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결합 중국 승인 늦어질 듯…장쑤성 공장 내 ASML 장비 반입은 미국이 불허
#최태원 회장 "새로운 방법론 필요"
올해 SK하이닉스는 인텔 낸드플래시(낸드) 사업 인수를 위해 해외에 법인을 연이어 신설해왔다. SK하이닉스는 3분기까지 인텔 낸드 사업 인수를 주관하는 ‘낸드 프로덕트 솔루션’ 법인을 15개나 신설했다. 법인 설립 지역은 미국, 대만, 캐나다, 멕시코, 중국, 영국, 이스라엘,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폴란드 11곳이다. 이를 위해 SK하이닉스는 낸드 프로덕트 솔루션 법인에 지난 3월과 9월에 각각 1124억 원, 412억 원가량을 출자했다. 누적 출자 금액은 1535억 원에 달한다. 로버트 크룩 인텔 부사장을 신설 법인의 최고경영자(CEO)로 내정해놓기도 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신설 법인은 인텔 낸드 사업 인수와 관련한 헤드쿼터(본사) 역할을 할 것”이라며 “회사 설립과 관련한 작업 비용과 함께 각 해외 지사를 관리하는 자금을 마련하는 목적으로 자본금을 확충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SK하이닉스는 90억 달러(약 10조 3000억 원)에 인텔 낸드 부문 및 SSD 사업 부문(중국 다롄 공장)을 인수한다고 밝혔다. 이후 1년간 경쟁 당국의 기업결합 승인 심사를 받아 왔다. 심사 대상 8개 국가 가운데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를 비롯해 미국·유럽연합(EU)·영국·대만·브라질·싱가포르 등 7개 국가에서 모두 승인을 받았다. 중국 규제 당국만 남은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미·중 무역 갈등으로 인해 중국 당국의 승인이 늦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를 SK하이닉스도 인정했다. 지난 10월 노종원 SK하이닉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3분기 실적 발표 후 컨퍼런스콜에서 “올해 인텔 낸드 사업부 인수를 마무리하는 것이 목표고, 중국 당국 승인만 남겨뒀다”며 “3분기 말로 계획한 중국 승인이 미뤄지고 있지만, 중국 정부도 올해 안에 승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중국이 미국의 반도체 관련 M&A에 승인하지 않았던 전례가 있다. 지난 3월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업체인 미국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와 일본 반도체 기업 고쿠사이일렉트릭이 체결한 22억 달러(2조 5000억 원) 규모의 M&A는 무산됐다. 미국의 수출 규제 등에 반발한 중국이 두 기업 간 M&A에 대한 독과점 심사를 고의로 9개월 이상 지연시킨 것이 무산의 배경으로 꼽힌다. 어플라이드는 인수 계약을 취소하면서 1750억 원의 위약금도 지불했다. 2018년 7월 퀄컴의 네덜란드 반도체 회사 NXP 인수도 중국의 심사 지연으로 무산됐다. 퀄컴은 위약금으로만 약 2조 3000억 원을 물어줬다.
SK하이닉스의 중국 장쑤성 우시 D램 공장 첨단화 계획도 미·중 갈등으로 인해 차질을 빚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중국 D램 반도체 공장에 네덜란드 ASML이 독점 생산하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들이려 했지만, 미국이 이를 불허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지난 11월 22일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그 문제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고, (해당) 기술이 매우 첨단 기술로서 민감하고 국가 안보에 리스크(위험)가 될 수 있다라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미국 정부 반대로 인텔의 중국 내 반도체 생산 확대 계획도 무산됐다.
이 같은 미·중 갈등은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지난 3월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에 선임된 이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코로나는 단기간 임팩트이고 미·중 무역 갈등은 지속해서 계속 받게 될 것”이라며 “미국과 중국의 글로벌 공급망과 관련한 갈등은 1~2년 안에 끝날 문제가 아닌 만큼 새로운 방법론이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단기적인 차입금 증가 불가피
이런 가운데 인수자금 조달에 따른 재무 부담은 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총차입금은 지난 2018년 말 5조 3000억 원 수준에서 올해 3분기 15조 9000억 원으로 3배가량 증가했다. 반도체 산업 특성상 매년 공장(Fab)에 조 단위 시설 투자를 집행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3분기 기준 SK하이닉스의 부채비율과 차입금 의존도는 각각 41.8%, 19%로 여전히 탄탄한 재무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향후 인텔 낸드 관련 인수대금 90억 달러를 투입하면 재무안정성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
지난 6월 나이스신용평가는 “인텔 낸드 사업부 인수 대금 지급 일정을 감안하면 단기적인 차입금 증가는 불가피할 것이다. 2019~2020년 낸드 부문에서 연간 2조 원 안팎의 영업적자를 냈다”면서도 “다만 업황 호조로 현금창출능력이 크게 확대돼 인수 대금의 일부를 자체 현금흐름으로 충당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3월 한국기업평가는 “인텔 낸드 사업 인수가 낸드 사업 경쟁력 강화에는 긍정적이나, 대규모 투자로 재무안정성이 저하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6월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SK하이닉스의 신용전망을 종전 ‘부정적’에서 ‘신용등급 조정 검토’로 변경했다. 기업신용등급(Baa2) 및 선순위 무담보 채권등급에 대한 등급 하향 조정 검토에도 착수했었다. 이후 9월 무디스는 SK하이닉스를 하향 검토 대상에서 해제했지만 “인텔 낸드 사업 양수가 마무리된 후 내년부터 차입금 축소 의지 및 역량과 관련한 불확실성”을 이유로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유지했다.
그나마 장기 불황이 예상됐던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빠르게 회복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요인이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12월 7일 PC용 D램(DDR4 8GB) 현물가격은 3.305달러를 기록했다. 최근 가격이 상승세로 돌아서 2주간 4% 이상 올랐다. 최근 오미크론 변이까지 등장하면서 비대면 수요가 다시 늘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 특수를 맞은 반도체 업계 입장에선 반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앞서 시장에선 D램 가격이 올해 4분기부터 본격적인 다운사이클(업황 부진)로 접어들면서 혹독한 ‘반도체 겨울’을 겪을 것이라 예상이 나왔다. 실제 PC용 D램은 지난 3월 5.30달러로 연중 최고점을 찍은 뒤 지속해서 하락해 지난 11월 22일 3.168달러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트렌드포스는 “내년 D램 수요 증가율이 저조함에도 공급량 확대로 인해 반도체 가격이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강호 대신증권 연구원은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 전환이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다”며 “서버향 수요 강세, 모바일향 D램의 견조한 수요, 공급차질 이슈의 완화 등 IT 업체의 재고 축적이 진행된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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