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 17일 청와대 세종홀에서 열린 ‘제1차 공정사회추진회의’. 이명박 대통령이 개회 발언을 하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
최근 정부의 ‘조세정의’ 관련 대책에 대해 한 공무원이 내뱉은 말이다. 지난 3월 31일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제2차 공정사회 추진회의’를 갖고 조세정의 실현방안을 내놓았다. 2월에 열린 1차 공정사회 추진회의가 공정사회 구현을 위한 8대 중점과제를 선정한 회의였다는 점에서 2차 회의는 공정사회를 위한 실제 방안을 내놓은 첫 번째 회의였다.
정부가 공정사회를 위한 과제로 조세를 꼽은 것은 납세가 국민의 4대 의무임에도 공정하지 않다는 불만이 가장 많은 분야이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가 가장 중요하게 내세운 것이 역외탈세 및 고액체납자에 대한 세금 추징 강화였다. 이를 위해 체납세액 징수업무를 민간에 위탁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 방안은 내놓기가 무섭게 정부부처 내에서 논란을 빚으면서 좌초위기에 처했다.
체납세액 징수업무 민간 위탁에 대한 논란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지난 2010년 5월 민주당 홍재형 의원 등 국회의원 10명이 지방세 체납징수 업무를 민간에 위탁하는 지방세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체납세금 징수 업무를 민간에 위탁하는 문제는 개인정보 유출 및 인권침해 우려가 있다는 반발에 처리가 불투명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기획재정부가 주도해 체납세액 징수업무 민간 위탁 방안을 다시 들고 나온 것이다. 재정부는 조세정의 실현 방안 발표 당시 ‘체납세액 징수업무를 민간에 위탁하여 고액체납세액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이 제도가 미국 호주 일본 등 일부 선진국에서 시행 중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그러나 당장 행정안전부가 체납세금 징수업무의 민간위탁은 검토 대상이 아니라며 반대하고 나섰다. 민간에 추심 업무를 위탁하면 개인정보가 유출될 우려가 있고, 과도한 추심행위로 인해 체납자에 대한 인권침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세법상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행위는 민간 위탁을 할 수 없다는 규정을 근거로 징수업무 민간 위탁은 법률 위반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반대 이유로 들고 있다.
체납세금 징수와 함께 정부가 강조해온 역외탈세 문제는 한 기업인의 반발로 시작부터 어그러지는 모양새다. 국세청은 국부유출을 초래하는 역외탈세 행위에 엄정 대처하겠다며 전담조직을 신설하고 역외세원관리 인프라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올해를 역외탈세 차단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야심찬 포부도 내놓았다. 최근 국세청이 세법상 권혁 시도상선 회장이 외국인(비거주자)이 아니라 국내 거주자라며 4000억 원대의 역외탈루 소득 과세를 결정한 것도 이 같은 의지를 드러낸 것이었다.
하지만 권 회장은 적극적인 언론플레이를 통해 국세청을 곤경에 몰아넣고 있다. 권 회장은 <일요신문> 등 각종 언론 인터뷰를 통해 “난 탈세범이 아니라 애국자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심지어 국세청 기자단과의 간담회도 갖겠다는 뜻도 밝히는 등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다.
사정이 이렇게 돌아가자 정부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개획재정부 관계자는 “권 회장이 과세를 피하기 위해 여러 전문가의 도움과 법률적 검토를 거쳤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조세심판원 결정과 이후 법률 분쟁까지 가게 되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고, 과세한 4000억 원을 받아내는 게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세정의 실현방안의 방향 자체가 잘못됐다는 비판도 있다. 부자 감세라는 비판이 가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탈세와 편법 상속, 고액 체납을 줄이겠다는 정책 방안은 조세정의라는 말에 비해 강도가 약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소득세 세율을 과표구간별로 2%포인트 인하했지만 연소득 8800만 원 이상 고소득층의 경우 부자 감세라는 야당의 비판에 2년간 유예한 상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조세정의를 위해서는 부자 감세라는 비판의 목소리를 잠재우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연소득 1억 원 이상에 대한 과표 신설 등 대안을 강구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서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