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캐피탈 해킹으로 인한 대량 정보 유출 사태 관련 정태영 사장에 대한 징계 수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 작은 사진은 장인인 정몽구 회장. 연합뉴스 |
가장 이목을 집중시키는 대목은 현대캐피탈 정태영 사장에 대한 징계 수위. 금융당국이 정 사장에 대해 어떤 징계를 내리느냐에 따라 현대자동차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 차원에서 금감원의 징계 수위를 아슬아슬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들춰봤다.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와 동시에 M&A(인수·합병) 시장에 큰손으로 떠올랐다는 것은 재계에도 잘 알려진 이야기다(<일요신문> 992호 보도). 현대차는 현대건설에 이어 하이닉스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최근 전해지고 있다.
이미 증권사 캐피탈·신용카드사를 보유한 현대차그룹은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위해 금융업 확장도 꾀하고 있다. 이렇게 된다면 그 선봉장은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둘째사위인 정태영 현대캐피탈 사장이 유력해 보인다. 정 사장은 종로학원 정경진 회장의 장남으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둘째딸인 정명이 현대커머셜 고문과 결혼했다.
정태영 사장은 금융회사 스타 CEO(최고경영자)다. 그는 ‘카드대란’이 한창이던 지난 2003년 현대카드를 맡은 이후 급속도로 회사를 키워냈다. 정 사장이 취임할 때만 해도 1.8%에 불과하던 현대카드의 시장점유율은 8년 만에 16%까지 뛰어올랐다. 200만 명에 불과했던 회원 수도 950만 명으로 늘어났다.
현대카드의 급성장 배경에는 독특한 마케팅 기법과 디자인을 구사한 정 사장의 전략이 있었다. 그는 카드에 A부터 Z까지 알파벳을 붙이는 독특한 마케팅 기법을 구사했다.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가 디자인한 카드를 선보이기도 했다. 정 사장이 탁월한 경영 능력으로 ‘정몽구 회장의 사위’라는 꼬리표를 스스로 떼어냈던 셈이다. 이후 금융권에서 많은 이들이 정 사장을 ‘정몽구 회장의 사위’보다는 ‘스타 CEO’로 대접해왔다.
승승장구하던 그의 발걸음에 제동이 걸린 것은 지난 4월 발생한 현대캐피탈 해킹 사태 때문이다. 국내외에 거주한 해커에게 해킹을 당한 현대캐피탈의 전산망에서는 175만 명의 고객정보가 유출됐다. 해킹 사태보다 더 문제가 됐던 것은 현대캐피탈의 후속 대응.
최초 해킹 사실이 드러났을 당시 현대캐피탈 측은 42만 명의 정보가 해킹당했다고 밝혔지만 금융당국의 검사 결과 실제 피해 고객이 175만 명에 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당국은 해킹 사태를 축소하려 했던 현대캐피탈 측에 더욱 무거운 책임을 물으려 하고 있다. 일단 175만 명에 달하는 개인정보가 유출된 점을 고려, 현대캐피탈에 대해서는 기관경고 조치가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금감원이 정태영 사장에 대해서는 어떤 징계를 내릴까. 정 사장은 이번 사건의 원인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정황이 금감원 검사에서 포착되진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미친 사회적 파장과 최고경영자로서의 책임을 물어 그에게 어떤 식으로든 징계가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정 사장에 대한 징계가 어느 정도 선에서 이뤄질지는 금감원 내부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다만 ‘경고’ 내지는 ‘직무정지’의 수준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회사 임직원에 대한 징계는 무거운 순서대로 ‘해임권고-직무정지-문책경고-주의적경고-주의’ 순으로 되어 있다.
이에 대해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직무정지까지 내려질 가능성은 크지 않고 문책경고나 주의적경고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다른 금감원 관계자는 “최근 들어 금융기관에서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데다 도덕적 해이까지 겹쳐 의외로 높은 수준의 징계가 내려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정 사장에게 최악의 시나리오는 직무정지 이상의 징계다. 만약 이렇게 되면 정 사장은 대표이사직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게다가 앞으로 4년간 금융회사 임원으로 선임될 수 없다. 문책경고 이하의 징계가 내려지면 대표이사직 유지가 가능하게 된다. 캐피탈·카드사 관련 법률인 여신전문금융업법에 따르면 최고경영자가 금융감독기관으로부터 문책경고를 받더라도 신분상 불이익을 준다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정 사장이 은행·보험·증권 분야의 경영자였다면 문책경고만 받아도 3년간 금융회사에 재직할 수 없다.
정 사장이 직무정지 이상의 징계를 받는 것은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도 큰 타격이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캐피탈과 카드의 급성장으로 자동차·제철·건설·이외의 새로운 ‘캐시카우’(현금창출원)가 생겨났다. HMC투자증권을 출범시키고 금융부문을 확장하려는 마당에서 ‘믿고 쓸 수 있는’ 정 사장이 4년간 금융회사 임원에 선임될 수 없다면 현대차그룹의 장기 전략에 차질이 생기는 것은 불 보듯 빤하다.
이런 상황 때문인지 현대캐피탈뿐만 아니라 현대차그룹에서도 금감원의 징계 수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물론 오너 일가 신상에 관한 일이기도 하다. 현대차의 한 관계자는 “정 사장의 직접적 책임이 없기 때문에 최악의 사태는 면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만에 하나의 상황을 대비해 금감원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 내부에서는 정 사장이 진동수 전 금융위원장 시절에는 금감원 강연을 할 정도로 금융당국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김석동 위원장이 취임한 이후에는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점을 변수로 보고 있다. 금감원은 다음 7월 중 제재심의위원회를 열어 늦어도 8월까지 현대캐피탈에 대한 징계 대상과 강도를 확정할 것으로 보인다.
탄탄대로를 걷던 정 사장이 맞닥뜨린 첫 번째 위기. 그가 과연 위기를 무사히 넘어설 수 있을지 현대차그룹뿐만 아니라 재계도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