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가쁘게 돌아간 한 주였다. 김건모에게 재도전 기회를 준 방송분이 방영되자마자 시청자들의 반발이 빗발쳤고 결국 김영희 PD 하차, 김건모 자진 하차, 신정수 PD 투입, 그리고 한 달가량의 프로그램 잠정 중단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나는 가수다’는 표류하고 있다. 과거의 영예를 잃고 표류하던 <일요일일요일 밤에>를 <우리들의 일밤>으로 이름까지 바꾼 MBC 예능국이 꺼내든 비장의 카드 ‘나는 가수다’가 무리수로 인한 파행으로 굳어져가는 분위기다. 과연 한 달여의 재정비 이후 ‘나는 가수다’가 부활할 수 있을까.
MBC <우리들의 일밤> ‘나는 가수다’의 3회가 방영된 직후 가요관계자들 사이에서 ‘조기폐지론’이 제기됐지만 MBC 예능국 분위기는 달랐다. 김건모 재도전 논란이 거세긴 하지만 시청률이 11.8%(AGB닐슨미디어리서치)를 기록한 만큼 충분히 잘해 볼 수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성난 여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결국 MBC 임원진이 김영희 PD 하차라는 강수를 뒀고 이는 김건모의 자진하차, 다른 출연 가수들의 단체 반발로 연결됐다. 결국 MBC는 <놀러와>를 이끌어온 신정수 PD를 후임 연출로 결정하며 재정비를 위해 한 달가량의 방영 중단을 결정했다. 사실상 ‘나는 가수다’는 4회 만에 조기 종영된 셈으로 5월 초에 다시 시작될 ‘나는 가수다’는 시즌 2의 개념이 될 전망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가수다’의 갈 길은 험난해 보인다.
애초 일곱 명의 실력파 가수로 시작한 ‘나는 가수다’는 자진 하차한 김건모, 4회 방송에서 7등을 해서 탈락한 정엽 등 이미 두 명의 출연 가수를 잃었다. 김연우가 정엽을 대신해서 출연하게 됐지만 그의 본격적인 무대는 한 달 뒤에나 볼 수 있게 됐다. 문제는 김연우를 포함한 여섯 명의 가수 가운데 몇 명이 한 달 뒤에 재개될 ‘나는 가수다’에 합류할지 여부다. 이들 가수의 매니저들은 거듭해서 회의를 가지며 대책 강구에 나섰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한 매니저는 “여섯 명의 가수 가운데에는 이미 하차를 결심한 이도 있는 것 같다”면서 “MBC와 계속 의견을 주고받으며 향후 대책을 논의 중이지만 최악의 경우 여섯 명이 모두 하차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가요 관계자들은 이미 김건모 재도전이 결정된 3회 방송이 끝난 직후부터 조기폐지 가능성을 거론해왔다. 가장 큰 이유는 가수 수급이다. 한 가요계 매니저는 “기획 초기부터 무리한 설정이라는 지적이 많아 출연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한 가수들이 여럿”이라며 “상황이 이렇게 꼬여 버렸는데 과연 누가 출연하려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물론 대한민국에 가수는 많다. 그렇지만 ‘나는 가수다’의 포맷에 맞는 실력파 가수의 수는 제한돼 있다. 가창력을 인정받은 아이돌 카드를 활용할 수도 있지만 이는 ‘나는 가수다’ 본연의 매력을 후퇴시킬 위험성이 크다.
지난 3월 24일 오후 긴급회의를 마치고 나온 MBC 안우정 예능국장은 “(프로그램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할 것이다. 잘못한 점이 있다면 야단맞고 바로 고쳐나갈 것”이라면서 “현재의 포맷이 어떤 방식으로든지 변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작진은 신정수 PD를 중심으로 ‘나는 가수다’ 시즌 2를 어떻게 끌고 나갈지를 두고 회의를 거듭하고 있다. 매스컴을 통해 다양한 대책이 제시되고 있는 가운데 MBC 예능국 관계자는 “가장 큰 취지인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들의 멋진 무대를 황금시간대에 방영하고자 하는 본래 취지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기존의 서바이벌 방식을 유지할지 여부가 가장 큰 관건”이라고 말한다. 신 PD가 후임 PD로 결정되면서 ‘나는 가수다’ 시즌 2가 <놀러와> ‘세씨봉 콘서트’와 유사하게 꾸려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토크와 노래가 공존하는 무대를 만드는 방향으로 개편할 경우 그 동안의 논란에서 벗어남은 물론이고 가수 수급에도 숨통이 트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MBC 예능국이 ‘서바이벌’이라는 무리수를 둔 까닭은 단연 흥행에 있다. 예능계의 가장 핫한 트렌드인 ‘오디션’과 ‘리얼’을 살리기 위해 ‘서바이벌’ 형식을 도입한 것. 만약 ‘나는 가수다’가 시즌 2에서 ‘서바이벌’을 버릴 경우 흥행 여부는 장담할 수 없다. 게다가 ‘남자의 자격’과 ‘1박2일’의 KBS <해피선데이>는 너무나 강적이다.
현재의 성난 여론으로 볼 때 ‘나는 가수다’의 가장 올바른 선택은 프로그램 폐지다. 그렇지만 MBC 입장에서 ‘나는 가수다’는 ‘버리기엔 너무 큰 떡’이 되고 말았다. 우선 시청률이 두 배 이상 올라 3회 방송에서 11.8%를 기록했다. 잘 하면 20%대를 기록 중인 <해피선데이>와의 정면 승부도 가능하다. 광고가 완판된 것은 물론이고 음원 수익 역시 만만치 않다. 출연 가수들이 ‘나는 가수다’에 출연해 부른 곡들이 음원 시장에서 돌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 결국 ‘나는 가수다’를 버릴 순 없는 상황에서 한 달여의 방영 중단이라는 궁여지책을 꺼내들었다. 다만 ‘서바이벌’ 카드를 버릴 경우 흥행에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 이것이 현재 상황에서 가장 큰 딜레마다.
MBC 임원진의 김영희 PD 하차 결정에 대해 MBC 예능국의 반발도 거세다. ‘김건모 재도전 논란’에 부딪혔지만 21일 녹화를 정상적으로 마무리하면서 김 PD가 논란을 헤쳐 나갈 것이라 여겼던 예능국 PD들에게 이 소식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예능국장까지 지낸 김 PD에 대한 후배 PD들의 선망이 두터워 예능국 내부에서조차 ‘김 PD가 하차한 만큼 폐지하는 게 옳지 않느냐’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안우정 예능국장이 나서 “폐지는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예능국 내부조차 시끄러운 상황인 셈. 게다가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는 공정방송협의회를 통해 경영진에 정식으로 이의 제기를 할 계획이다. 일단 신정수 PD가 후임으로 결정되면서 예능국 분위기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됐다. 예능국 내부에서 논란이 계속될 경우 신 PD에게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한 MBC 예능국 관계자는 “신정수 PD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 맞은 기분일 것”이라며 “세시봉 열풍으로 극찬을 받으며 한창 잘나가던 신 PD가 독이 든 성배를 강요받은 게 아닌지 걱정의 목소리가 크다”고 전한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