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성폭행 범죄를 자행한 김포공항 근처 컨테이너 박스. 이들 부자는 공사장 인부들이 사용하던 이곳에 몰래 들어가 살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
건설 일용직 근로자로 일하던 장 씨는 아들을 데리고 공사판을 찾아다니며 근근이 생활해 왔다. 정 씨 부자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식으로 공사장에서 번 일당으로 여관비와 생활비를 충당했다. 그러던 중 정 씨 부자는 지난해 12월 초부터 김포공항 근처 ○○쇼핑몰 건설현장의 컨테이너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공사가 한창인 가운데 전기공사를 위해 공사장 인부들이 사용하다 남겨진 컨테이너에 두 사람이 몰래 들어가 살았던 것이다. 두 사람은 컨테이너에서 생활을 하면서 밥도 해 먹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아들 정 군은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아버지와 함께 오랫동안 노숙생활을 해 왔다. 경찰 조사에서 정 군은 아버지와 맞담배를 피울 정도로 아버지와 친구처럼 지냈던 것으로 밝혀졌다. 아버지 정 씨가 일 나가면 정 군은 김포공항 근처 PC방을 전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 군의 이런 생활은 가출 청소년을 노린 범행으로 이어졌다.
2010년 12월 1일 정 군은 인터넷 채팅으로 알게 된 가출 여고생 김 아무개 양(17)을 만나기 위해 서울 강서구 공항동 김포공항 지하철역 주변을 서성였다. 정 군은 김 양과 채팅을 하다 김 양이 가출을 결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밥을 사 주겠다’며 꾀어냈다. 지하철역 부근에서 만난 두 사람은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김 양은 정 군에게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자퇴한 얘기부터 가출한 얘기까지 자신의 속사정을 얘기했다.
경찰 조사결과 김 양은 아침 일찍 나갔다 저녁 늦게 들어오는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었는데 불우한 가정환경을 못 견디고 가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양의 사정을 들은 정 군은 김 양이 갈 곳도 없고 또 성폭행을 해도 신고하지 못할 것이라 판단하고 계획적으로 술을 먹이기 시작했다. 미성년자인 김 양은 금방 술에 취했고, 이내 인사불성이 됐다. 정 군은 정신을 못 차리는 김 양을 택시에 태워 김포공항 공영주차장 뒤편 ○○공사장 내에 자신과 아버지가 살고 있던 컨테이너 박스로 데려갔다.
2010년 12월 2일 자정을 넘긴 시각. ‘인면수심’ 부자의 범행은 이렇게 시작됐다. 우선 컨테이너 박스에 와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누워 있는 김 양을 아들이 먼저 성폭행했다. 잠시 뒤 자리를 피해 밖에 있던 아버지가 들어와 연달아 김 양을 성폭행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이날 이후에도 마땅히 갈 곳이 없던 김 양은 두 부자와 12월 말까지 한 달 동안이나 컨테이너 생활을 같이 했다. 경찰조사 결과 한 달여 동안 매번 성폭행이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셋이 같이 술을 먹는 날이면 부자는 어김없이 술에 취한 김 양을 상대로 성폭행을 자행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외에 성추행은 시도 때도 없이 벌어졌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조사에서 정 씨는 처음엔 성폭행 사실을 부인했다. 또 부자는 서로 상대방이 성폭행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은 좁은 컨테이너 박스와 밖이라 해봐야 갈데없는 공사 현장에서 서로가 모를 리 없다고 판단하고 아들과 김 양을 추궁했다. 결국 경찰은 아들과 김 양의 진술을 통해 정 씨의 성폭행 가담 사실을 밝혀냈다. 경찰은 또 아들이 김 양을 유인해 데려오는 과정에 아버지 정 씨가 개입했는지 여부 등 정확한 공모 관계를 파악하고 있다.
정 씨는 자신의 여죄가 드러날까봐 거짓 진술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 씨는 경찰조사에서 컨테이너를 한 달간 임대하고 계약 기간이 끝나 나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현장 관계자들의 말은 달랐다. 아무리 현장에서 일하는 공사 관계자라도 마음대로 컨테이너를 쓸 수 없을뿐더러 일용직 근로자에게 컨테이너를 임대해 준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것이 공사장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실제로 기자가 사건 현장을 방문한 결과 컨테이너는 메인 공사장에서 조금 떨어져 후미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현장 관리인은 “다른 업체 컨테이너라서 직접 관리하지 않았다”고 말해 관리가 소홀했음을 인정했다. 따라서 경찰은 관리가 소홀했기 때문에 정 씨 부자가 컨테이너에서 생활할 수 있었던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현장 관리인은 정 씨가 건축 자재를 훔치려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관리인은 “한밤중에 자재가 쌓인 곳에서 누군가 전선을 빼가려고 해 소리쳤더니 도망가더라”며 “다음날 정 씨가 구리선을 가져와 ‘이거 팔면 돈 좀 된다’며 몇 가닥 주고 갔다”고 귀띔했다.
관리인은 또 정 씨가 자신에게 5만 원을 빌려간 뒤 갚지 않은 일도 있다고 전했다. 정 씨가 돈이 떨어질 때면 찾아와 아들 끼니 핑계를 대며 한 번에 2만 원, 3만 원씩 빌려 갔다는 것이다. 정 씨 부자의 컨테이너 생활은 관리업체에게 들켜 쫓겨나면서 끝이 났다. 그때가 지난해 12월 말이었다. 이때 김 양도 정 씨 부자와 함께 그곳에서 나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 초 집으로 돌아간 김 양은 처음엔 자신의 임신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생리를 하지 않자 스스로 임신 테스트를 했고, 성폭행을 당한 지 넉 달이 지난 3월에야 임신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이후 김 양은 어머니와 함께 산부인과에서 낙태 수술을 한 뒤 경찰에 성폭행 사실을 신고했다. 경찰은 잠복수사 끝에 경기도 일대에서 정 씨 부자를 검거했다.
사건을 담당한 서울 남대문경찰서 유재국 경사는 “부자가 함께 성폭행을 저지른다는 것은 한마디로 반인륜적인 인면수심 범죄 행위다”며 “정작 정 씨 부자는 경찰조사 내내 덤덤한 모습을 보여 수사팀이 황당해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훈철 인턴기자 boaz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