤를 잇는 ‘적자’라는 유시민 대표의 타이틀은 물론 ‘친노계’를 대표하는 당이라는 명분이 재보선 패배로 상당부분 희석되었다는 것에 더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 재보선 이후 당내에서는 “친노라는 타이틀을 더 이상 쓰지 말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성에 큰 흠집을 냈다”는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단지 국민참여당 내의 의견만은 아니었다.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 상당수도 유시민 대표를 향해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얼마 전 트위터에서 가장 회자되었던 글은 ‘노무현에게 있고, 유시민에게 없는 것. 노무현은 지는 길을 가서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고, 유시민은 이길 수 있는 길을 찾다가 마음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이 글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낙선을 감수하고 부산에 출마했던 것과 달리, 유시민 대표는 이길 수 있는 김해 을에 ‘올인’하며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는 뼈아픈 지적이었다.
재보선 패배의 충격으로 한동안 자택에서 칩거하던 유시민 대표도 최근 당무에 복귀한 뒤 국민참여당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노한래 참여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유 대표는 당원들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겠다는 생각이다. 본인의 생각과 다소 다를지라도 다수의 생각대로 당을 이끌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5월 한 달 동안 당원은 물론 지지자들의 의견을 흡수해 향후 야권연대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비단 민주당뿐만이 아닌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을 포함한 전반적인 야권연대를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 대표와 국민참여당이 가진 또 하나의 숙제는 친노계의 융합·통합 문제다. 이는 국민참여당의 정체성과도 직결되는 것이기에 야권 통합 이상으로 중요한 과제일 터. 이번 재보선을 통해 국민참여당이 잃은 가장 큰 것은 낙선이 아니라 친노계 세력다툼을 표면화시킨 것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애초 김 을 지역 출마를 고려했던 김경수 노무현재단 사무국장이 유시민 대표의 ‘입김’으로 불출마 결심을 했던 것으로 전해지는 등 친노계 내의 세력 분화 및 갈등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았다. 정치전문가들은 “향후 야권통합 논의에서 국민참여당이 민주당과 경쟁적 관계로 참여하려면 분화된 친노계를 흡수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지적한다.
김해 을 야권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극적인 협의를 이끌어냈던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최근 유시민 대표를 대신할 친노 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문 이사장은 지난 11일 열린 심포지엄에 참석해 이명박 정부를 거세게 비판하는 발언으로 눈길을 끌기도 했다. 정치행보에 상당히 신중했던 이전과는 한층 달라진 모습이었다. 친노계인 백원우 민주당 의원 역시 한 인터뷰에서 “당내에선 영남표심을 공략할 사람으로 문재인 카드가 거론되기도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김해 을 불출마 선언으로 주목을 받았던 김경수 노무현재단 사무국장은 지난 1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문재인 이사장은) 향후 야권통합을 위해 필요한 역할을 하겠다는 적극적인 입장”이라며 이전과는 다른 정치행보를 하게 될 가능성을 열어두기도 했다(박스기사 참조). 참여정책연구원 노한래 부원장 역시 “문재인 이사장은 훌륭한 분이다. 큰 뜻으로 격려하고 지지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한편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2주기를 맞아 노무현재단에서는 추모 상품을 파는 인터넷 쇼핑몰 ‘노란가게’를 오픈하는 등 추모열기를 이어가기 위해 노력 중이다. 11일 심포지엄에 이어 12일에는 ‘노무현을 만나다’ 추모 전시회를 여는 등 재보선 이후 친노계의 움직임은 더 빨라진 모습이다. 추모전시회에는 손학규 민주당 대표 등 야권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고, ‘신정아 파동’의 장본인이었던 변양균 전 정책실장도 모습을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 또한 이번 심포지엄을 주최한 한국미래발전연구원은 다음달 3일 ‘복지국가와 민주주의를 위한 싱크탱크 네트워크’를 출범시켜 본격적인 야권 정책연합의 기틀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한다.
일각에서는 “유시민 대표는 타격을 받았지만, 이를 계기로 친노계의 세력재편과 결집이 이뤄지는 긍정적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또한 유시민 대표에 대한 지지층이 견고한 만큼 대권주자로서 재기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김해 을 학습효과’로 인해 차기 총선과 대선에서 야권연대를 필히 이뤄내야 하는 ‘손학규 대표와 민주당’과 ‘유시민 대표와 국민참여당’ 사이 ‘교감’의 폭이 오히려 더 넓어질 가능성도 있다. 친노계의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
“결과를 떠나 안타까워”
4·27 재보선에서 국민참여당 이봉수 후보의 낙선을 가장 가슴 아프게 바라보았을 이들 중 한 명은 바로 노무현재단 김경수 사무국장일 것이다. 김 사무국장은 애초 민주당 후보로 김해 을에 출마하려고 마음먹었으나 지난 2월 16일 갑작스레 불출마 선언을 해 그 이유에 대해 궁금증을 자아낸 바 있었다. 당시 김 사무국장은 기자에게 “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라며 “출마여부는 제 개인이 고민하고 생각해서 결단한 것일 뿐 유시민 원장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전한 바 있다. 하지만 그의 불출마 결심 배경에는 ‘국민참여당 후보’를 당선시키려 했던 유시민 대표에 대한 부담이 작용했을 수밖에 없다는 후문이었다.
결국 국민참여당 이봉수 후보는 낙마했고 이 과정을 지켜봤던 김경수 사무국장의 심기도 편치는 않았을 터. 김 사무국장은 지난 1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결과를 떠나 여러 가지로 안타까운 것이 사실”이라며 재보선을 치르며 불거진 친노계 분열 양상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재보선 다음 날 그는 유시민 대표를 잠깐 만났다고 한다. 유 대표는 재보선 패배 충격으로 당 지도부와의 봉하마을 방문 계획을 취소했으나 홀로 봉하마을에 찾아간 바 있다. 그때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면서 김경수 사무국장과 마주치게 되었다고. “당시 무슨 얘기를 나누었나”는 질문에 김 사무국장은 “무슨 이야기가 필요하겠느냐”며 그저 웃음으로만 답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2주기 행사 준비로 바쁘다는 김 사무국장은 최근 문재인 이사장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했다. “대선출마 여부에 대해서는 본인의 생각이 전혀 바뀐 바가 없다. 다만 야권통합과 단결을 위해 필요한 역할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생각이다.” 과연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카드’가 어떻게 쓰이게 될지 자못 궁금해지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