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SK그룹은 시련의 나날을 보냈다. 현 정권과 악연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더 많았다. 국제유가와 각종 생활물가가 동시에 오르며 정부와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대기업 수사가 한창이던 지난해 10월경에는 검찰과 국세청 등 여러 기관의 사정 리스트에 올랐다는 소문에 시달려야 했다. 실제로 국세청은 SK텔레콤에 대한 특별세무조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이처럼 각종 악재에 시달리던 SK그룹의 상황이 일본 대지진을 기점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난 3월 11일 발생한 일본 대지진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로 이어지며 전 세계를 방사능 유출에 대한 공포감에 휩싸이게 했다. 원자력 발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대체 에너지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태양광 신재생에너지 등 다양한 대안이 거론됐지만 이 가운데 영순위로 떠오른 것이 LNG(액화천연가스)다. 잘 알려진 대로 LNG 관련 사업은 SK그룹의 핵심 분야 중 하나다. 주력인 SK이노베이션(옛 SK에너지)은 물론이고 SK해운 SK건설 등이 LNG 연관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만 해도 현재 해외에 LNG 생산광구 세 곳을 갖고 있고, LNG 액화플랜트 공장도 네 곳이나 소유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LNG뿐만 아니라 그간 다른 에너지 개발 사업에 많은 투자를 해왔다. 현재 SK이노베이션이 개발하고 있는 광구만 해도 16개국 33개다. 뿐만 아니라 일본 대지진 이후 공장 가동이 중단돼 기존 도입한 원유를 당장 사용할 수 없게 된 일본 정유사들은 남아도는 원유 처리를 위해 잇따라 SK 측에 ‘SOS’를 요청하기도 했다.
SK이노베이션에 대한 기대감은 곧바로 주가에 반영됐다. 일본 대지진이 일어나던 지난 3월 11일 SK이노베이션의 주가는 주당 18만 6000원(종가기준)이던 것이 7거래일 연속 상승세를 타며 22일에는 22만 5000원까지 올랐다. 이 기간 20%에 가까운 주가 상승률을 보였으며 시가총액이 3조 원이 넘게 불어났다. 이 덕분에 SK이노베이션은 3월 22일 시총 20조 원을 넘어서며 삼성생명과 한국전력을 제치고 시총 톱10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LNG와 관련한 SK의 비상장 계열사도 주식시장에서 주목을 받았다. SK가 100% 출자한 케이파워는 광양LNG복합화력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 회사는 인도네시아에서 LNG를 장기 고정가액으로 공급받고 있어 향후 실적이 좋아질 전망이다. KB투자증권 이상원 연구원은 “일본 원전 우려로 인한 LNG 수요 증가와 관련해 가장 실질적인 수혜를 받는 곳이 케이파워”라고 밝혔다.
이밖에도 가스 플랜트분야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SK건설과 LNG 운반선 6척을 보유하고 있고 SK해운에도 호재로 작용했다. 또한 올해 말 평택에 800㎿급 LNG복합화력발전소를 완공해 생산에 들어갈 예정인 SK E&S 역시 업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처럼 주력회사인 SK이노베이션과 다른 비상장 계열사들이 주식시장에서 주목을 받으면서 SK그룹 지주회사인 SK㈜의 주가도 가파른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SK㈜의 주가는 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3월 11일 주당 12만 9000원(종가기준)이던 것이 4월 1일에는 주당 17만 원까지 올랐다. 보름 남짓한 사이 20% 이상 오른 것이다. 플랜트나 석유화학 사업을 하는 다른 대기업 지주사들의 주가도 일부 올랐지만 SK㈜의 주가상승률은 증시 전문가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전문가들은 SK그룹 계열사들의 주가가 당분간은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동부증권이나 유진투자증권 등 여러 증권사들도 SK그룹 관련주를 추천종목으로 꼽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한동안 악재에 시달렸던 최태원 회장의 어깨를 가볍게 하고 있을 법하다.
최 회장은 SK그룹이 내수시장에서 성장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판단, 몇 해 전부터 ‘글로벌 자원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대체에너지 개발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워줬고, 이는 최 회장이 강조해왔던 신에너지 개발과 맞아 떨어진 것이다.
SK그룹은 최근 국내 정유사 중 가장 먼저 기름값 인하 방안을 발표하며 정부의 물가인하 대책에 동조하고 나섰다. 그룹 주가 상승이라는 호재와 더불어 기름값 인하라는 회심의 카드를 뽑아든 SK가 과연 최근의 악재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
오너일가 신경전에 주가 요동
SK그룹 주가가 상승하는 것은 비단 사업과 관련한 호재 때문만은 아니다. 재계에서는 SK그룹이 조만간 어떤 식으로든 계열분리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고 최종건 SK 창업주의 아들들인 최신원-창원 형제가 고 최종현 2대 회장 아들 최태원 회장의 SK그룹에서 분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특히 재계는 최태원 회장과 최신원-창원 형제가 얼마만큼의 파이를 나눠가지느냐가 계열분리의 최대 관건이 될 것이라 판단하고 있다.
현재 워커힐호텔이나 SK네트웍스를 두고 최태원 회장과 최신원 SKC 회장이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 11일 SK네트웍스 주주총회에서 최태원 회장은 친동생인 최재원 그룹 수석부회장을 네트웍스 등기이사로 선임했다. 이에 대해 네트웍스 분리를 요구하는 최신원 회장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는 후문이다.
이처럼 계열분리를 둘러싸고 오너 일가 간에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지면서 일부 계열사의 주가도 이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SK케미칼이나 SK네트웍스 등이 지배구조와 관련해 요동치는 대표적인 종목들이다. 한국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경영권이나 지배구조와 관련한 문제는 내부적으로는 상당히 민감한 문제일 수밖에 없지만 외부적으로는 주가가 상승할 수 있는 요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