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C 씨는 이런 A 씨가 부담스러워 점차 그녀를 피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사귀는 과정에서도 말다툼을 벌이다 화해하는 일을 자주 반복했다. 경찰 조사결과 사건이 발생하기 일주일 전부터 C 씨는 아예 A 씨의 전화도 받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때문에 A 씨는 조울증에 시달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A 씨는 C 씨가 자신을 피하는 것을 알고 사건 당일인 21일 오후 9시 20분쯤 인천 서구에 위치한 C 씨의 아파트로 찾아갔다. 전에도 종종 다툼이 있었을 때 C 씨 집에 찾아가 화해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A 씨는 아파트 입구에 차를 주차하고 차 안에서 C 씨를 기다렸다. 그런데 잠시 뒤 피해자 B 씨가 택시를 타고 C 씨 아파트에 도착했다. B 씨는 6개월 전 C 씨와 만나 올 초까지 사귀었던 관계로 당시엔 헤어진 상태였다. 그런 B 씨가 사건 당일 C 씨의 아파트에 오게 된 것은 평소 C 씨가 B 씨에게 A 씨 문제로 고민상담을 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택시에서 내린 B 씨는 A 씨의 차량을 발견하자 차 유리창을 두드리며 A 씨에게 차에서 내리라고 했다. 동성애자인 두 여인이 자신들이 사랑한 여성의 집 앞에서 서로 ‘연적’으로 만난 것이다. B 씨는 A 씨에게 왜 자꾸 찾아오냐며 따졌고, 서로 시비가 붙은 가운데 당황한 A 씨는 황급히 자리를 피하려 했다. 그러나 B 씨가 A 씨를 못 가게 막자 이내 실랑이가 벌어졌다. 서로 머리채를 잡고 싸우던 중 A 씨는 쓰고 있던 모자가 날아가기도 했다.
다툼이 계속되자 순간 이성을 잃은 A 씨는 자신의 차량에 있던 식칼(부엌칼)을 가져와 B 씨의 목과 가슴 부위를 세 차례 찔렀다. 경찰조사에서 A 씨는 “(범행에 사용한) 칼은 새로 이사하는 집에서 쓰려고 준비했던 것이다”고 밝혔다. B 씨가 피를 흘리며 쓰러지자 겁먹은 A 씨는 식칼을 던져두고 황급히 자신의 집이 있는 서울로 도망쳤다. 상처를 입은 B 씨는 살려달라며 소리쳤고, B 씨의 목소리를 들은 아파트 주민이 경찰에 신고했다.
21일 오후 9시 50분쯤 인천 서부경찰서에는 인천 서구 가정동의 한 아파트 단지 내에 왠 ‘남자’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이 사건 현장에 도착했을 때 피해자 B 씨는 과다출혈로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현장을 살펴보던 경찰은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남자로 알고 있던 사망한 B 씨가 남자가 아닌 여자였기 때문이다. 최초 신고도 남자가 쓰러져 있다는 내용이었고, 경찰이 보기에도 짧은머리에 옷차림이나 겉모습은 영락없는 남자의 모습이었다.
경찰은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속옷이 여성용임을 발견했다. 조사결과 동성애자들은 서로 남, 녀의 역할로 나눠 만남이 이뤄지는데 피의자 A 씨와 피해자 B 씨는 C 씨와의 관계에서 남자 역할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강도상해치사로 자칫 미궁에 빠질 뻔 했던 이 사건은 도망쳤던 A 씨가 사건 발생 5시간 만인 다음날 오전 3시 15분경 부모님과 함께 경찰에 자수하면서 일단락됐다.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죄에 A 씨는 경찰서에 도착했을 당시 덤덤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점차 경찰조사가 진행되자 뒤늦은 후회의 눈물을 보였다고 경찰은 전했다.
사건을 담당한 인천 서부경찰서 이정민 강력 2팀장은 기자에게 “세간에선 동성애자들 사이에 벌어진 살인사건으로 주목하고 있지만 해당 부모의 입장에선 사랑하는 자식이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된 안타까운 사건이다”고 전했다.
이훈철 인턴기자 boazhoon@ilyo.co.kr
‘친목 만남’ 뒤엔 ‘폭행·협박’도
공중 화장실에 가보면 온라인 ‘동성애 카페’를 홍보하는 글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렇다고 굳이 냄새나는 화장실에서만 ‘동성애 카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동성애 관련 키워드만 검색해도 카페 목록이 뜬다.
대부분 만남을 목적으로 하는 카페가 많지만 수영, 등산 등 취미활동을 같이 하자거나 단체로 영화를 보러 다니자는 등 동성애자들끼리 인맥 교류를 위한 카페도 있다.
성소수자들끼리의 친목도모를 위한 카페가 ‘동성애 카페’의 좋은 사례라면 이런 카페를 악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2008년 7월 3일 A 군(16)은 동성애 인터넷 사이트에서 자신의 전화번호를 보고 전화한 회사원 B 씨(38)에게 ‘미성년자와 원조교제를 하려고 전화한 게 아니냐’며 협박해 37차례 걸쳐 47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뜯어냈다.
수만 명이 회원으로 있는 동성애자 모임 회원인 백 아무개 군(18) 등 10대 11명이 지난해 12월 동성애자 클럽에서 탈퇴한 후 모임을 비방했다는 이유로 탈퇴회원을 집단으로 보복폭행한 사건도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