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덕희 경동제약 회장. 경동제약은 지난 3월 KB국민은행의 ‘KB 히든 스타 500’에 선정됐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류덕희 회장이 경동제약을 창업한 것은 1975년 9월 9일, 친구들과 함께 약을 만들어 다른 회사에 납품하다 ‘내 약’을 만들고 싶어 일단 네댓 명이 개인회사를 만들었다. 류 회장은 “작게 정도가 아니라 아~주 작게 시작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법인을 인수해 경동제약이 탄생했다. 처음엔 무좀약과 비타민제를 내놨다. 새로운 약 개발까지 시간을 벌고 각종 제약 품목 허가를 받기 위한 두 가지 포석이었다. 앞서 밝힌 것처럼 동시에 수입 대체제 개발이 진행됐다.
연구의 성과는 1980년대 초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초기 작품’으로 “혈압약 계통의 주사제와 신경계통의 약(주사·정제), 비타민B2 주사제”를 꼽으면서 특히 “비타민 주사제는 당시 전량 일본에서 수입하던 상황에서 국산화 넘버원이었다. 많이 팔렸다”고 회고했다. 이처럼 창업 당시부터 기술력이 짱짱했던 경동제약. 이는 직접 ‘생체실험’도 마다하지 않는 류 회장의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소염제의 경우 잘못 만들면 무지하게 아파요. 그런데 동물 실험을 하면 아픈지 안 아픈지 알 수가 없거든. 열이 나는지 안 나는지 체크만 하는 정도지. 사람이 맞아 봐야 아는데 약사들은 못했어요. 그래서 내가 맞아봤어요. 이렇게 생체실험을 자처했던 건 그만큼 내가 만든 약품에 대해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죠. 연구자 자신이 만들고 못 맞으면 누가 씁니까.”
당시에 제약사들은 보건당국에 생산실적보고를 했는데 책자로 발행됐다고 한다. 어떤 회사가 어떤 제품을 파는지 다 나오는 것. 경동제약의 실적이 공개되자 제약업계가 술렁였다. ‘아~주 작은’ 업체의 실적이 쑥쑥 올랐으니 그럴 만도 했다. 대형 제약사들은 ‘경동도 만드는데 우린 왜 못 만드느냐’고 연구진을 채근할 정도였다. 지역 영업 간부한테 자동차를 사 줄 정도로 매출이 급격히 상승세를 탈 무렵인 1983년 경동제약에 위기가 닥쳤다.
“어느 날 밤 자고 있는데 전화가 왔어요. 공장에 불이 났다는 거예요. 급히 공장으로 차를 타고 가면서 제품창고, 특히 원료 재고만이라도 좀 살려달라고 기도했어요. 도착해보니 공장이 푹 가라앉았더라고요. 불은 꺼졌고 전소하다시피 했는데 정말 기적적으로 제품창고는 90% 정도는 괜찮은 거예요. 다음날 아침에 사무실에 나가보니 직원들이 넋이 나가 있더군요. 제가 큰소리를 쳤죠. ‘걱정하지 마! 불난 집이 잘 된다잖아. 불 일어나듯 할 거야.’”
그렇게 큰소리를 치긴 했지만 주문이 밀려들어오는 시점에 공장이 다 타버렸으니 상황이 그리 녹록지는 않았다. 그는 직원들을 독려해 최대한 빨리 기계를 고치고 가건물로 급히 공장도 재건하고 다시 제품 생산에 들어가 위기를 넘기며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았다.
이후 경동제약은 류 회장의 고향인 경기도 화성 양감에 공장 터를 잡고 1997년 제1합성동 GMP(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를 완공, 수입에 의존하던 다수의 원료 의약품을 국내 최초로 대량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또 2001년 BGMP 인증, 즉 기준 적합판정을 받음으로써 대내외적인 품질향상을 인정받는 계기를 마련했다. 2010년 2월 추가로 양감 공장에 600평 규모의 공장부지에 100억여 원 규모로 강화된 기준인 cGMP 원료합성공장의 시설을 확충해 지난 12월 완공, 가동중에 있다.
의약품은 물질 개발부터 시판에 이르기까지 특허를 갖고 있는 오리지널(신약)과 특허권이 끝난 이후에 그 약을 똑같이 만드는 제네릭, 제네릭 중에서도 제일 먼저 허가를 받은 퍼스트 제네릭, 오리지널을 보완한 개량신약으로 나뉜다. 경동제약은 그동안 퍼스트 제네릭으로 성공신화를 써왔다. 그런데 최근 대기업들이 의약·바이오 사업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고 속속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또 다시 위기가 오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류 회장은 전혀 걱정이 없다는 표정이다.
“대기업은 자본력이 있으니 잘 되겠지요. 잘 되길 바랍니다. 하지만 빠른 시일 내에 노다지 캐는 것처럼은 안 될 겁니다. 실리가 중요한데 부풀려지는 게 좀 많은 것 같아요.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그렇다면 경동제약은 앞으로 어떻게 실리를 찾을 것인가.
“2013년이면 약 특허가 많이 풀려요. 퍼스트 제네릭은 물론 개량신약과 수출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습니다.”
경동제약은 이미 비만치료제와 혈전치료제 등 세 건의 개량신약을 개발했다. 중견 제약사로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수출의 경우 1994년 12월 러시아와 파키스탄에 첫 발을 내디딘 후 현재는 선진국인 일본부터 카자흐스탄까지 여러 나라에 완제·원료 의약품을 수출하고 있다. “거래 상대방 회사를 직접 눈으로 보고 거래를 결정”하는 스타일 때문에 세계 방방곡곡을 누비며 직접 글로벌 시장을 개척한 류 회장은 “2~3년 내에 수출 1000만 달러 달성을 이룰 것”이라고 자신했다.
류 회장이 지난해 업계를 대표하는 한국제약협회 이사장까지 맡으며 경동제약은 강소기업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대중소기업 상생의 화두 속에 강소기업 육성이 시급한 지금, 경동제약은 우리 사회에 ‘신약’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