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텔레텍의 ‘SKY’ 단말기. 화면 속 인물은 최태원 회장(왼쪽)과 박병엽 부회장. | ||
SK텔레콤은 지난 4일 공시를 통해 SK텔레텍의 지분 89.1% 중 60.0%를 총 3천억원에 팬택앤큐리텔에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재계에선 4월 초만 해도 중국공장 신설 등 의욕적으로 사업확장 노력을 펴던 SK텔레텍의 ‘급작스런’ 매각 결정에 의아해하고 있다. 최근 들어 SK가 제조업을 통한 해외진출에 대한 의욕을 수차 표명해 왔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번 SK매각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의문이 뒤따르고 있다.
의문1. 매각결정은 언제?
이번 매각건은 대학 선후배 사이로 개인적인 친분관계가 있는 최태원 회장과 박병엽 부회장 간에 ‘고공 합의’가 이뤄진 뒤에 양사 실무진의 합의 순으로 진행됐다.
박병엽 팬택앤큐리텔 부회장은 인수 얘기가 오고간 시점에 대해서 “3~4개월 전 최태원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자연스레 SK텔레텍에 대한 인수합병 얘기가 나왔다”고 밝혔다. 이를 역산하면 올 1월께 인수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는 얘기다.
하지만 일각에선 지난해 8월께부터 인수합병 논의가 있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그때부터 SK그룹의 선택과 집중에 대한 큰 그림에 대한 논의가 그룹 수뇌부에서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이와 관련, 눈여겨볼 대목은 최 회장 측근인사의 움직임. 지난 4월 초 있었던 SK그룹 인사에서 최태원 회장이 옥중에 있을 때 활동했던 SK텔레텍의 한 임원이 계열사로 전보나갔지만 인사 발표명단에선 고의인지, 실수인지 누락됐다.
보기에 따라선 이것도 SK텔레텍의 인수합병 시그널이었던 셈이다. 이와 관련, SK텔레텍에선 본격적인 실무협상은 4월1일 이후 구체화됐다고 밝혔고, 5월4일 공시 이후 직원 100% 승계조건이 명문화됐다.
의문2. 매각인가합작인가?
SK텔레콤은 SK텔레텍을 매각하면서 지분 29.1%를 남겼다. 이런 매각 방식은 삼성이 삼성자동차를 르노그룹에 매각하면서 지분 19.1%를 남긴 사례가 있다. 이에 대해 삼성은 형식적으로 남긴 지분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이에 비해 SK가 지분 29.1%를 남긴 것은 단순히 SK텔레콤이 팬택계열로부터 SKY 브랜드 사용료를 받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팬택도, SK도 ‘전략적인 제휴’라고 못박고 있다.
SK텔레콤에서는 경영권은 넘기지만, 지분에 따라 이사 선임권 등 일정부분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고, 팬택 계열에선 30%에 가까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SK텔레콤에 ‘긴밀한 협조’를 요구할 근거가 있는 셈이다.
의문3. 단지 3천억 때문에?
SK텔레텍 지분 매각으로 SK텔레콤이 받는 돈은 3천억원이다. 매해 조 단위의 순익을 남기고 있는 SK텔레콤이 이 돈을 위해 그룹에서 전략사업으로 지목한 단말기 사업을 포기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이와 관련해 최태원 회장의 오너십과 연결해 보는 시각이 있다. 최 회장은 소버린과의 경영권 싸움에서 재계의 도움을 받았다. 이번 주총에서 박 부회장의 팬택계열에서 1%를 조금 웃도는 규모의 우호지분을 사들이자 삼성전자와 LG전자에서도 백기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물론 SK의 요청도 있었다.
휴대폰을 생산하는 삼성전자나 LG전자의 백기사역은 그 반대급부가 있기 마련이다. 이미 팬택계열은 011에선 LG싸이언보다 더 점유율이 높다. 때문에 단말기 사업 확장을 시도하는 SK로선 부담스럽다. 게다가 SK텔레텍의 내수물량 1백20만대 제한 규정이 올해 말로 끝나는 데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중간발표자료 유출 등 SK텔레콤에 결코 유리하지만은 않은 이런저런 스캔들이 일어났다.
게다가 최 회장의 2심 선고 공판이 6월 초로 잡혀있다. 최 회장의 실형을 면하고 집행유예를 받는 게 SK그룹의 최대 희망사항이다. 이런 상황에서 SK가 재계나 정부와 갈등을 일으킬 만한 상황을 만들고 싶어하지 않을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게다가 SK사태 여파로 채권단과 약속한 구조조정 약속도 있다. 이미 SK생명에 대한 매각작업도 4월 말부터 속력을 내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SK는 단말기 사업을 더 확대할 수 없도록 해달라는 다른 재벌그룹들의 압력을 피하면서 단말기 제조업체인 삼성과 LG에도 휘둘리지 않는 절묘한 카드를 선택한 셈인 것이다.
이는 최 회장이나 SK그룹이 더이상 숨죽여가며 재계나 정부의 눈치만 보던 종속변수가 아닌 변화의 주체로 재기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