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학수 부회장이 삼성차 부채와 그룹후계구도 완성이라는 난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주목된다. | ||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이학수 부회장을 가리키는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다음에 이 부회장이 있다는 얘기다. 그를 삼성그룹 전문 경영인의 대표이자, 이 회장의 실질적인 대리 경영자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은 지난해 1백35조원의 매출액에, 삼성전자 단일 회사만으로도 10조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대한민국 역사에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삼성은 이 ‘영광’을 이건희 회장에게 돌렸고, 이건희 회장은 지난 겨울 스키장으로 구조본 임원들을 제일 먼저 불러 ‘노고’를 치하했다. 구조본의 중심은 이학수 부회장이다. 때문에 그를 대한민국 서열 3위라고 부르는 것이다.
삼성이 불법 대선자금 문제로 수사를 받았을 때 조사의 대상은 이건희 회장이 아닌 이학수 부회장과 구조본이었다. 이건희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의 재산승계 작업과 경영권 승계작업은 구조본 재무팀의 일이다. 삼성이 IMF 이전 자동차 사업에 진출했다가 퇴각했을 때 칼을 든 곳도 이 회장이 아닌 구조본이었다.
이 회장을 대리해 삼성을 움직이는 곳이 바로 구조본이고, 구조본의 수장이 이 부회장인 것이다. 그래서 삼성 구조본의 위상은 그룹 내에서 하늘을 찌른다.
이렇게 영광이 높은 만큼 비판도 만만찮다. 삼성그룹 내에서 삼성전자나 삼성생명이 아닌 계열사 사장은 구조본 재무팀 임원을 만날 때 미리 스케줄을 조정하고 긴장한다고 한다. 한 계열사 임원은 “사장이 구조본 재무팀에서 갓 상무를 단 임원을 만나기 위해서는 미리 스케줄을 조정하고 사전에 사업 현안에 대해 충분한 스터디를 마치고 만난다”고 전한다.
삼성 구조본의 핵인 이학수 부회장은 지난 71년 제일모직으로 입사한 뒤 만 34년간 삼성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82년 12월 회장 비서실 운영1팀장을 맡은 이래 84년 제일제당, 95년 1월부터 96년 7월까지 삼성화재에서 일한 것을 빼고는 줄곧 비서실에서만 20여년간 일했다.
이런 오랜 비서실 경력은 그에게 장점이자 약점으로 꼽힌다. 오랜 비서실 생활을 통해 전체 그룹을 보는 눈은 생겼지만, ‘전형적인 관리형’ 모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평도 있다.
이학수 부회장의 총수 관련 보필을 빼고 가장 큰 업적을 꼽자면 삼성의 자동차 사업 구조조정이다. 그가 지난 96년 비서실장이라는 직함을 단 뒤 첫 작품격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 부회장이 삼성의 자동차 사업 퇴출이 논의되는 시점에 사업지속을 위해 깊숙이 관여했다는 점이다. 삼성 구조본에서 고위직을 지낸 A씨는 “이 부회장이 98년 DJ 정부 초기에 DJ의 최측근을 상대로 삼성의 자동차 사업 당위성에 대한 설득 작업을 한 책임자였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런 그였지만 외환위기가 찾아오면서 자동차 사업을 정리하자는 쪽으로 돌아섰다. A씨는 “DJ 정부에서 진행된 기아자동차 1차 국제입찰이 유찰되자 DJ가 삼성에 화를 내기도 했다”며 정부의 압력에 의해 삼성이 자동차 사업을 포기한 것은 아니라고 전했다.
▲ 이건희 회장과 뒤쪽의 이 부회장. | ||
당시 구조본에서 일했던 부장급 인사 B씨는 “이 부회장은 자동차 사업 포기 여론 조성을 위해 비서실 내 각 팀 단위로 점심식사를 같이하는 등 애를 썼고, 이 회장에 의견을 낼 수 있을 만한 오너그룹, 친인척을 설득시켰다”고 기억했다.
결국 이 부회장은 이 회장의 자동차 사업 포기를 이끌어내고, 삼성자동차를 르노그룹에 매각했다.
이후 ‘이 회장의 자동차 사업 실패 책임론’이 일자 이 회장은 자신 소유의 삼성생명 주식을 채권단에 내놓고 불을 껐다. 구조본이 도출한 이런 해결방식에 대해 삼성 안팎에서 비판적인 시각도 나온다.
삼성생명 주식을 주당 70만원에 계산해 내놓았지만 해결이 아닌 뒤로 미뤄놨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는 것. 채권단은 삼성생명이 비상장인 까닭에 아직 채권 회수하지 못하고, 삼성자동차 채권단은 이의 회수를 위해 채권단과 CJ 보유의 삼성생명 지분을 미국계 펀드인 뉴브릿지캐피탈에 매각하는 작업을 추진했었다. 향후 뉴브릿지 등 외국계가 삼성생명 주식을 전량 인수할 경우 외국계는 삼성에버랜드(19.34%)에 이어, 2대 주주(17.65%)가 된다. 또 매각단가가 주당 70만원을 넘지 않을 경우 채권단은 삼성에 삼성생명 지분 50만 주를 추가로 요구할 수 있고, 이를 또다시 외국계에 넘길 경우 삼성생명의 경영권이 흔들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 부회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또 하나의 문제는 이재용 상무에 대한 경영권 승계 작업이다. 이 상무는 삼성의 지주회사격인 에버랜드의 신주인수권부 사채 발행을 통해 삼성에버랜드 1대 주주 자격을 확보해 형식적으로는 그룹 경영권을 장악했지만, 초기 씨앗돈 마련과정이나 에버랜드 주식 취득 과정에서 일어난 편법 상속 논란으로 법정 소송이 벌어지는 등 경영권 승계의 명분 획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1월 초 문제의 신주인수권부를 발행했던 에버랜드의 당시 경영진에게 실형이 구형되기도 했다.
때문에 삼성 안팎에서는 구조본이 이 상무에 대한 경영권 승계 작업과 관련해 이뤄놓은 게 뭐냐는, 비판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이 책임론은 물론 이 부회장을 겨냥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구조본쪽에서 “이 상무의 그룹 경영권 지배는 완결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내부적으로 주식 취득 과정이 합법적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주식 취득 이후 대규모의 이익이 발생하고, 세금을 탈루했다는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이익금을 사회에 환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 부회장 체제의 구조본에 쏟아지는 보다 근본적인 비판은 미래를 위한 신수종 사업을 개발해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부회장이 숫자를 중요시하는 재무통이고, 자동차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구조본 내 기획팀이 사실상 와해된 뒤 더욱 그렇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반면 이학수 부회장 주도 아래 삼성 구조본이 외환위기를 슬기롭게 넘겼다는 호평도 있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다른 그룹의 살림이 축소될 때 삼성만 박차고 나가 부동의 재계 1위가 됐기 때문이다.
그가 이재용 상무의 경영권 승계작업 마무리와 삼성자동차 부채 문제 해결이라는 난제까지 해결해낼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이학주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