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이 비상장 계열사인 SK네트웍스서비스 개인 최대 주주로 등극해 재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01년 최태원 SK 회장과 고 정주영 명예회장 조문을 위해 빈소로 함께 향하는 모습. |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이 개인 최대주주에 올라 있는 회사는 통신장비 업체인 SK네트웍스서비스다. 이 회사가 지난 3월 21일 공시한 2010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손 명예회장은 이 회사 지분 15%(9만 주)를 보유하고 있다. 손 명예회장이 이 회사 지분을 사들인 것은 지난해 6월. 당시 SK네트웍스서비스 지분 100%를 갖고 있던 SK네트웍스가 지분 15%를 손 명예회장에게 매각한 것이다. 주당 거래가는 3만 원으로 거래 총액은 27억 원에 이른다.
SK네트웍스서비스는 지난 2007년 7월, 30억 원의 납입자본금으로 설립돼 SK텔레콤 등 그룹 계열사 물량을 기반으로 고속성장을 해왔다. 지난 2008년 매출 355억 원, 영업이익 42억 원, 당기순이익 30억 원이었던 이 회사는 가파른 성장세를 거쳐 지난해 매출액 656억 원, 영업이익 75억 원, 당기순이익 58억 원을 달성했다. 설립 3년 만에 납입자본금의 두 배가량을 연간순이익으로 벌어들이는 회사로 성장한 것이다.
계열사 지원을 등에 업고 빠르게 성장 중인 SK네트웍스서비스의 개인 최대주주 자리에 손 명예회장이 오른 것에 대한 외부의 시선은 그다지 곱지 않다.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지난 8일 논평을 통해 “SK네트웍스가 손길승 명예회장에게 SK네트웍스서비스 지분을 주당 3만 원에 매각한 것은 특혜 의혹이 있고, 또한 SK텔레콤 명예회장이 SK네트웍스서비스의 지분을 보유하는 것은 이해상충의 문제를 야기하므로, 손길승 명예회장이 조속한 시간 내에 이를 해소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SK네트웍스서비스가 비상장 회사이고 이 회사 주식 전량을 SK네트웍스(85%)와 손 명예회장(15%) 등 특수관계인이 나눠 갖고 있기에 적정 주가에 대한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그룹 계열사 물량을 기반으로 커가는 중인 SK네트웍스서비스 주식을 3만 원에 매각한 것은 높은 기업 가치와 비교할 때 ‘저가’로 의심된다는 것이 경제개혁연대의 주장이다.
SK텔레콤과 특수한 거래 관계에 있는 SK네트웍스서비스의 지분을 SK텔레콤의 명예회장이 대량 보유한다는 점 또한 논란거리다. 지난 2008년 12월 손 명예회장이 SK텔레콤 명예회장직에 오른 이후로 SK 측은 “손 명예회장은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손 명예회장은 그룹 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손 명예회장은 1965년 SK 전신인 선경그룹 공채 1기로 입사해 그룹 경영기획실장, 구조조정추진본부장 등을 거치며 최태원 회장 선친 최종현 회장의 최측근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1998년 최종현 회장 타계 이후 최태원 회장과 함께 공동 회장에 올라 당시 38세에 불과했던 최태원 회장을 보필하며 그룹 살림을 도맡았을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다. 그러나 2004년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분식회계 사태로 물러났다가 4년여의 야인생활 끝에 2008년 12월 SK텔레콤 명예회장으로 컴백했다.
당시 손 명예회장의 복귀는 그룹 원로에 대한 최태원 회장의 정중한 예우로 풀이됐다. 경험이 부족했던 최 회장을 도와 그룹 경영을 이끌었으며 SK글로벌 사태 당시 수감 생활까지 했던 손 명예회장에 대한 극진한 예우로 비친 것이다. 이번 SK네트웍스서비스 지분 거래 역시 ‘예우의 연장선상’으로 보는 시선이 제법 많다.
항간에선 손 명예회장의 SK네트웍스서비스 개인 대주주 등극을 SK그룹 부회장과 상임고문(회장 대우)을 지낸 김항덕 중부도시가스 회장의 경우와 비교하기도 한다. 한때 손 명예회장과 함께 ‘좌길승 우항덕’으로 불렸을 정도로 고 최종현 회장의 오른팔로 평가받았던 김 회장은 1998년 SK 계열이었던 중부도시가스를 챙겨서 독립했다. 수감 생활까지 하면서 그룹과 오너 일가를 위해 큰 고생을 한 손 명예회장을 달래주기 위해 최 회장이 SK네트웍스서비스 지분 거래를 통해 ‘살림’을 떼어 준 것으로 비치는 것이다.
손 명예회장의 SK네트웍스서비스 대주주 등극을 계기로 재계에선 최 회장과 손 명예회장의 관계에 대한 여러 해석들이 대두되고 있다. 최 회장과 손 명예회장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보는 인사들은 이번 SK네트웍스서비스 지분 거래가 향후 최 회장 사촌형인 최신원 SKC 회장 계열분리에 미칠 영향을 거론하기도 한다.
1998년 최종현 회장 타계 당시 오너 2세들의 맏형인 최신원 회장 대신 최태원 회장이 총수직에 오르면서 “공동 회장에 올랐던 손길승 명예회장이 최태원 회장으로의 승계를 가능하게 만든 주역”이란 말이 나돌았다. 자연스레 최신원 회장과 손 명예회장의 사이가 멀어졌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고 최종건 초대 회장의 아들인 최신원 회장은 최태원 회장의 그룹 총수 취임 이후로 줄곧 계열분리를 도모해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신원 회장의 SKC 지분율은 3.4%에 불과해 42.5%를 보유한 SK㈜에서 독립하기가 쉽지 않은 상태다. 최태원 회장의 ‘통 큰 결단’ 없이는 불가능한 셈이다. 일각에선 최태원 회장이 최신원 회장 분가의 큰 그림을 손 명예회장에 맡겨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계열분리를 도모할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에 대해 SK그룹 측은 “오랫동안 회사를 위해 공헌하신 분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이뤄진 일로 다른 뜻은 없다” 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한편 최태원 회장과 손길승 명예회장 사이를 물과 기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최근 몇 년간 SK그룹 인사 때마다 ‘세대교체’란 수식어가 따라붙을 정도로 최태원 회장은 신진세력 키우기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선 지분율 강화로 지배구조 안정을 이룬 최 회장이 그룹 장악력을 강화하기 위해 ‘손길승 라인’ 지우기에 나섰다는 평도 제기돼 왔다. 손 명예회장의 SK네트웍스서비스 대주주 등극이 향후 최 회장과 손 명예회장의 관계설정에 어떤 변수가 될지 재계의 많은 시선이 쏠려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