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7 재보선 참패로 레임덕에 직면한 이명박 대통령이 영향력을 지속하기 위해 형님 이상득 의원에게 힘을 실어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사진은 2008년 대통령 당선 직후 이 대통령과 일본을 방문하고 돌아온 이상득 특사. |
재·보궐선거 투표가 한창이던 지난 4월 27일 오후 청와대는 뒤숭숭했다. 강원과 김해 을은 물론 ‘천당 아래’로 불릴 만큼 한나라당 텃밭인 분당 을에서도 패할 것 같다는 관측이 나왔기 때문이다. 선거 전날까지만 해도 ‘잘하면 3 대 0으로 이길 수 있다’는 낙관적인 보고들이 올라왔던 터라 그 충격파는 더했다. 결국 김해 을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한나라당이 모두 패한 것으로 드러나자 청와대 참모진은 비상 회의를 소집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선거 다음날인 28일 참모들에게 “이번 선거에 나타난 국민의 뜻을 무섭게 받아들이고, 정부 여당이 거듭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우리가 무엇이 부족했는지 겸허히 살필 것”이라고 밝혔다.
한나라당 분위기도 참담했다. 개표 방송을 지켜보던 당직자들은 안타까운 듯 탄성을 질렀고 몇몇 의원들은 도중에 자리를 떴다. 한 의원은 심경을 묻는 기자들에게 “뭘 듣고 싶은 것이냐.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면서 “엄청난 격랑에 휘말릴 것 같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재오계로 분류되는 김효재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일본 동북부 쓰나미 정도로 충격이 크다. 당내 계파분란 등에 대해 국민들이 강한 메시지를 준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수도권 의원들의 ‘쇼크’는 더욱 컸다. 분당에서의 패배로 내년 총선에서 ‘적신호’가 켜졌기 때문이다. 윤호석 정치컨설턴트는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그나마 이번에 패한 게 나을 수 있다. 그러나 이번 경고를 무시하고 변화하지 않는다면 다음 총선에서는 레드카드를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패닉’ 상태에 빠진 여권은 재빨리 수습에 나섰다. 한나라당은 지도부가 총사퇴했고 조만간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 한때 한나라당 내에선 이번 재보선 패배로 오히려 몸값이 오르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가 비대위 위원장을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청와대에서는 임태희 대통령실장과 수석 비서관들이 이 대통령에게 사의 뜻을 전했다. 홍상표 청와대 홍보수석은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부담을 덜어드리고 힘을 실어준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당·청이 몸을 추스르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조기전당대회, 원내대표 경선, 청와대 참모진 교체 등을 놓고 여권 계파 간 주도권을 잡기 위한 권력암투가 벌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한 재보선 참패 책임론을 놓고서도 공방이 뜨거울 것으로 보인다.
4개 부처 정도에 대해서만 개각을 염두에 두고 있던 이 대통령도 민심 이반이 심상치 않다는 측근들 조언을 받아들여 청와대 일부 참모는 물론 5~7개 부처 장관 교체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사실상 패한 이후 한 달 만에 정정길 대통령실장과 박형준·이동관 수석을 교체한 바 있다. 이번 재보선은 전국규모가 아니었던지라 당초 청와대 개편은 고려하지 않았지만 워낙에 그 파장이 커 이 대통령도 어느 정도 인적 교체의 필요성은 공감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청와대 정무라인 한 관계자는 “당이 쇄신을 위한 대책 마련에 분주한데 청와대가 손을 놓고 있을 순 없는 노릇 아니냐”면서 “그렇다고 국면 전환용 인사로 봐서는 안 될 것이다. 일하는 정부에 적합한 진용을 꾸린다는 취지”라고 귀띔했다.
그러나 여권 핵심부 내에선 당을 향해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청와대와 이 대통령을 향한 제스처들이 ‘지나치다’는 판단 때문이다. 김성식 의원은 “청와대가 호루라기 불면 된다는 ‘호루라기 정치’를 청산해야 한다”며 당·청 관계의 재정립을 외쳤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레임덕은 필연이다. 오늘부터 시작됐다”면서 “대통령도 바뀌어야 한다. 일만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홍준표 최고위원도 “지금은 박근혜 시대”라며 간접적으로 이 대통령 레임덕을 언급했다. 여당 인사들의 이러한 발언에 청와대 몇몇 참모들과 이 대통령 측근들은 울분을 토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캠프 출신의 한 여권 고위 관료는 “패배의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는 한나라당이 내년 총선에서 자기들만 살겠다고 이 대통령을 연일 흔들고 있다. 의원 ‘배지’를 누구 때문에 달았는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와대 안팎에서 이상득 의원과의 ‘접촉’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견해들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위기’에 직면한 이 대통령이 국정장악력을 유지하고 향후 당 개편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선 믿을 수 있는 ‘형님’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 역시 재보선 패배 후 이 의원과 여러 차례 통화를 해 재보선 이후 정국 운영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보좌관 출신 정치컨설턴트 이재권 씨는 “그동안 이 대통령이 흔들릴 때마다 이 의원이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 왔다. 이 의원은 대통령 형님인 동시에 이재오 장관과 함께 한나라당 주류의 한 축을 이끌고 있는 계파 수장이기도 하다. 이번에도 이 의원이 막후에서 당과 청 가교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정치권에선 ‘이상득 활용론’을 박근혜 전 대표와 연관 지어 바라보기도 한다. 재보선 패배로 ‘선거의 여왕’ 박 전 대표에게 힘이 쏠리고 있는 상황에서 친박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 의원의 존재가치가 더욱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이 의원과의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할 경우 ‘형님 라인’의 핵심인 임태희 실장에게도 힘이 실릴 전망이다. 비록 사의는 표명했지만 ‘재신임’ 가능성은 여전히 크다는 관측이다. 다만 변수는 임 실장이 6~7월 사이에 개최될 것으로 알려진 한나라당 전당대회에 출마할지 여부가 될 듯하다. 만약 당 복귀 결심을 굳힌다면 5월 중에 물러날 것이 유력하다고 한다. 앞서의 청와대 정무라인 관계자는 “일각에서 임 실장에 대한 이 대통령 신뢰가 줄어들었다고 하는데 여전히 각별히 챙기고 있다. 그만두더라도 이 대통령 남은 임기 동안 중요한 일을 수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