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일 역외탈세 혐의로 사상 최고 금액인 4101억 원을 추징당한 ‘한국의 오나시스’ 권혁 시도상선 회장을 만났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하지만 그동안 워낙 베일에 싸여 있었기 때문에 그의 성장배경과 사업이력에 대해서는 여전히 알려진 바가 없다. <일요신문>은 권 회장의 서울 서초동 사무실을 직접 찾아가 인터뷰를 했다. 2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 내내 그는 열변을 토해냈고,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들을 담백하게 전달했다. 과연 베일 속 인물인 권 회장은 어떤 인물일까.
4월 14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난 권 회장의 첫 인상은 거대 사업체 대표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다소 소탈해 보였다. 그는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언론 기피 인물’ ‘유령인간’이라는 오명에 대해 무척 억울해 했다. 주로 해외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국내에서 언론과 접촉할 기회가 없었을 뿐, 일부러 피하거나 회피한 적은 없었다는 것이 권 회장의 항변이다. 그는 인터뷰 내내 거친 경상도 사투리를 섞어가며 쉼 없이 말을 쏟아냈고 꽤나 달변이었다.
권 회장은 최근 알려진 바와 같이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한 인물이다. 사업을 시작한 1990년 이전에 그는 한 기업의 평범한 사원에 불과했다. 1974년 고려해운에 입사해 처음 선박과 인연을 맺게 된 그는 1979년 현대종합상사로 이직을 했다. 당시 같은 계열사였던 현대자동차 지도부는 수출팀을 새롭게 꾸리는 과정에서 선박회사 근무 경험이 있는 권 회장을 눈여겨봤다. 그는 “현대에 온 뒤 수출팀에 들어가게 됐다. 수출팀에서 12년 동안 자동차 수송 업무를 전담했다. 내가 일본에서 배 사업을 하게 된 계기는 여기서 비롯된다. 그 당시 현대차 수송은 모두 일본회사에서 담당했다. 자연스럽게 일본 기업인들과 연을 맺게 됐고, 훗날 사업의 밑거름이 됐다”고 회고했다.
1988년 현대자동차는 일본 진출의 교두보로 당시 현지에 마케팅팀을 만들게 되었고, 권 회장을 현지 담당자로 보내게 된다. 하지만 당시 현대차는 자사 상품의 품질을 두고 고민 끝에 일본시장 진출사업을 무기한 연기했다. 이에 실망한 권 회장은 사표를 던지고 창업을 결심하게 된다.
곧 바로 기회는 찾아왔다. 권 회장은 “1990년 기회가 왔다. 회사 재직시절 알게 된 일본기업가들의 소개로 선박 사업을 권유받았다. 자본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나는 배 살 돈도 없었다. 다행히 일본 기업가의 소개로 마루베니 종합상사와 연을 맺게 되었고, 1년간의 테스트를 거친 뒤 어렵게 돈을 꿔서 선박 5척을 살 수 있었다. 그것이 사업의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사업은 날로 번창했다. 일본에 기반을 잡은 권 회장은 승승장구하며 20년 만에 보유선박을 175척으로 불려냈다. 2004~2005년의 해운경기 호황과 2006~2008년의 일본차 수출 러시 등 운도 작용했다. 그는 “20년 안에 이렇게 선박사업을 키워낸 것은 쉬운 게 아니었다. 지금 페이퍼컴퍼니 의혹이 있는 홍콩 본사는 2006년 일본에서 이전해 간 것이다. 당시 중국 시장의 호재를 읽고 사업을 위해 이전해 간 것이지 다른 의미는 없었다”고 말했다. 역대 최악의 탈세범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는 권 회장이지만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실제 선박업계에서 이룬 성과는 신화 그 자체였다.
현재 홍콩과 일본, 한국을 오가며 국제적인 행보를 걷고 있는 권 회장은 순수 한국인이다. 그는 양친이 모두 의사인 부모 밑에서 2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나 비교적 부유하게 성장했다. 그는 “난 대구 수성동 토박이다. 양친 모두 의사셨지만 다 고생을 많이 하신 분들이라 검소하게 자랐다”고 회고했다. 권 회장은 대구 경북고를 나와 연세대 상대를 다녔다. 현재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이현동 국세청장과는 경북고 6년 선후배 사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어렴풋이 사업가에 대한 꿈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사실 처음에는 의사인 아버지의 대물림 욕구 때문에 의대 진학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 소질과 성격상 사업이 잘 맞다고 생각해 의대 원서를 찢고 상대를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난 대구 출신이지만 TK(대구 경북)세력은 싫어한다. 그들은 지나칠 정도로 권력 지향적이다. 내부적으로 단결이 잘 되면 그만이다. 난 오히려 호남 사람들과 잘 맞는다. 같은 백제피를 나눈 일본사람들이 호남 사람과 성향이 비슷하다. 내 성공에는 이러한 개인적 성향도 작용했다”고 자신의 성향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다.
권 회장은 부인과 슬하에 아들딸 둘을 두고 있다. 아들은 국내에서 병역의무를 마치고 영국으로 건너가 선박 브로킹회사 ‘크락손’에 근무 중이고, 딸 역시 영국 유학 후 현지에서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현재 권 회장은 국세청으로부터 4100억여 원의 세금추징 명령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그는 무척이나 억울함을 호소하면서도 앞으로 한국에서의 사업의지를 표하기도 했다. 그는 “난 한국 사람이다. 연어의 회귀본능이 있지 않나. 그 전에도 한국 선박 발주와 보험료 납부 등 꽤 많은 애국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앞으로 본격적으로 한국에서 사업을 하고자 계획하고 있다. 이번 불미스러운 일과 무관하게 앞으로 국제상선 운영 등 여러 프로젝트를 생각하고 있다. 그때가 되면 당연히 제대로 납세할 것이다”며 한국에서의 사업의지를 밝혔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