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 김성래 4단(오른쪽)에 이어 15세 나이로 프로기사가 된 딸 김채영 초단. 부녀 프로기사 탄생은 국내 두번째 이다. |
국내 아버지와 딸, 프로기사 1호는 권갑용 8단(54)-권효진 5단(29) 부녀. 1980년대 말 문을 연 이후 지금까지 30여 명의 프로기사를 배출한 권갑용 바둑도장은 명실상부 국내 바둑도장의 원조명문이다. 세계랭킹 1위인 이세돌 9단을 비롯해 최철한 원성진 강동윤 박정환 9단에서 이영구 백홍석 윤준상 8단에 이르기까지 현재 국내외 바둑계를 쥐락펴락하고 있는 문하생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권효진 5단은 또 남편이 중국 프로기사 위에량 5단. 권 5단과 결혼 후 현재 한국기원 소속기사로 활동하고 있다. 아버지-딸-사위가 프로기사이면서 국제 바둑가족인 것.
김성래 4단은 지난해 헝가리로 건너가 바둑보급에 진력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8단이다. 한국기원은 지난해부터 해외 바둑보급을 위해 나가는 기사들에게는 현 단위에 구애받지 않고 일괄적으로 8단을 인허하고 있다.
우리는 요즘 프로기사 단위에 별 의미를 두지 않고 있지만, 서양 바둑 친구들은 아직 단위에 꽤 신경을 쓰는 편이고, 우리보다 먼저 유럽에서 활동을 시작한 일본이나 중국 프로들이 대개 8~9단인데, 우리가 예전에 해외에서 산발적으로 활동할 때 그랬던 것처럼 곧이곧대로 4단이나 5단이라고 하면 듣는 쪽의 반응이 좀 약하다는 것.
김 4단, 아니 김 8단은 국내에 있을 때도 승부보다는 강의와 지도, 저술에 힘을 기울인 기사. 영문으로 번역된 책도 여러 권 있다. 지난해 건너간 후 대략 6개월에 한 번 귀국해 충전을 하고 가는데, 이번엔 딸이 자신의 뒤를 이어 프로기사가 되는 경사를 맞았다. 15세 입단이면 빠른 편이다. 요즘은 더욱이 입단 문턱의 어린 기재들이 병목 현상을 보이고 있고, 연구생 입단 한계선인 18세 안팎의 실력자들이 북적거리고 있는 터라 15세면 그냥 빠른 편이 아니고 아주 빠른 편이다. 프로기사로서 대성 여부를 점치는 일차 조건이 조기 입단이니 김채영은 일단 첫 번째 테스트는 통과한 것.
“어릴 때 바둑을 가르쳤는데, 제 딴에 노력은 하는 것 같았지만, 솔직히 기재는 별로 없어 보였어요. 그래서 크게 기대는 하지 않고, 그냥 좋은 취미 하나 익혀 두라는 정도로 시킨 건데, 최규병 사범이 노력하는 것도 재주다, 가능성이 있으니 계속 시키라고 하더군요. 그것도 일리 있는 말 같고, 그 말에 힘을 얻어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아빠의 표정이 환하다.
“꼭 입단해야 한다, 안 되면 안 된다, 그런 강박 관념 같은 건 없었는데, 가끔 진도가 잘 안 나갈 때 아빠가 그런 식으로 할 거면 그만두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때는 조마조마했지요. 정말 그만두라고 하신 건 아니고, 자극을 받으라고 하신 것 같아요.” 딸의 얼굴도 환하다. 얼굴 생김생김이 아빠를 빼다 박았다.
김채영, 김 초단의 엄마 이소윤 씨(45)도 바둑일을 하고 있다. 구의동에 있는 킹스바둑에서 입문반 강의를 맡고 있다. 그런가 하면 김 초단의 동생 김다영도 프로기사 지망생이다. 충암중학교 1학년, 현재 연구생 1조, 짱짱한 실력이다. 동생도 이번에 언니와 함께 입단대회에 나왔는데, 아깝게 8강에 머물고 말았다.
자매 프로기사는 바둑TV 해설자로 인기가 좋은 동생 김효정 2단, 일본기원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는 언니 김현정 3단이 있지만, 3부녀는 아직 없다. 세계 최초의 3부녀 프로기사는 한국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그나저나 여자 입단대회에서 딱 한 사람만 뽑는 건 좀 그렇다. 승부에서는 아직 여자 기사가 남자 기사를 못 당한다고 하지만, 보급에서는 여자 기사가 유리한 점도 많다. 남자는 물론 여자 입단대회의 문도 조금 더 열어보자.
그런데 상황은 거꾸로 그동안 인기를 누렸던 여자 세계대회, 한-중-일 여자 삼국지인 정관장배 대회가 남자 대회로 바뀔 거라는 얘기가 들린다. 남자 세계대회는 BC카드배 삼성화재배 LG배에다가 농심배까지 이미 충분히 있는데 또 만드는 것은 중복 아닌가. 바둑에서 제일 금기시하는 게 중복인데. 그럴 바엔 국내 기전을 키우든지.
중국 선수들 불러다가 잔치 열어 주는 것, 이제는 별 뜻도 없는 일 같은데 말이다.
이광구 바둑담당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