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스타와 그를 발굴한 최고의 매니저, 그들은 각각 할리우드에서도 주목받는 스타가 됐고 국내 최대 연예기획사 대표가 됐다. 전지현과 정훈탁 IHQ 대표가 바로 그 주인공들. 이들은 결혼설이 불거질 만큼 절친한 사이였다. 그렇지만 불법도청 사건에 이어 계좌도용 사건까지 불거지면서 이제는 전쟁을 벌이는 관계가 됐다. 수면 위로 드러난 사안으로 볼 때 이번 검찰의 스톰이앤에프 관련 주가조작 사건은 ‘재주는 신동엽이 부리고 돈은 전지현이 챙긴’ 모양새다. 그렇지만 검찰은 수면 아래서 정작 사건을 주도한 이는 정 대표와 권승식 스톰이앤에프 전 대표로 보고 있다. 결국 수면 경계에서 전지현과 정 대표의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참으로 묘한 상황이었다. 지난 2009년 11월 연예계에선 디초콜릿이앤티에프(디초콜릿. 현 스톰이앤에프) 경영권 분쟁에 참여했던 신동엽이 완패를 했다는 사실이 화제였다. 그런데 자세한 내막을 들여다보면 의혹이 수두룩했다. 애당초 경영권 분쟁은 신동엽과 은경표 스타시아인베스트먼트 대표 등 디와이엔터테인먼트 창립 멤버들과 이도형 팬텀엔터테인먼트(현 스톰이엔에프) 전 회장 세력과의 사이에서 벌어졌다. 당시 디초콜릿의 경영권을 이 전 회장의 모친과 측근들이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영권 분쟁의 대결장이 될 것이라 여겨진 주주총회를 앞두고 이 전 회장 세력이 지분을 모두 매각해 대결 주체가 애매해졌다. 게다가 주주총회 하루 전 서울지방법원이 신동엽 측 3인이 보유한 103만 754주에 대한 의결권행사금지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주주총회에서 경영권 분쟁을 벌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져 버렸다. 그렇게 신동엽이 전면에 나선 경영권 분쟁은 완패로 마무리됐다.
문제는 승자가 누구냐다. 경영권 분쟁이 벌어질 것이라 예상됐던 주주총회에선 권승식 씨를 새로운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그런데 권 전 대표와 신동엽 측 특별관계자로 이름을 올린 테드인베스트먼트의 정훈탁 대표(현 IHQ 대표)는 매우 각별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2008년 4월 함께 쓰리쎄븐을 인수하려다 이중계약 논란 등으로 인해 무산됐던 적도 있다. 그렇다 보니 말만 경영권 분쟁이지 누구와 누구의 분쟁인지도, 또 누가 승리한 것인지도 말하기 애매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금융위원회는 해당 경영권 분쟁이 시작되기 한두 달 전부터 정 대표가 전지현의 증권계좌로 주식을 사들여 시세차익을 얻었으며 권 전 대표 역시 차명으로 주식을 대량 매집해 부당이익을 취했다고 검찰에 고발했다. 현재 이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이석환 부장검사)에 배당됐다. 만약 검찰 수사를 통해 금융위원회의 고발 내용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당시 신동엽이 전면에 나섰던 경영권 분쟁의 진실은 미공개 정보를 활용해 부당이득을 취한 주가조작 사건으로 밝혀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당시 디초콜릿의 주가가 급등한 결정적인 이유는 신동엽이 테드인베스트먼트 등과 함께 경영권 분쟁에 참여했다는 점이다. 현직 연예인인 신동엽이 경영권 분쟁에 직접 나섰다는 사실은 상당히 화제가 됐고 이는 주가 급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다만 신동엽은 시세차익을 얻은 정황이 드러나지 않아 금융위원회의 검찰 고발 대상엔 속하지 않았다.
정작 시세차익을 올린 이는 전지현이다. 신동엽의 경영권 분쟁이 시작되기 한두 달 전 주식을 취득한 전지현은 2억 2000만 원의 시세차익을 올렸다. 재주는 신동엽이 부리고 돈은 전지현이 챙긴 셈. 전지현 역시 검찰 고발 대상에서 빠졌는데 금융위원회는 전지현이 주가 조작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결국 전지현의 계좌가 전형적인 차명계좌라는 것. 전지현은 금융위원회 조사에서 해당 계좌를 2004년 정 대표 부탁으로 개설한 뒤 그 존재 자체를 잊고 있었던 터라 직접 주식거래를 하지 않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정 대표 측은 “해당 계좌는 오래전부터 전지현의 재산증식을 위해 위임을 받아 관리하던 계좌로서 전적으로 전지현의 소유”라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최근 전지현 측에서 계좌를 해지해 남은 주식을 출고해 간 것을 제시했다. 결국 차명계좌라면 정 대표가 주가 조작에 관련된 데다 금융실명제법까지 위반한 것이고 위임계좌라면 전지현도 주가조작에 관련됐다는 얘기가 된다. 양측이 물러설 수 없는 팽팽한 대립을 벌일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전지현과 정 대표는 한때 결혼설까지 휘말렸던 사이다. 결혼설은 해프닝으로 마무리됐지만 그만큼 두 사람이 각별한 신뢰를 쌓은 사이였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 만큼 2009년 1월에 불거진 전지현 불법도청 사건은 충격적이었다. 정 대표는 이 사건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2009년 4월 IHQ 대표직을 사임했고 전속계약 기간이 만료된 전지현은 예상을 깨고 IHQ와 재계약했다.
연예관계자들 사이에선 불법 도청 사건 이후 전지현과 정 대표의 관계가 사실상 깨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2010년 7월 정 대표가 다시 IHQ의 최대주주가 돼 대표로 복귀하자 전지현은 1인 기획사를 설립해 IHQ를 떠났다. 그런데 두 사람의 관계가 악화된 불법도청 사건이 벌어지고 몇 달 뒤 문제의 주가조작이 이뤄졌다.
여기서 몇 가지 의혹이 제기된다. 우선 전지현은 왜 관계가 악화된 데다 소속사 대표 자리에서도 물러난 정 대표에게 위임했던 계좌를 회수하지 않은 것일까. 전지현 측은 ‘정 대표에게 부탁받아 개설해 놓은 뒤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계좌’라는 입장이지만 정 대표 주장처럼 전지현 측이 최근 해당 계좌를 해지해 남은 주식을 출고해 갔다면 ‘모르고 있던 계좌’가 아닐 수도 있다.
정 대표가 주가 조작 과정에서 차명계좌가 필요해 전지현의 계좌를 활용했다는 것도 검찰 입장에서 의문이 따른다. 불법도청 사건이 터진 2009년 1월 이전이면 몰라도 사이가 악화된 직후인 2009년 7~8월엔 가장 꺼려지는 차명계좌주가 전지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차명계좌임을 부인한 정 대표는 ‘전지현의 재산증식을 위해 위임받아 관리하던 계좌’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 주장대로라면 정 대표는 전지현과의 관계가 악화된 데다 소속사 대표 자리에서도 물러난 상황임에도 전지현의 재산 증식을 위해 애썼다는 얘기가 된다. 그 이유를 두고 다양한 추측이 난무하고 있는데 심지어는 정 대표가 불법도청 사건으로 악화된 신뢰관계 회복을 위해 전지현에게 금전적 이익을 주려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