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위공직자의 직계 존비속 재산고지를 거부를 두고 비난이 일고 있다. 왼쪽부터 이명박 대통령, 현인택 통일부 장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청와대사진기자단 |
문제는 재산공개 대상자의 상당수가 이를 악용, 직계 존비속의 재산공개를 ‘뻔뻔하게’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상을 들여다보면 심각한 수준이다. 이대로라면 당사자들이 재산보유액을 의도적으로 낮게 조작함으로써 재산을 은닉한다는 의혹과 함께 공직자들의 재산공개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고위공직자의 측근 및 친인척비리가 판치는 현실을 감안해볼 때 그들 패밀리의 재산은닉 실태는 상상을 초월하며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도 있을 거라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고지거부 대상의 재산내역 및 취득 경위의 정당성을 신고 당사자의 양심에 맡길 뿐 검증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또 허위로 재산을 신고하더라도 경고 및 과태료 부과 등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어 고위공직자들 사이에 ‘일단 적게 신고하고 보자’는 몹쓸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는 비판도 고조되고 있다.
확인결과 재산변동 신고내용 공개대상인 중앙부처 1급 이상과 지방자치단체장, 광역의원, 교육감 등 1831명 중 476명(26%)이 직계 존비속 재산고지를 거부했다. 이는 2009년 31%, 2010년 34%에 비해 낮아진 수치지만 공개 대상자 4명 중 1명에 달한다는 점에서 그냥 넘어갈 일만은 아니다. 고지 거부율은 중앙부처 소속 대상자 677명 중 234명(34.6%)이 고지를 거부, 지방공무원(21%)보다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주목할 점은 이명박 대통령을 위시해 정부 요직에 몸담고 있는 핵심권력자들도 ‘고지 거부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이다. 이 대통령은 독립생계유지를 이유로 3년째 장남 시형 씨의 재산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왕의 아들’ 앞으로 되어 있는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 축적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일급비밀인 셈이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각각 어머니와 부모의 재산고지를 거부했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장남과 손녀 2명의 재산을,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은 세 아들의 재산을 공개하지 않았다. 또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과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 김남석 행안부 1차관, 김희중 청와대 제1부속실장, 오정규 청와대 지역발전비서관, 박홍신 청와대 정책홍보비서관, 김진모 청와대 민정2비서관, 이제호 청와대 법무비서관 등은 부모의 재산고지를 거부했다. 김백준 청와대 총무기획관은 장·차남의 재산을, 김용환 청와대 국정과제비서관과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은 모친의 재산을 비밀에 부치는 등 대통령실 소속 54명 중 무려 19명이 직계 존비속 재산을 공개하지 않았다. 임태희 청와대 비서실장의 딸은 혼인을 이유로 아예 재산고지 대상에서 제외됐다.
지방자치단체장 중에서는 충북지역 공직자들이 눈에 띈다. 최명헌 제천시장은 장녀의 재산은 신고했지만 장남과 손자 2명의 재산을 신고하지 않았고, 이종윤 청원군수는 장남과 차남, 손자 등 3명의 재산고지를 거부했다. 정상혁 보은군수도 장남과 손자 3명의 재산을 고지하지 않았고, 유영훈 진천군수는 차남의 재산은 고지했지만 장남과 손자 3명의 재산은 신고하지 않아 의문을 더했다. 김동성 단양군수는 딸의 재산고지를 거부했다. 또 34명의 충북도의원과 교육의원 중에는 권기수 김광수 김동환 김봉희 의원 등 12명이 독립생계유지를 이유로 직계 존비속의 재산을 공개하지 않았다.
주목할 것은 재산이 크게 감소했다고 신고한 이들의 ‘속사정’이다. 확인결과 재산이 가장 많이 감소한 공직자 리스트에 오른 10명 중 6명이 직계 존비속 재산고지를 거부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행정부 신고대상자 중 재산이 가장 많이 감소한 인물은 백종헌 부산시의원으로 101억 8000만 원의 재산이 감소했다고 신고했다. 하지만 그 중 84억 9000만 원은 부모 재산이 제외된 것이다. 72억 2400만 원의 재산이 감소한 최호정 서울시의회 의원도 부친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등의 재산을 고지하지 않았으며, 이상훈 경기도의회 의원도 부모재산 68억 7000만 원이 제외돼 수치상으로 재산이 크게 줄었다. 안혜영 경기도의회 의원과 김탁 전라남도의회 의원, 홍규덕 국방부 국방개혁실장도 부모재산 고지를 거부했고, 진성복 경기도의회 의원은 자녀재산 고지를 거부, ‘표면상으로’ 재산이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직계 존비속의 재산을 합칠 경우 재산 규모가 크게 늘어날 것을 우려한 국회의원들의 얌체행각은 지난해보다 더욱 두드러졌다. 18대 국회의원 292명 중 직계 존비속 재산고지를 거부한 이들은 지난해보다 2.8% 늘어난 112명(38.4%)에 달했다.
정치권 유력인사들 중에서는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장남)와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장·차남),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장남·손자 2명),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장·차녀) 등이 고지를 거부했다. 이쯤되면 곧이곧대로 공개하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분위기다.
대구경북 지역구 국회의원 중 직계 존비속 재산공개를 거부한 의원은 10명이었다. 그 중 강석호 한나라당 의원은 158억 3514만 원을 신고해 대구경북 의원 중 가장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보다 2억 6372만 원이 증가한 강 의원은 전체 국회의원 중 여섯 번째로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지만 그 역시 독립생계를 이유로 직계 존비속의 재산공개를 거부했다. 또 14.5%의 재산증식률을 보인 정수성 의원과 13.1%가 늘어난 정해걸 의원, 10.5%의 재산이 늘어난 김성조 의원 등은 직계 존비속 재산공개를 하지 않았음에도 모두 상당한 재산증식률을 보였다. 직계 존비속의 재산까지 합치면 훨씬 큰 증가률이 예상된다.
사법부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부모나 자식의 재산을 공개하지 않은 이들은 재산공개 대상자 142명 중 62명으로 43.7%에 달했다. 특히 헌법재판소의 경우 재판관 10명(퇴임한 이공현 재판관, 신임 이정미·박한철 재판관 포함)과 사무처장·사무차장 가운데 이강국 헌재소장을 포함한 8명(66.7%)이 직계 존비속의 고지를 거부했다.
공정거래위원회 소속 공직자들은 재산공개에 있어 그나마 양심적인 행보를 보였다. 공정위 소속 고위공무원 8명의 평균재산은 총 17억 5400만 원으로 전체 고위공직자 평균인 12억 8400만 원보다 많았지만 직계 존비속 재산공개를 거부한 인사는 38억 4300만 원을 신고한 장용석 상임위원 1명에 그쳤다.
어쨌든 부모와 자식 등의 재산을 꽁꽁 숨겨놓은 채 재산이 줄었다고 하는 수많은 고위공직자들의 촌극에 국민들은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의 직계 존비속 재산고지 거부의 진짜 이유가 사생활 보호가 아닌 재산증식을 은닉하기 위함이라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는 점이다. 적법한 과정을 거쳐 정당하게 형성한 재산이라면 직계 존비속 등 패밀리의 재산을 쿨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
최시중 이상득 안상수 ‘회원권 경쟁’ 하시나…
우선 이명박 대통령은 김윤옥 여사 명의의 화이트 다이아몬드(1.07캐럿)와 김창렬 화가의 서양화 ‘물방울’(700만원), 이상범 화백의 동양화 ‘설경’(1500만원) 등을 신고했다.
고위 공직자 중에는 보석류를 소지한 이들이 많았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부인 명의의 800만 원 상당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정의화 국회부의장은 1.5캐럿 다이아몬드 반지 2개와 진주목걸이를, 이상득 의원은 다이아몬드, 에메랄드, 양식 진주반지를,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은 2캐럿 다이아몬드를, 조윤선 한나라당 의원은 1.5캐럿 다이아몬드와 진주목걸이를,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3캐럿 다이아몬드를 각각 신고했다. 손재홍 광주광역시의회 의원은 배우자 명의로 금 9㎏(2400돈)을 신고했다.
김재균 민주당 의원은 남농 허건, 소치허유 등 대가들의 작품 13점(1억4600만 원)을 신고했다.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오세훈 서울시장, 이상득·유일호 의원 등도 동·서양화, 조각 등 고가의 예술품을 보유하고 있었다. 회화 5점을 1억5000만 원에 신고한 노기태 부산항만공사 사장은 2.8캐럿 다이아몬드와 캣츠아이, 피아제 시계도 소유하고 있었다. 최규식 민주당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예 1점을 신고했다.
골프·콘도 회원권을 보유한 공직자들도 많았다. 최시중 위원장은 본인과 배우자 명의로 골프·헬스·콘도 등 7개의 회원권을, 안상수 대표와 이상득 의원도 각각 7개의 골프 회원권을, 이진강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과 주강수 한국가스공사 사장 등도 5~6개의 골프·콘도 회원권을 신고했다.
이찬열 민주당 의원은 6000만 원짜리 첼로를, 주광덕 한나라당 의원은 6500만 원짜리 비올라를, 박진 한나라당 의원은 3000만 원짜리 바이올린을 신고했다. 이영애 자유선진당 의원은 벤츠와 렉서스 등 외제차 3대와 미국 시애틀에 소재한 11억 상당의 아파트를, 조영래 한국지역난방공사 감사는 트럭 등 자동차 4대와 지게차 외에도 고령토 광업권까지 소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형 자산도 눈길을 끌었다. 고승덕 한나라당 의원은 ‘고 변호사의 주식강의’ 등 3건의 저작권을 등록했고, 안경모 청와대 관광진흥비서관은 해양심층수를 이용한 만두 제조방법 등 특허권 4개와 상표권을 재산으로 신고했다. 김호연 한나라당 의원은 김구 재단에 본인과 부인 명의로 174억 4848만 원을 출연했고, 김동철 민주당 의원은 비상장 주식인 (주)광주시민프로축구단 주식 200주를 보유했다.
현금을 신고한 이도 있다. 김주현 국가보훈처 독립기념관 관장은 현금 2000만 원을, 고철기 (재)나노소자특화팹센터 원장은 현금 100만 원을 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