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여부에 따라 정부의 삼성에 대한 사정칼날의 강도가 달라질 전망이다. 사진은 서초구에 위치한 삼성 사옥을 나서는 이건희 회장.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 3월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서 현 정부의 경제정책과 관련해 “흡족하다기보다 낙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던, 이른바 ‘낙제점’ 발언으로 인해 현 정부와의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삼성과 이 회장이 뒤늦게 나서서 수습하며 일단락되기는 했지만 이 발언으로 청와대 내부 분위기가 상당히 험악해졌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이후 기업이나 사정기관 정보맨들 사이에서 삼성과 관련한 갖가지 괴소문이 유난히 많이 돌았다. 삼성과 관련한 악성루머는 정보원들 사이에서 단골메뉴였지만 낙제점 발언 이후에는 제법 근거 있는 얘기가 떠돌기도 했다.
사정기관들도 움직였다. 국세청이 삼성그룹 계열사에 대한 동시다발적 세무조사에 나선 것. 당시 삼성물산은 이미 서울지방국세청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이 발언 이후 삼성중공업과 호텔신라가 동시에 세무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계열사 세무조사에 대해 국세청이나 삼성그룹 측 모두 통상 4~5년에 한 번씩 하는 정기조사라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이러한 국세청이나 삼성 측의 설명과 달리 외부에서는 삼성에 대한 조사가 정기조사 이상의 강도로 진행됐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실제로 세무조사 기간이 통상적 세무조사보다 길었을 뿐만 아니라 서울청 1, 2국이 경쟁적으로 조사를 진행했었다. 국세청뿐만 아니라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도 삼성의 불공정거래에 대한 조사를 벌이는 등 사정기관의 초점이 삼성으로 모이기도 했다.
이처럼 한동안 삼성에 대한 사정드라이브가 걸리는 듯했으나 삼성 측의 발 빠른 대처와 외부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았다. 특히 이건희 회장이 주축이 돼서 활동하는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활동이 주요 원인이 된 것으로 알려진다. 정부도 이런 노력을 높이 샀고, 올 초로 예정되어 있던 삼성전자 세무조사를 유치위원회 활동이 끝난 이후로 미뤄주는 선심을 쓰기도 했다.
그런데 올림픽 개최지 결정이 10여 일 앞(7월 6일)으로 다가오면서 삼성 측의 고민이 다시 커지고 있다. 개최지가 결정된 이후 곧바로 삼성전자에 대한 세무조사가 시작될 예정인 데다가, 다른 사정기관들도 삼성을 압박할 만한 여러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듯한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전자에 대한 국세청의 과세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정기세무조사지만 특별조사 못지않은 강도로 이뤄질 것”이라며 “이현동 청장도 이번 조사에 깊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국세청은 최근 대기업 해외 비자금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삼성물산 출신인 ‘구리왕’ 차용규 씨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국세청뿐만 아니라 검찰에서도 삼성 관련 첩보가 보고되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아직까지 첩보 단계에 불과하지만 이재용 사장의 e-삼성 사업에 대한 내용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 주변에서는 이건희 회장의 ‘군기잡기’가 이런 정부 기관들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 적지 않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대기업에 대한 현 정권의 시선이 우호적이지 않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2년밖에 남지 않았지만 여전히 힘이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다”고 말했다.
즉 정부가 나서서 기업 비리에 대해 칼날을 들이대는 것보다도 기업이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게 이 회장의 판단이라는 것. 실제로 이건희 회장이 질책한 사안에는 계열사 간 부당내부거래, 중소기업과의 불공정거래, 임원들에 대한 일종의 전관예우 등 이 대통령이 지적한 것들과 비슷한 이슈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평창이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할 경우 사정은 달라진다. 정부에서 무턱대고 삼성에 사정 칼날을 휘두를 경우 여론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삼성은 올림픽 유치에 사활을 거는 분위기다. 이 회장은 오는 2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가 열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으로 날아갈 예정이다. 삼성 관계자는 “유치에 실패했을 경우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추려하고 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