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학규 대표(왼쪽)와 유시민 대표.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우선 손학규 대표는 직접 나선 경기 성남 분당 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될 경우 대권주자로서의 입지가 굳건해지는 반면, 패배할 경우 리더십에 치명타를 입어 당 내 정동영, 정세균 최고위원과 분립하고 있는 권력지형에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손 후보는 이번 선거운동 과정에서 ‘민주당’보다는 ‘인물’을 앞세웠다. 한나라당 지지층이 많은 지역정서와 중산층 표심을 공략하기 위해서였다. ‘나 홀로 선거운동’과 ‘네거티브 지양’은 그런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전략이 주효해 승리한다면 손 대표는 진보층뿐만 아니라 중산층으로 지지층을 확대할 수 있는 적임자라는 이미지를 심게 된다. 그동안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불명예스런 딱지를 자신의 최대 경쟁력으로 내세울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지난해 10월 대표 취임 이후 불거진 당 노선 조정 논란 속에서 ‘진보 강화’로 후퇴한 감이 있었지만, 일단 손 대표의 중도노선이 검증대를 통과한 만큼 당 노선 재조정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는 상대적으로 진보 쪽으로 노선을 완전히 정리해버린 정동영 최고위원이나 정세균 최고위원과의 관계에서도 완전한 주도권을 행사하면서, 집단지도체제의 한계 속에서도 일사분란한 당으로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동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텃밭인 분당 을을 빼앗아 온다는 것은 정치적 상징성도 클 수밖에 없다. 설령 김해 을에서 이봉수 후보가 당선돼 유시민 대표의 위상이 높아진다고 하더라도, 손 대표가 야권 내 경쟁에서 더 유리한 고지에 올라설 수 있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나아가 여론조사 지지율이 두 자릿수로 올라서는 상황까지 만들 수 있다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정점으로 하는 대여 경쟁력에서도 한층 달라진 위상을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경우엔 대권주자로서의 위상이 커짐에 따라 당내 견제의 강도도 더욱 강해질 수 있다. 예컨대 “손 대표가 대권주자로서의 역량과 능력을 키우는 데 전념할 수 있도록 조기에 당권·대권을 분리하자”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운 조기 전당대회론이 부상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조기 전당대회론은 손 대표가 분당 을 선거에서 낙선했을 경우에 더 강한 휘발력을 지니게 된다. 이른바 ‘선거패배 책임론’이다. 분당 을뿐만 아니라 강원도지사 선거까지 패배로 나올 경우 당내 ‘선거 후폭풍’으로 확산될 공산이 크다. 선거 전략의 유효성 문제, 후보영입 실패 책임, 야권연대 실패 논란 등이 손 대표의 자리를 위협할 주된 소재가 될 것이 분명하다. 선거 패배 이후 당 분위기 쇄신 차원의 문책인사와 당내 쇄신기구 설치 등 비주류 측의 공세가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 대표의 출마가 영입실패에 따른 고육책이었고, 분당 을이 사실상의 ‘적지’였던 만큼 “패배해도 크게 잃을 것이 없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분당 을 패배가 선거책임의 직접적 근거는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손 대표가 초박빙의 표차로 낙선해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상황이 된다면, “당을 위해 희생했다”는 동정적 평가가 더 많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그만큼 그의 출마 결정이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희생’과 비교될 정도로 당내에서 우호적인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선거에 패배한 손 대표를 향해 책임론을 제기했다가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것이다.
유시민 대표도 김해 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결과에 따라 정치행보의 방향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는 야권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끝까지 여론조사에 의한 경선을 관철시켜 자당의 이봉수 후보를 선거에 내세우는 성과를 거뒀다. 김해 을에서 승리할 경우 유 대표로서는 참여당의 원내 진입이라는 가장 큰 공적을 세우는 것이고, 대선 고지를 향한 행보에도 탄력이 붙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유산을 이어받은 적자라고 주장할 확실한 근거를 마련하게 된다는 점도 그에게는 큰 자산이다. 게다가 내년 총선 정국을 향한 야권 내의 재편 움직임 속에서 전국적인 단일번호의 후보를 낼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갖게 되고, 이에 따라 당세를 확장할 수 있는 계기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선거결과가 어떻게 나오든지 간에 후보 경선 과정에서 제기됐던, 민주당은 물론, 친노그룹 내의 비판적 시각이 향후 그의 정치행보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란 관측도 만만치 않다.
유 대표는 야권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민주당은 물론 다른 야당들로부터 김경수 봉하재단 사무국장의 불출마 압력설, 후보 단일화 협상 과정의 시민단체의 중재안 거부로 야권연대의 대의를 저버렸다는 비난을 받았다. ‘떴다방 정치’, ‘분열주의자’, ‘알박기 정치’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식시킬 방도를 찾지 않는 한 민주당과의 통합은 물론, 총선의 야권연대 협상에서 불신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이 대중적 인지도를 기반으로 한 그의 지지율 상승의 ‘벽’으로 작용하면서, 줄곧 과제로 지적돼온 ‘확장성 부족’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손 대표가 분당 을에서 낙선하고 이봉수 후보가 김해 을에서 승리하는, 유 대표에게 가장 유리한 시나리오가 현실화돼도 유 대표에게 무조건 유리하게 환경이 전개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은 아주 단견”이라며 “현재 민주당 내에 퍼진 ‘반 유시민’ 정서를 고려하면 오히려 적대적인 정치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더 높다”고 전망했다.
민주당은 당초 한나라당 텃밭인 분당 을에서 승리를 기대하지 않았고, 전남 순천에서 야권연대를 위해 ‘무공천’이라는 희생을 감수했다. 결과적으로 김해 을에서조차 참여당에 후보 자리를 내줘야 했던 상황을 되새겨보면 ‘유시민에게 당했다’는 악감정이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근 정국의 분수령인 4·27 재보선이 끝나도, 손학규-유시민의 경쟁을 둘러싼 정치환경은 더욱 복잡한 함수풀이가 필요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