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이번 주제를 잡으면서 적지않은 고민에 빠져야 했다. 하지만 어차피 필자는 도덕 선생이 아닌 부자학 선생이고, 이 코너는 부자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장이기 때문에 그냥 이 주제에 관련된 ‘특이한’ 부자 두 사람을 소개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부자가 되는 길은 전부 긍정적이거나 바람직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니 좀더 솔직히 들여다보면 부정적인 요소가 더 많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가끔은 남들에게 부풀려서 다소 개운치 않은 이득을 취해서 부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나쁘게 표현하면 ‘사기성이 농후한 이’들이 부자가 되는 일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서울 강북에 거주하는 김아무개씨는 3~4개월마다 사업자등록을 새로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주변에서는 “신규사업자 등록에 관한 한 세계기록보유자일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도 한다. 필자가 전해들은 김씨의 재산 불리기에 대한 ‘독특한’ 방법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이렇다. 그는 새롭게 건축된 빌딩의 1층을 세 얻어서는 슈퍼마켓을 개업한다. 보통 슈퍼마켓은 지하가 보통이다. 이유는 슈퍼마켓의 마진이 보통 15~20% 이내로 비교적 적기 때문에 임대료가 비교적 저렴한 지하가 유리하기 때문이란다. 물론 대기업이 뒤를 받쳐주는 소위 메이커 슈퍼마켓은 1층에 버젓이 자리를 잡기도 하지만 일개 개인이 신축 건물의 1층에 슈퍼마켓을 내는 경우는 흔치 않다.
김씨는 보증금 1억원에 월 임대료 1백만원을 내고 50평을 얻어서 슈퍼마켓을 차리고는 온갖 생필품(라면, 분유, 휴지 등)들을 근처의 경쟁 슈퍼들보다 약 10% 정도 싸게 판다. 개점 첫날은 4만5천원 정도 하는 쌀 20Kg을 3만5천원에 개점 축하행사 명목으로 팔아대고는 지나가는 할머니를 불러들이면서 “어머님 반갑습니다”를 연발해댄다. 이렇게 약 보름 정도 개점 행사와 엄청난 세일행사를 해대면 50평짜리 슈퍼마켓은 바글바글해지고 엄청나게 성황을 이룬다.
보름쯤 지나면 김씨는 동네의 부동산업소에 아무도 몰래 가서는 브라질행 비행기 티켓을 보여주면서 “브라질에 이민 간 동생이 모시고 계신 어머니가 위독해서 브라질로 바로 가야한다”는 이야기를 꾸며댄다. 김씨의 이런 가게는 목돈의 퇴직금을 싸들고 부동산 중개업소를 기웃거리는 정년 퇴직자들이나 명퇴자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유혹의 대상이 된다.
이들은 매시간 수십 명이 바글바글대는 슈퍼마켓의 매력에 금세 빠져들게 된다. 이들은 눈 앞에서 하루에 수백만원 넘게 매출이 나는 것을 보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비록 일 매출은 수백만원을 육박하나 순익은 오히려 마이너스 수십만원이 나는 슈퍼마켓이다.
어리숙한 이들이 권리금으로 5천만원을 내겠다고 하면 “너무 쉽게 넘기는 것 같다”고 하면서 마지못해 넘기는 듯 시늉한다. 하지만 그 순간 바로 3천만원 이상(개점행사와 세일로 손해본 약 1천5백여만원을 제외하고도)을 챙기는 김씨는 이 방면의 ‘프로’인 셈이다.
김씨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슈퍼마켓 넘기기, 목욕탕 넘기기, 술집 넘기기를 10여 차례 해서 10억원이 훨씬 넘는 돈을 벌어들였다. 목욕탕 넘기기는 ‘무료목욕권’을 남발해서 손님을 끌어들였고, 술집 넘기기는 미모가 뛰어난 전직 탤런트급의 여성을 마담으로 활용해서 손님을 당긴 다음에 넘기는 것이다.
재미를 보고난 후에는 모은 돈을 아파트와 빌딩 매입에 투자하고 또 파는 과정을 10여 차례 하면서 꽤 재미를 보았다고 한다. 현찰로 50억 이상이 모이자 ‘이제는 어느 정도 되었으니 쉬어야겠다’고 마음 먹었으나 그것도 마음뿐, 지금도 가끔 왕년의 실력을 발휘해서 ‘추억의 점포 넘기기’를 하곤 한다고 필자에게 고백했다.
서울 강남에 사는 박아무개씨도 역시 가게 넘기기의 달인급 선수인데, 그 방식은 좀 다르다. 그는 종업원에게 넘긴다. 조그만 점포를 오픈하고 종업원을 세 명 정도 고용한 후에 어떻게 일을 하는지를 면밀히 관찰한다. 그중에서 쓸 만한 친구를 점 찍어두었다가 열심히 훈련시킨다.
점포가 어느 정도 돌아갈 정도가 되면 자신은 새로운 점포를 물색한다. 그리고 이 점포는 미리 점찍어둔 성실한 종업원에게 넘기면서 대신 물건대금을 받는 것이다. 물론 돈이 없는 종업원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외상도 해주면서 소유권을 자신이 가지고 있다가 물대를 전부 갚으면 점포를 완전히 넘겨주는 방식을 택했다.
박씨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점포를 열고 키워놓고는 쓸 만한 종업원에게 넘기고 더 큰 새로운 점포를 신규로 열고 이를 또 다른 종업원에게 넘기는 방식으로 해서 안전하게 키워놓은 값(권리금 형태)과 물건 값에 이윤을 붙여서 이득을 챙기는 방식으로 돈을 모았다. 물론 점포를 넘겨받은 종업원도 사장이 될 수 있으니 서로 좋은 방식이긴 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게 또 ‘경제의 논리’인 셈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점포에 팔리지 않는 물건들이 쌓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에도 돈 벌어들이는 데에 귀신 같은 재주를 가진 박씨는 눈속임 수법으로 이런 위기를 극복한다.
팔리지 않은 물건들에 대해 종업원들에게는 매입 가격을 절대로 노출시키지 않고 자신이 직접 도매상에게 결제를 한다. 종업원의 입장에서는 도대체 점포와 창고에 쌓여 있는 물건 값이 얼마인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어떻든 점포는 운영이 잘 되니까 점포 주인인 박씨의 “인수하라”는 말에 선뜻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박씨는 거의 팔리지 않은 물건까지 종업원에게 넘겨서 세 배 이상 이득을 챙기는 일도 있었다. 제법 재산을 모으고 업계에서 명성도 제법 쌓은 박씨인지라 ‘이제 더 큰 욕심 내지 말아야겠다’ 하면서도 가끔 추억의 ‘종업원 넘기기’를 한다고 한다.
남으로부터 너무 많은 이득을 빨리 보려고 하는 경우에는 김씨나 박씨와 같은 일들을 가끔 저지르게 된다. 이들은 술자리에서 술이 좀 과해지면 “교수님, 제가 나쁜 놈입니다”라며 자기 반성인지, 푸념인지 명확치 않은 하소연을 쏟아내곤 한다. 그렇다고 필자가 그들을 크게 나무라거나 탓할 수가 없다. 대신에 그들의 심적 안정을 도모해 주려고 이런 말을 전한다.
“미국에서도 1800년대에는 엄청난 과오를 저지르면서 부자가 된 이들이 많습니다. 부자가 되고 나서 그들은 자신이 축적한 부 가운데 상당수를 자발적으로 사회에 돌리면서 심적 안정과 사회적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한때 문제가 있었던 미국의 부자들은 거의 전부 종교를 절대적으로 믿고 있습니다.”
필자는 김씨와 박씨 같은 이들이 종교에 심취해서 마음을 순화하고 벌어들인 돈 중의 일부를 고아원과 양로원 등에 보내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특이한’ 부자들이 범부인 필자의 평범한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서울여대 경영학과 교수
<부자도 모르는 부자학개론>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