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이명박 정부의 경제부처 수장들이 잇단 악재를 쏟아내면서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22일 이명박 대통령이 제12회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최근 여야 정치권은 물론 시민단체와 언론 등에서 집중 포화를 맞으며 누란지위(累卵之危, 알을 쌓아 놓은 것처럼 위태로운 형세)에 처한 대표적인 이는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다. 김 본부장은 노무현 정부 때인 지난 2007년 8월 현재의 자리를 맡은 뒤 지금까지 3년 6개월째 재임 중이다. 현재 장관급들 중에서 가장 오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동안 한국과 미국 간 FTA는 물론, 한-EU FTA 등을 맡아왔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 때는 재협상을 맡아 미국의 양보를 이끌어내면서 한때 주목받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한-EU FTA의 잘못된 번역으로 인해 여야 정치권으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다. 지난 3월 송기호 변호사가 한-EU FTA 오역 문제를 제기했을 당시 김 본부장을 비롯한 외교통상부는 “별 문제가 아니다”며 깔아뭉갰다. 하지만 추가 오역이 잇달아 드러나면서 초기 대응을 잘못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정치권과 시민단체에서는 오역투성이 한-EU FTA를 국회에서 통과시켜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결국 외교통상부는 지난 3월 10일부터 30일까지 한-EU FTA 한글본에 대해 전문가와 민간인, 통상교섭본부 등이 각각 진행하는 재검독을 실시한다며 한 발 물러섰다. 재검독 결과 208쪽짜리 서비스 양허표에서 111건의 오류가 발견됐고, 87쪽짜리 품목별 원산지 규정에서는 64건의 오류가 나왔다. ‘이식’을 ‘수혈’로 잘못 번역한 것을 포함해 오역이 가장 많았지만, ‘광택제’를 ‘고아택재’로 잘못 치거나, ‘경제협력개발기구’를 ‘경제개발협력기구’로 번역하는 등 기초적인 실수도 적지 않았다.
김 본부장은 지난 4일 기자회견을 갖고 한-EU FTA 한글본 오역 사태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리고 한-EU FTA 한글 수정본을 다시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7월 1일 발효를 위해 4월 임시국회 통과가 시급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하지만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 야당을 중심으로 4월 임시국회 통과는 불가하다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6일 국회에 제출하고 바로 통과시켜달라는 것은 한-EU FTA 한글본을 제대로 검토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 것이라는 얘기다. 여당 일각에서도 한-EU FTA 통과를 위해 김 본부장의 사퇴가 필요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상황이 이쯤 되자 김황식 국무총리는 지난 7일 국회 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 질문에 출석해 “번역 오류와 관련해 혼란을 가져오고 국민에게 실망을 준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져야한다. 그런 부분에 대해 대통령과 상의하겠다”고 답변해 경질 가능성을 내비쳤다.
역대 기획재정부(재무부) 장관 중 5번째로 재임기간 2년을 넘긴 윤증현 장관도 물가 급등으로 위기에 처한 상태다. 윤 장관은 지난 6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열린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최근 국내 물가를 언급하며 “봄은 왔는데 우리 경제는 아직 봄을 이야기하기 이르다. 그동안 우리 경제는 구제역과 한파, 리비아 사태, 일본 대지진 등으로 물가상승 압력이 높아졌다”면서 “물가 불안 요인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3월 소비자물가가 전년동월 대비 4.7%로, 2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물가 압력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자 고민을 드러낸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물가대란이 장기화조짐을 보이면서 민심이 차갑게 식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강남보다 한나라당에 대한 충성도가 높다는 분당지역이 4월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흔들리고 있다. 이 때문에 재·보궐 선거 전 윤 장관 경질론이 한때 여권에서 부각되기도 했다.
특히 윤 장관이 최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물가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경우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싶다”고 답하자 여권 일각에서 윤 장관 경질론의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윤 장관을 대체할 만한 인물이 없다는 현실적인 인식 때문에 경질론은 한풀 꺾인 상태다. 그러나 물가 고공행진이 지속되고, 재·보궐 선거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윤 장관 경질론은 다시 고개를 들 가능성이 있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모순된 행보로 스스로 위기를 자초했다. 최 장관은 정운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이 내세운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 ‘반 시장적’이라며 공격을 가했다. 지난 3월 16일 기자간담회에서는 “초과이익공유제 개념은 애초 기업 내에서 노사 간 성과를 배분하는 문제에서 출발한 것이고 현실적으로 정형화하기 어렵다. 더 이상 논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중소기업의 성과기여도를) 어떻게 계산하나. 초과이익공유제를 정의하는 것 자체도 어렵고 누가 어떻게 기여했는지 협력기업(중소기업)을 어떻게 기억할 것이냐. 자동차만 해도 1만 개 이상 (협력)기업이 있는데 어디는 얼마, 저기는 얼마, 그걸 계산할 수 있느냐”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런데 기름값을 두고는 기업들에게 이익을 내놓는 수준을 넘어 적자를 보라고 압박을 가하고 있다. 최 장관은 지난 2월 석유 가격 태스크포스(TF)를 만들 때만 해도 “회계사 출신인 내가 정유사 이익구조를 자세히 들여보겠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석유 가격 TF 조사에서 정유사가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명확한 결론을 내지 못하자 최 장관은 “한국전력이나 설탕업체들은 영업이익을 내는가. 적자를 내는데도 정부에 협조하는데, 국민 복리를 위한 것이다. 정유사들은 성의 표시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가격 인하를 강요했다.
결국 3일 SK에너지가 전격적으로 휘발유와 경유 가격을 리터(ℓ)당 100원씩 할인해주기로 했고, GS칼텍스와 S-오일도 가격 인하 대열에 합류했다. 현대오일뱅크는 가격 인하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가격 인하로 SK는 2450억∼3000억 원, GS칼텍스는 1940억∼2080억 원, 현대오일뱅크는 1270억∼1300억 원, S-오일은 830억∼930억 원의 영업손실을 입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대한 우려로 SK에너지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 등 정유사의 주가는 하락세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우파 시민단체는 물론 소액주주들의 비난이 높아지고 있다.
최 장관과 함께 실세 중 실세로 ‘왕차관’이라 불리는 박영준 지경부 차관도 어려운 처지는 마찬가지다. 취임 일성이었던 자원외교 대상인 중동과 아프리카는 정정 불안으로 흔들리는 상태고, 원전 수출은 일본 원전 사태 이후 시장이 냉각되고 있다. 여기에 우제창 민주당 의원으로부터 “공기업 인사철을 앞두고 친이계 인사의 이력서가 박 차관에게 쇄도하고 있다”는 비난까지 받고 있다.
김서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