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출이냐 물가냐’ 정부가 환율정책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사진은 지난 18일의 환율지표. 오른쪽은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주유소 기름값 안내판. 휘발유값이 리터당 2000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얼핏 듣기에는 정치권에서 표 계산하는 이야기 같지만 최근 경제 상황을 놓고 기획재정부 등 경제부처의 고민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지난해 6.1%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세계 수출 7위에 우뚝 올라서는 등 승승장구했던 한국 경제가 올해 들어 각종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기상이변에 따른 국제곡물가격 상승, 달러 약세가 불러온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 튀니지에서 시작된 중동발 민주화 시위가 가져온 국제유가 폭등, 일본 대지진과 엔고 여파에 따른 달러 약세 가속화 등 외부 변수 중 한국이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경제부처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딜레마를 취재했다.
정부는 지난 2월 22일 부동산 거래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가계부채 위기가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지난해 9월 도입했던 총부채상환비율(DTI·소득에 따라 받을 수 있는 대출 비율) 규제 완화 조치를 종료했다. 실소유자 위주로 비거치식이나 고정금리식 대출 등에 한해 DTI를 늘렸다고 했지만 고정금리나 비거치식 대출이 차지하는 비율이 미미해 거의 의미가 없다.
DTI규제 완화 조치를 종료하는 대신 취·등록세를 올해 말까지 50% 감면하는 한편 분양가 상한제를 폐지한다고 밝혔다. 가계부채를 잡으려면 가계부채의 가장 큰 몫인 주택담보대출이 늘어나지 않게 해야(DTI규제완화 종료) 하지만, 자칫 부동산 시장을 얼어붙게 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보완책(취·등록세 인하, 분양가 상한제 폐지)을 내놓은 것이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날 브리핑에서 “부동산 시장에 도움을 주려고 도입한 DTI 자율적용을 예정대로 종료하는 것은 800조 원을 초과하는 가계부채 때문이다. 잠재적 폭발력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면서도 “그러나 주택거래 활성화도 중요하다고 보고 보완책을 마련했다. 이는 단기간에 금융건전성을 높이고 주택시장을 활성화하는 것을 동시에 추구하는 정책 조합”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이도저도 아닌 정책이라는 것이다. 분양가 상한제 폐지도 야당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실제 실행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이처럼 정책 선택을 놓고 고민하고 있는 것 중 또 하나가 환율이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부터 수출 증진을 위한 고환율 정책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요즘 같은 상황에서 고환율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금융위기 때와 달리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때문이다. 국제유가는 이미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지 오래고, 각종 원자재도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거나 최고가에 근접했다. 곡물가도 천정부지다. 이 때문에 국내 휘발유가는 물론 각종 가공식품이나 의류 등의 가격도 상승하고 있다. 2월 소비자 물가는 전년동월대비 4.5%나 올라 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환율이 내려가 수입 물품의 가격을 낮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10% 오르면 우리나라의 소비자 물가는 0.8%포인트 오른다. 물가를 잡자고 환율을 안정시키자니 수출이 울고, 수출을 늘리자고 고환율을 그대로 두자니 물가가 부담스러운 형국이다. 정부가 올해 들어 가장 고심하고 있는 ‘성장이냐, 물가냐’는 딜레마는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기준금리도 이런 고민을 깊게 한다. 한국은행은 1월과 3월에 기준금리를 각각 0.25%포인트씩 올렸다. 물가가 불안 조짐을 보이자 시중에 돌고 있는 돈을 줄이기 위해 금리를 올린 것이다. 기준금리는 아무리 급해도 두 달 연속 올리는 일이 없다는 점 때문에 시장에서는 5월에 기준금리 추가 인상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이 문제도 그렇게 쉽지 않다. 앞서 윤 장관이 언급한 것처럼 가계부채가 800조 원을 넘는 상황에서 기준금리 인상은 대출금리 인상을 가져와 결국 서민부담을 늘리기 때문이다.
확전일로를 겪고 있는 리비아 사태는 또 다른 딜레마다. 정부는 리비아에 나가 있는 국내 기업에게 철수를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리비아의 특수한 여건 때문에 이를 강제하지는 못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리비아는 이런 일로 철수한 기업에 대해서는 사업장을 떠났다는 이유로 공사대금을 지급하지 않는 일이 다반사다. 또 철수했던 기업 소속 직원에 대해서는 비자를 다시 내주지 않기도 한다”면서 “이런 사정 때문에 리비아 철수를 권고는 하고 있지만 기업들이 제대로 따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손실을 보상해줄 수도 없으면서 무작정 나오라고 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김서찬 언론인
국제 행사·외부 변수 부각… ‘핵심부서’로
기획재정부의 대표적인 핵심부서는 금융정책국과 경제정책국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그런데 금융정책국이 이명박 정부 들어 금융위원회로 넘어가면서 경제정책국이 가장 핵심적인 부서로 꼽혀왔다. 이러한 지형에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재정부에서 인기부서 정도에 머물러왔던 국제금융국이 중요부서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껏 국제금융국은 직원들이 해외 출장이나 파견 기회를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가 많은 부서였지만 핵심부서는 아니었다. 그런데 G20(주요20개국) 정상회의와 이란 제재, 선물환 포지션 규제 등 투기자본 규제, 환율 불안과 국제원자재 가격 상승 등 국제적인 행사나 외부 변수가 크게 부각되면서 대책회의에서 빠질 수 없는 핵심부서가 되고 있다.
G20은 세계 무역 불균형 문제와 투기자본 규제, 기축통화 등의 문제를 핵심으로 다루다보니 국제금융국이 업무의 중심이 됐다. 또 이란 제재 당시에는 국내 은행과 이란 중앙은행 간 원화 결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앞장섰다. 최근에는 환율과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을 모니터링하는 임무도 맡고 있다.
국제금융국을 이끌어왔던 인사들도 승진하거나 승진을 앞두고 있다. 신제윤 국제업무관리관(차관보)은 차관급인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에 내정됐다. 김익주 국제금융국장은 1급인 금융위원회 상임위원이나 역시 1급인 자유무역협정 국내대책본부장으로의 승진이 유력하다. 차기 국제금융국장은 은성수 국제금융정책관(심의관)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손병두 국제금융과장은 지난 2월에 신설된 G20기획조정단장(국장급)으로 승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