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이명박 대통령과의 조찬회동을 한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오른쪽)와 이재오 특임장관(가운데), 원희룡 사무총장. 이 특임장관이 한 곳을 가리키며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
4·27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의원들의 비관적인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공천 잡음에 고물가, 대선공약 백지화 등 민심에 역행하는 악재 속에서 선거 전망이 희망적일 리 없다. 특히 그 과정에서 보여준 안상수 대표의 무능한 위기관리 능력은 “설사 재보선에서 모두 이기더라도 안 대표는 물러나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당 관계자들도 기자들과 선거결과 ‘내기’를 하면서 압도적으로 참패하는 쪽으로 걸고 있다. 보수적이고 엄격한 예측을 하기로 유명한 여의도연구소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4:0 전패론’이 흘러나오고 있다. 한 곳만 잡는다고 해도 지도부 사퇴와 조기전당대회 요구가 빗발칠 것으로 예상된다. 2:2로 선전했다고 해도 여당 쇄신론은 어떤 식으로든 터져 나올 수밖에 없을 정도로 민심이 악화된 상태다.
그래서 여권 주류도 재보선 뒤 조기전당대회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현 안상수 체제로는 내년 총선을 치를 수 없다는 것. 그런데 조기전대를 두고서도 계파 간 이해관계가 엇갈려 자칫 어정쩡한 현 체제로 내년 총선을 맞을 수도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사실 조기전대 실시를 두고 수도권과 영남권 의원들 간에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이는 이재오계-이상득계-소장파 등으로 사분오열된 여당의 복잡한 권력구도를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조기전대에 가장 절박한 계파는 바로 수도권의 친이계·소장파들이다. 특히 분당 을을 내줄 경우 수도권 의원들은 패닉 상태가 될 것이다. 다행히 재보선에서 2:2 정도로 선전한다고 하더라도 안상수 대표는 이미 식물체제가 됐다는 게 수도권 의원들의 대체적인 인식이다.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이에 대해 “일단 총선에 올인해야 한다. 친이계를 중심으로 차기 대권주자를 더 찾아보자는 말도 있지만 솔직히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총선에서 떨어지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라고 말했다. 재보선 결과에 관계없이 이재오계 및 소장파 등은 조기전대를 강하게 요구하며 활로를 모색할 계획이다.
반면 친박과 중립계열의 영남권 의원들은 조기전대에 소극적이다. 오히려 당수로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안상수 대표 체제가 박근혜 전 대표의 연착륙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더구나 가변적인 수도권 민심과 달리 안정적인 영남권에 기반을 둔 의원들로서는 조기전대가 마뜩치 않다. 당 쇄신론에 불이 붙을 경우 세대교체론으로 이어지며 영남 중진들에게 그 불똥이 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친박계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현 지도부가 물러갈 경우 대안이 있느냐. 개혁이 아니라 더 큰 개악이 될 바에야 차라리 현 체제를 유지하는 게 낫다”라는 입장을 보였다.
그래서 여당 일각에서는 “조기전대론이 유야무야되며 현 지도부가 어정쩡한 상태로 내년 총선을 맞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이는 안상수 대표 외에 대안이 없다는 친박계의 입장과도 상통한다. 이재오 특임장관이 당 대표로 나설 경우 친박계가 좌시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박근혜 전 대표가 ‘예선’인 총선을 위해 당수직에 오를 리도 없다. 이런 딜레마 때문에 친이계-소장파의 조기전대론은 변죽만 울릴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하지만 조기전대론이 조기에 꺼질 것이라는 예상은 여권의 양대 산맥인 이상득-이재오계의 최근 동향을 보면 빗나가는 듯 보인다. 두 주류가 총선과 대선을 위한 장기 대비책으로 조기전당대회를 전격 견인한 뒤 당권에 ‘올인’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여기에 소장파와 김무성 현 원내대표도 당권 도전에 강력한 뜻을 밝히고 있어 조기전대는 4파전으로 일단 전개되는 양상이다.
먼저 이상득계는 주류에 대한 재보선 책임론을, 세대교체론으로 비켜갈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다. 세대교체론이 조기전대의 핵심 이슈로 자리 잡을 경우 최대 정적 이재오 특임장관을 견제할 수도 있는 일거양득의 카드로도 활용될 수 있다. 소장파의 한 고위 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그동안 당권에서 한 발짝 비켜 있었던 이상득 의원이 내년 총선 공천을 앞두고 다시 욕심을 낼 수 있다. 재보선 패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상득 의원이 ‘대리인’을 내세워 책임론을 비켜가려고 한다는 정보를 최근 입수했다. 세대교체론으로 선제적 대응을 한다는 노회한 전략이다. 대리인은 ‘이상득 양아들’로 불리는 원희룡 사무총장일 것으로 본다. 세대교체론은 당권도전에 나설 가능성이 있는 이재오 장관을 견제하는 카드로도 유용하다. ‘올드 이미지’가 굳어진 이 장관이 조기전대에서 세대교체를 당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최근 이상득 의원 측의 한 의원이 “총선을 생각한다면 중진보단 소장파가 낫다”라고 말한 것이 화제가 된 적도 있었다. 이상득 계가 이미 내년 총선을 위한 당권잡기에 시동을 걸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소장파는 이상득계의 원희룡 총장 대표 추진설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다. 앞서의 고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상득계가 이이제이로 소장파의 당권 도전을 무력화시키려고 한다. 원 총장은 그동안 우리와 행보를 같이 했지만 사무총장직을 맡으면서 실제로 당 주류에 편입됐다. 그는 총리실 불법 민간인 사찰 정국 등을 거치면서 철저하게 ‘이상득맨’으로 변신했기 때문에 더 이상 소장파가 아니다. 세대교체를 주장할 자격이 없다. 그는 위장 소장파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상득계의 세대교체론을 감지한 소장파 내부에서는 오히려 잘 됐다며 반색하고 있다. 최근 들어 당 일각에서는 “재보선 패배를 전제로 ‘이번에야말로 당 지도부의 세대교체와 40대 기수론이 필요한 때’라는 분위기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소장파의 남경필 의원은 조기전대 추진에 대해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다음 한나라당의 전당대회는 분명히 ‘가치 교체를 위한 전당대회’가 돼야 한다. 한나라당이 새롭게 내세우고 지켜가야 할 미래지향적이고 개혁적인, ‘보수적 자유주의’를 대변할 수 있는 계기가 돼야 한다. 이런 것 없이, 단순히 나 자신의 향후 행보나 자리를 위해 당권 도전하겠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라고 말했다.
조기전대가 실시될 경우 세대교체론에 맞설 이슈로 안정개혁론과 화합관리형을 들 수 있다. 여기에는 이재오 장관과 김무성 원내대표의 행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현재 당권을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장관의 행보는 재보선 뒤 조기전대의 개최 여부를 가르는 핵심 요소다. 그가 당으로 복귀할 것이라는 관측은 이미 나왔다. 다만 그 시기와 자리가 문제다. 그 가능성은 일단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이상득 의원 측의 세대교체론에 정면 대응하지 않고 소장파 대리인을 내세워 간접적으로 당권을 장악하는 것이다. 여당의 한 친이계 의원은 이에 대해 “최근 이재오 장관이 나경원 최고위원과 당권도전을 두고 접촉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분당 을 공천과정 등을 보면 양측이 연대할 수 있겠느냐는 말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나 최고가 여권 주류의 여러 가지 오퍼를 두고 저울질을 시작한 것으로 안다. 당선 가능성 면에선 이 장관과 연대하는 것이 차차기를 노리는 그에게 유리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재오 장관이 직접 당권 도전에 나설 수도 있다는 관측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 장관이 대권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지만 현실적인 면에서 당권을 잡고 박근혜 전 대표와 권력의 한 축을 형성하는 게 장기적인 면에서 여러모로 낫다. 소장파의 한 의원도 이에 대해 “지금으로선 이 장관이 당권도전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정치에 관한 한 그는 상당히 실리파다. 이해득실을 따져 보고 당권도전으로 전격 ‘턴’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이 장관이 조기전대에 나선다면 이상득계의 원희룡 사무총장과 세대교체론 대 안정개혁론으로 정면대결을 벌일 가능성이 있다.
김무성 원내대표의 당권 도전은 ‘대안부재론’에서 계속 나오고 있다. 여권 주류가 세대교체론으로 바람몰이를 할 경우 영남권 중진들이 김무성 카드를 내세워 방어를 할 수 있다. 친이계의 한 초선 의원은 이에 대해 “최근 신 주류로 통하는 김무성 원내대표가 당권도전에 나선다면 주류를 견제하려는 비주류와 친박계의 지지로 어부지리 당선이 될 수도 있다. 여기에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들어 가장 신뢰하는 여권실세로 통하면서 직접 지원을 한다면 경쟁력은 충분하다. 조기전대로 이상득-이재오-소장파가 극한 대립을 하게 될 경우 김 원내대표가 완충지대로서 당권을 차지할 수 있다. 여기에 친박계도 그들의 DNA를 잘 알고 있는 김 대표가 차라리 나을 수 있다며 용인할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정 후반기 권력 운용 측면에서 이상득-이재오-소장파 그 누구에게도 힘이 쏠리기를 원치 않을 경우 김무성 대표를 화합관리형으로 전격 내세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김 대표도 그 틈새를 노리는 전략을 쓸 것으로 예상된다.
한나라당은 재보선이 끝나기도 전에 조기전대론에 불이 붙고 있다. 이는 악화될 대로 악화된 민심에 반응하는 여당의 본능적 대응책이다. 재보선 결과는 그 대응 강도의 강약만을 조절하는 것 외에는 의미가 없다. 하지만 조기전대가 주류의 생명연장책으로만 활용될 경우 그들의 조기낙마만 더 빨라질 뿐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나에게 계보를 논하지 말라’
나경원 최고위원이 최근 ‘강재섭계’ 논란으로 달갑지 않은 화제를 모았다. 지난 4월 1일 비공개 최고위가 열리기 전 티타임에서 조금 늦게 도착한 그는 김무성 원내대표, 홍준표 최고위원 등 ‘선배’들로부터의 뜻하지 않은 ‘환영’에 기분이 상했던 것. 특히 당 일각에서는 “안 그래도 한나라당이 남성 위주의 마초 분위기가 강한 편인데 유일한 여성 최고위원인 나경원 의원을 향해 당 중진들이 죽 둘러앉아 비아냥거리며 훈계조로 말하는 게 보기 좋지 않았다”라는 평가가 많이 나왔다.
나 최고위원 측은 본지에도 “4·1 최고위 비공개 회의 전 홍준표 최고위원이 ‘강재섭계’라고 말한 것이 ‘강재섭댁’으로 잘못 표현된 것 같습니다. 정정을 요청 드립니다”라는 이례적인 이메일을 보내왔다. 확인 결과 홍 최고가 ‘강재섭계’라고 말했기 때문에 오기였다.
당 내부나 언론에서는 이상득 의원과 친분이 깊은 원희룡 사무총장을 두고 ‘이상득 양아들’이라는 레토릭(정치적인 수사)으로 말하는 경우도 있다. 말의 성찬인 여의도 정치권 정서상 어느 정도 이해하고 넘어가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나 최고가 ‘강재섭댁’ 해프닝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향후 조기전당대회 등 큰 이벤트를 앞두고 특정 인물의 계보로 비쳐지는 것이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조기전대와 관련해 이상득-이재오계 등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는 입장에서 유쾌한 ‘농담’이 아니었을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강재섭댁’ 해프닝은 최근 들어 잘나가는 여성 의원을 향해 당의 남성 중진들이 던진 ‘질투’였다는 점에서 나 최고에게 꼭 기분이 나쁜 일만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