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4·27 재보선 열기를 뒤로하고 여야가 차기 원내 사령탑을 뽑기 위한 내부 경합 모드에 들어가고 있다. 한나라당은 5월 2일에, 민주당은 5월 13일에 실시되는 경선을 통해 차기 원내대표를 뽑게 되는 것. 이번에 새로 선출되는 양당의 원내대표는 내년 총선을 이끌어가야 하는 막중한 역할을 맡게 되는 만큼 출마자 본인들은 물론, 차기 대선주자들 사이에서도 미묘한 긴장국면이 조성되고 있다.
한나라당의 경우 이명박 정부의 임기 하반기를 이끄는 원내 사령탑인 만큼 친이계 내의 권력구도를 가늠하는 선거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역시 선거 결과에 따라 차기 대권주자들의 경쟁구도에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여 양보하기 힘든 싸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재보선 이후 양당의 권력구도에 중대한 변수로 떠오른 차기 원내대표 경선이 어떻게 전개될지 미리 짚어보았다.
18대 국회를 마지막으로 이끌어가게 될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차기 원내대표는 내년 총선을 책임지고 대선 과정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따라서 후보군뿐만 아니라 당내 계파들 간에도 중요한 선거가 되리란 전망이다.
5월 2일 경선이 열리게 되는 한나라당에서는 친이계와 중립 성향 의원들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현재 4선의 황우여 의원 외에 안경률·이주영·이병석 의원(3선) 등이 물망에 오른 상황. 이 가운데 안경률 의원과 이병석 의원은 친이계로, 황우여·이주영 의원은 중립 성향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들 중 당 안팍에서 유력후보로 꼽히는 인물은 안경률 의원(부산 해운대 기장 을). 수도권 지역구 의원 중 정책위의장 러닝메이트를 고민하고 있는 안 의원은 경기 안양 동안구 을의 심재철 의원에게 러닝메이트 제안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로 PK(부산·경남) 민심이 흔들렸던 만큼 부산 출신 안 의원의 역할론에 대한 필요성이 거론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 의원 측이 그리고 있는 ‘영남권 원내대표-수도권 정책위의장’이 성사된다면, 현 ‘수도권 안상수 대표(경기 의왕·과천)-영남권 김무성 원내대표(부산 남구 을)’ 구도의 연장선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반면 같은 부산이 지역구였던 김무성 원내대표가 ‘전임’이었던 점이 안 의원에게 제약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경선에서 친박계 출신 김무성 원내대표를 당 화합차원에서 배려했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에는 타 지역 의원에게 친이계의 표가 쏠릴 수 있다는 분위기 때문. 또한 친이계 모임 ‘함께 내일로’의 대표를 맡고 있는 안 의원은 친이계 중에서도 ‘이재오계’의 대표적 인물 중 한 명이어서 이재오 특임장관이 경선과정에서 힘을 실을지의 여부도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오 장관과 안 의원을 포함한 ‘함께 내일로’에 속한 친이계 의원 36명은 지난 4월 20일 함께 모여 재보선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전해져 이목을 끌기도 했다.
역시 친이계인 이병석 의원(경북 포항 북구)은 박진 의원을 러닝메이트로 정하고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정책위의장 후보로 다른 원내대표 후보들이 모두 박 의원을 ‘탐’냈던 만큼 이 의원에게는 큰 지원군이 생긴 셈이다. 한나라당은 원내대표 후보자가 정책위의장 후보자와 함께 출마하는 러닝메이트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정책위의장 후보자들도 원내대표 경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나 이상득 의원과 같은 포항이 지역구라는 점이 지난 경선에 이어 이번에도 이병석 의원에게 오히려 ‘단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친이계가 근래 TK(대구·경북) 중심의 이상득계와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이재오·정두언계로 분화돼 세력 대결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 원내대표 경선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의원은 지난 20일 이재오 장관이 참석한 ‘함께 내일로’ 의원들의 ‘친이계 회동’에 대해 “대통령을 보필해야 할 국무위원이 재보선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모임을 개최해 금도를 넘어섰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권에 친이계 분열에 대한 우려의 분위기도 적지 않아 일각에선 양 후보 간 막판 단일화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보고 있다.
원내대표 경선은 4·27 재보선 결과에 따라 경쟁구도가 달라질 가능성도 크다. 한나라당이 패하고 당 쇄신분위기가 만들어질 경우 중립성향 의원에게 표가 몰릴 수도 있기 때문. 큰 변수가 될 친박계 의원들의 지지가 더해질 경우 중립 성향인 황우여 의원과 이주영 의원의 강세도 점쳐볼 수 있는 상황이다. 한나라당의 한 친박계 의원 보좌관은 “중립 성향의 두 의원들에 대한 단일화 요구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일단 재보선 결과를 지켜본 뒤 지지 의사를 정하겠다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런 구도가 형성될 경우 황우여 의원(인천 연수구)이 이주영 의원(경남 마산 갑)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높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황 의원이 유일한 수도권 후보여서 영남권 당 대표를 둔 상황에서 지역안배 차원에서도 명분이 큰 데다 당 내 친이·친박 간 화합의 이미지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평가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황 의원이 그동안 친박계에 대해 각을 세운 적이 없다는 점도 친박계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요인이다. 황 의원도 ‘당 화합과 계파 간 대립 해소’를 내세우며 친박계와 중립성향 의원들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또한 이주영 의원 역시 최근 한 라디오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단일화 가능성에 대해 “당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의원들이 단일화를 피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해볼 생각도 있다”고 밝힌 바 있어, 재보선 결과에 따라 중립성향 후보들의 부상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러나 반대의 시각도 있다. 이번 재보선에서 패할 경우 역으로 친이계의 결집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분석. 여기에 최근 이상득 의원과 박근혜 전 대표의 연대설이 흘러나오고 있어 친박계가 어떤 ‘표심’을 드러낼지에 따라 원내대표 경선 구도 자체가 크게 바뀔 가능성도 엿보인다. 이상득 의원과 가까운 이병석 의원은 지난 22일 평화방송 <열린 세상 이석우입니다>에 출연, 박근혜 전 대표의 재보선 불개입 행보에 대해 “큰 틀에서 (박 전 대표가) 하고 있는 행보 자체가 한나라당의 재보선에 전반적으로 매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며 거리감을 좁히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제1 야당인 민주당의 원내대표 경선은 차기 대권구도와 보다 복잡한 함수관계에 놓여 있다. 5월 13일 원내대표 경선이 치러지는 민주당에서는 3선의 강봉균·유선호 의원과 재선 김진표 의원 등 3명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여기에 불출마를 선언했던 손학규 대표의 최측근 김부겸 의원도 재보선 결과에 따라 최종 결심을 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3~4자 구도의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질 전망이다.
일단 손학규 대표가 분당 을에서 승리할 경우 손 대표의 선거유세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범 손학규계’인 강봉균 의원(전북 군산)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당내에 적지 않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분당 갑에 출마했던 경험이 있는 강 의원은 이번 재보선 선거운동 기간 내내 손 대표를 도우며 ‘손심’ 얻기에 나선 바 있다.
그러나 손 대표가 당선 이후 자신의 주요 지지기반인 수도권을 보다 강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수도권 지역구 의원인 김진표 의원(경기 수원 영통)에게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또한 김진표 의원이 ‘정세균계’로 분류되지만 정세균 최고위원과 손학규 대표의 관계가 나쁘지 않다는 점도 김 의원에겐 긍정적인 부분이다. 손 대표가 그동안 호남을 주축으로 했던 당내 주요 세력들에 의해 집중적인 견제를 받아왔다는 점에서 이러한 분석은 설득력을 얻고 있는 상황.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다른 후보들에 대해 정세균·정동영 최고위원이 보이지 않게 지원하고 있다는 점도 변수다. ‘수도권 중심’의 민주당 구도를 만들겠다는 손 대표의 의중이 (김 진표 카드를 통해) 드러날 수도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리서치앤리서치의 배종찬 본부장은 이와 관련해 “민주당 대표로서 대권을 바라보는 손학규 대표 입장에서 ‘호남당’이라는 기존 민주당의 이미지를 바꿀 필요가 있다. 더 이상 ‘영남 대 호남’ 대결구도로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기존 민주당 내 호남권 지지기반을 갖고 있는 정세균·정동영 최고위원과의 경쟁에서도 호남을 공략하는 건 승산이 낮기 때문에 오히려 지지축인 수도권에 보다 공을 들이는 것이 현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보선 선거운동 기간 동안 손 대표의 선거전을 적극 도왔던 김진표 의원 역시 “수도권 의원이 원내대표를 해야 민주당이 ‘호남당’ 이미지를 불식시킬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만약 손 대표가 낙선한다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질 가능성도 크다. 일각에서는 당을 위해 희생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받게 될 손 대표가 대권주자로서 큰 타격은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지만, 당내 얘기는 다르다. 정동영계로 분류되다가 손학규 대표와의 친분을 강조하며 ‘손학규계’에 합류한 강봉균 의원과 정세균 의원과 지근거리인 김진표 의원에 대한 두 ‘정 최고위원’의 입김이 커지게 될 것이란 분석이다. 강봉균 의원이 “반 정세균 의원들은 모두 내 편”이라고 강조할 만큼, 양 계파 간의 ‘선가르기’는 그 골이 얕지 않다. 그렇게 될 경우 당내 손 대표의 입지는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여기에 현 박지원 원내대표와 지근거리에 있는 유선호 의원(전남 장흥·영암·강진) 역시 변수로 떠오를 가능성이 남아 있다. 당내에서는 ‘박지원의 힘’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손 대표가 12월 임기가 만료되면 새 당대표가 선출되는 만큼, 차기 당대표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박지원 현 원내대표가 어느 쪽으로 힘을 실어줄지도 관건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손 대표가 수도권 의원이었던 만큼 다음 전당대회에선 호남 출신이 당대표를 하게 되지 않겠느냐”고 내다보기도 했다. 이 점은 수도권 의원인 김진표 의원에겐 유리한 상황이기도 하다.
4·27 재보선이 끝나면 곧바로 이어지게 될 여야의 원내대표 선거전은 이렇듯 차기 당권 및 대권 구도와 맞물려 있어 그 결과에 대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