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원총회에서 손학규 대표에 직접 의원 배지를 달아주는 박지원 원내대표. 손 대표를 견제하며 사실상 당 주도권을 쥐어온 박 원내대표의 이 모습은 당내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그간 손 대표를 견제해왔던 이들 중 한 명으로 거론되는 인물은 박지원 원내대표다. 박 원내대표는 공식석상에서 손 대표 측을 자극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하는 등 사실상 당의 주도권을 쥐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손 대표 측 의원들 주변에서는 “엄연히 당대표가 있는데 자신이 당대표 노릇을 하려고 한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 손 대표가 들어왔던 가장 ‘쓰린’ 말은 바로 ‘의원 신분’이 아니라는 얘기이기도 했다. 손 대표 측 한 민주당 인사는 “박 원내대표는 손 대표는 물론 당대변인을 맡고 있는 차영 대변인에게도 원외 인사라는 점을 들어 종종 기분 상하게 할 만한 발언으로 손 대표 측을 자극해왔다”고 전했다.
그러나 재보선 다음 날 의원 총회에서 손 대표 가슴에 직접 의원 배지를 달아준 이는 바로 박지원 원내대표였다. 이 장면은 당내에서도 이슈가 되었을 만큼 화제를 모았다고 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의원 신분이 된 손 대표에게 배지를 달아주는 박 원내대표가 누구보다 기뻐하는 웃음을 보이는 모습이 참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고 전하기도 했다. 손 대표는 “재선이 되고 나서는 배지를 거의 달지 않았었는데, 지금 내 마음은 결코 이 배지를 떼지 않을 것”이라며 감격스러운 마음을 밝히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전당대회를 통해 당대표로 선출되며 화려하게 정계에 복귀한 뒤, 이번 재보선을 통해 9년 만에 의원 배지까지 달게 된 손학규 대표의 대권주자로서의 위상은 한층 공고해졌다는 평가다. 손 대표는 그동안 제1야당의 당수였음에도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에게 지지율에서 밀리며 대선주자로서의 입지가 흔들려왔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재보 선을 통해 일차 관문은 통과했다는 분석이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손학규 대표가 지역구 한 곳인 분당 을에서 승리한 것이지만 국민들로부터도 재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를 보여주듯, 재보선 이후 차기 대선주자지지도 조사에서 손 대표의 지지율은 껑충 뛰었다. 중앙일보·YTN·동아시아연구원이 재보선 이후인 지난 4월 30일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손학규 대표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35.8%)에 이어 11.5%로 2위를 차지했다. 손 대표는 지난 3월 조사 당시엔 3.1%의 지지율을 얻은 바 있는데, 한 달 사이에 네 배 가까이 급등한 셈이다. 반면 유시민 대표는 3월 조사(10.6%)에 비해 3.5%p 하락한 7.1%를 기록했다.
재보선 이후 실시된 다른 여론조사의 경우에도 상황은 비슷하다. 4월 28일 실시된 ‘모노리서치’의 조사에서 박 전 대표는 지난 3월 13일 조사(36.5%)보다 2.1%p 하락한 34.4%를 얻었고, 손 대표는 7.2%p 올라간 14.9%, 유시민 대표는 3.6%p 하락한 7.1%를 기록한 바 있다. 손 대표의 지지율이 급상승한 것은 손 대표 측으로선 일단 고무적인 상황. 그러나 일각에서는 ‘일시적 현상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손 대표가) 지난 전당대회 때 지지율 2위로 올라섰다가 다시 내려간 것도 전당대회의 ‘컨벤션 효과’로 인한 일시적 지지율 상승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의 지지율 상승세도 계속해서 이어질지는 낙관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인지 손 대표 측에서도 현재의 지지율 상승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진 않는 분위기다. 손 대표 측 한 관계자는 “언론에서 박근혜 전 대표와 손학규 대표를 차기 대선의 라이벌 구도로 전망하고 있지만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라며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도 그는 “지금까지 손 대표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 것만은 분명하다. 이번 재보선 결과를 통해 손 대표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나 당내에서의 평가 모두 달라질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재보선 이후 손학규 대표는 장기적으로 대선주자로서의 입지 강화를 위한 전략 마련에 들어갔다고 한다. 우선 당 대표로서 당내 위상 강화를 위해 이전보다 거침없는 리더십을 보여줄 것이라는 전언이다. 손 대표 측근 의원들 내에서는 “잃어버렸던 당대표의 위상을 되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았던 것이 사실. 손 대표 측 한 민주당 관계자는 “손 대표를 견제하려고만 했던 박지원 원내대표와의 관계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손 대표의 리더십은 사실상 당을 장악하고 있는 박 원내대표가 지원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킹메이커 역할이 가능한 박지원 원내대표의 입김이 클 수밖에 없지만 박 원내대표 역시 당선 가능성이 가장 큰 주자에게 힘을 싣게 될 것이다. 향후 야권의 지각변동에 따른 변수는 있겠지만, 현재로선 박 원내대표도 손 대표를 대권주자로 밀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설명했다.
5월 13일 열리는 원내대표 경선은 재보선 이후 탄력 받은 손학규 대표 체제가 순항할 수 있을지를 가르는 또 하나의 관건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강봉균·유선호·김진표 의원 등 3파전 구도가 되고 있는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손 대표의 향후 대권전략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 가장 유력시되고 있는 강봉균 의원(전북 군산)이 당선될 경우, 손 대표가 그동안 정세균·정동영 최고위원에게 밀리고 있던 ‘호남권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 2월 민주당 내 이른바 ‘복지논쟁’이 가열됐을 당시 호남권의 일부 의원들은 ‘증세를 통한 복지’를 주장하는 정동영 최고위원에 반대하며 ‘증세 없는 복지론’을 주장한 손 대표에게 힘을 실어준 바 있다. 당시 이를 주도했던 이들 중 한 명도 바로 강봉균 의원이었다.
정동영·정세균계로 대변됐던 호남권의 세력이 재편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 민주당 인사는 “대선주자로서 정동영·정세균 최고위원의 가능성을 평가하는 이는 많지 않다. 이들을 지지했더라도 앞으로는 손학규를 지지하느냐, 마느냐로 세력이 나뉘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손 대표 역시 당을 장악하기 위해선 호남권 지지를 ‘필요조건’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손 대표의 앞날은 여전히 험난해 보인다. 지난 4일 통과된 한·EU FTA 비준안 처리과정에서 민주당이 결국 불참하게 되기까지 손 대표가 보인 리더십은 또 한 번 비난에 직면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도 드러났듯 당내 위상은 강화되었으나 기타 야권의 ‘견제’ 역시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야권연대 역시 대권주자로서 손 대표가 거쳐야 할 난제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유시민 대표의 침체로 친노계는 더 세력분화가 되었다. 차기 대권에서의 야권연대가 이전보다 어려워질 수도 있다. 아직 박근혜 전 대표와 손학규 대표의 일대일 구도를 낙관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