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검찰 내부의 눈에 띄는 현상 중 하나가 수사의 무게중심이 특수부보다 금융조세조사부(금조부)에 쏠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한상대 서울중앙지검장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복잡한 특수부 수사보다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뚜렷한 결론이 나오는 금조부 수사를 선호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 및 금융 범죄를 주로 다루는 금조부에 힘이 실리면서 재계의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4월 21일 금조3부가 박성훈 글로웍스 대표를 구속하자 재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그 까닭을 조명한다.
서울중앙지검 금조3부(부장검사 이중희)는 지난 21일 박성훈 글로웍스 대표를 주가조작 혐의(자본시장법 위반)로 구속했다. 박 대표는 지난 2000년 2월 인터넷 음악사이트인 ‘벅스뮤직’을 창업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벅스뮤직은 2001년 음악사이트 부문 세계 1위에 올랐고, 박 대표는 ‘온라인 음악업계의 신화’로 불렸다.
하지만 2003년부터 벅스뮤직은 저작권 시비에 휘말리며 몰락하기 시작했다. 박 대표는 결국 2007년 9월 대표직에서 물러났고 벅스뮤직 사이트 영업권은 네오위즈에 매각됐다. 사명이 글로웍스로 바뀐 것도 이 때다.
박 대표는 2008년 8월 글로웍스의 경영권을 되찾았고 2009년 12월 대표이사직에 복귀했다. 2년 2개월 만에 대표로 공식 복귀한 그는 음악 사업이 아닌 해외 자원개발 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이후 글로웍스는 몽골 금광개발사업과 카자흐스탄 국민주택보급사업 등을 벌여왔다.
그러나 박 대표는 해외 자원개발사업 과정에서 호재성 허위 정보를 유포, 부정거래로 500억 원이 넘는 이득을 얻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됐고 결국 21일 구속됐다. 박 대표는 22일 보도자료를 통해 “주식거래를 통해 얻은 이익이 없고 오히려 회사가 부담할 부채를 자신이 떠안았다”며 결백을 주장했다.
이제 검찰의 칼날은 박 대표를 넘어 SK그룹의 전직 임원이자 글로웍스 주주였던 베넥스인베스트먼트(베넥스) 김 아무개 대표로 향하고 있다. 검찰은 김 대표가 글로웍스 주가조작 과정에 개입한 단서를 잡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김 대표는 지난 2009년 6월 우리투자증권이 보유하고 있던 글로웍스 신주인수권부사채(BW) 50억 원어치를 사들였다. 박 대표는 이 과정에서 김 대표와 ‘2009년 12월까지 원금과 8%의 수익을 보장한다. 주가가 올라 수익이 발생하면 절반씩 나눈다’는 내용을 담은 이면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표는 사들인 BW를 행사해 글로웍스 주식 714만 주를 인수했다. 글로웍스는 김 대표가 지분을 취득했다는 공시가 나간 직후 “SK텔레콤 상무 출신인 김 씨가 2대주주가 됐다. 김 대표는 콘텐츠 에너지 정보기술(IT) 분야에 투자하는 베넥스 대표”라고 언론에 알리며 SK와의 연관 관계를 부각시켰다.
이후 글로웍스 주가는 이 회사가 몽골 금광개발에 투자한다는 공시가 나가면서 급등했다. 김 대표는 같은 해 8월 주식 전량을 174억 원에 장내에서 팔아치워 불과 두 달 만에 투자 원금의 두 배가 넘는 124억 원을 벌어들였다. 검찰은 이미 지난 3월 29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베넥스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재계의 가장 큰 관심은 박 대표와 김 대표에 대한 수사가 SK그룹 쪽으로 확대될지 여부다. 이에 대해 중앙지검 안팎에서는 “SK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반면, 일부 검찰 관계자는 “아니라고만은 할 수 없다”고 말하는 등 엇갈리고 있다. 분명한 것은 수사팀이 김 씨의 글로웍스 주식매매 대금 출처가 베넥스인지, 아니면 다른 ‘전주’가 있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계좌 추적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이 SK로 불똥이 튀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쪽에서는 김 대표의 경력에서 그 근거를 찾는다. 미국에서 유학한 김 대표는 1966년생으로 37세의 나이에 워커힐호텔 기획본부장(상무급)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워커힐호텔에서 비전추진팀이라는 태스크포스(TF) 팀장을 맡기도 했다.
워커힐호텔은 SK그룹 핵심 계열사이며 특히 기획본부장은 오너 일가와 접촉이 잦았던 보직으로 알려져 있다. SK주변에서는 그가 최재원 수석부회장과도 친분이 있었다는 말도 나온다. 실제로 두 사람 모두 미국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을 수료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SK텔레콤으로 자리를 옮겨 재무 관련 임원으로 일하다 2008년 중반 회사를 그만뒀다.
회사를 그만두면서 세운 회사가 바로 베넥스다. 김 대표의 베넥스는 SK그룹과 접점이 많은 회사다. 베넥스는 회사 설립 직후였던 2008년 12월 6개 펀드를 조성, SK그룹으로부터 1450억 원을 출연받았다. 또한 베넥스 계열사였던 ‘베넥스 디지털문화컨텐츠 투자조합’도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가 투자한 회사였다.
재계에서 SK그룹은 퇴직한 임원들에 대한 예우가 좋은 기업으로 유명하다. 그렇다하더라도 SK가 베넥스에 선뜻 2000억 원을 투자했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 투자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또한 베넥스의 초기 자본금은 80억이었다. 당시 김 대표는 베넥스 지분을 100% 가지고 있었으며 현재도 80%를 소유하고 있다. 80억 원이란 초기 자본금을 한 개인이 조달했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기 어려운 부분이다. <일요신문>은 이런 여러 의혹에 대한 김 대표의 입장을 듣고자 회사를 통해 접촉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번 수사에 대한 SK 내부의 입장도 미묘한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기자와 만난 SK텔레콤의 한 관계자는 “검찰 수사 동향을 파악하고 있는데 시간이 지나봐야 알 것 같다”면서 “아직은 속단하기 이르다”고 말했다. 반면 SK그룹 측은 이번 수사는 SK와 무관하다며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 SK그룹 관계자는 “그런 문의를 많이 받았지만 그 분이 사업을 한 것은 회사를 그만두고 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과연 이번 수사가 SK 쪽으로 불똥이 튈지 금조부의 일거수일투족에 재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편, 최태원 회장이 ‘선물’에 투자해 1000억 원의 손실을 봤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SK가 당황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자금 출처에 주목하고 있으나 SK 측은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