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J그룹이 6월 2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통운을 글로벌 7대 전문 물류기업으로 육성 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대한통운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CJ그룹이 선정되자 증권가와 재계에서는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오가고 있다. 일단 인수 가격이 너무 높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앞으로 나머지 인수 절차를 순조롭게 진행한다면 CJ는 대한통운 지분 37.6%(858만 1444주)를 얻게 된다. 주당 21만 5000원을 제시했으니 그 비용만 1조 8450억 원이다.
여기에다 지난 2008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한통운 인수 당시 풋백옵션을 조건으로 참여했던 대상, 롯데쇼핑 등 전략적 투자자(SI)들이 태그얼롱(Tag-Along, 최대주주가 보유 지분을 매각할 때 2, 3대 주주가 함께 매각할 수 있는 권리)을 행사할 경우 인수 금액은 2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CJ 측은 “인수 자금을 마련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CJ는 지난 6월 29일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번 인수전에 컨소시엄으로 참여한 CJ제일제당과 CJ GLS가 5 대 5의 비율로 인수 자금을 분담할 것”이라며 “CJ제일제당은 보유 현금과 삼성생명 주식의 유동화로, CJ GLS는 CJ(주)를 대상으로 5000억 원의 유상증자를 검토하고 있으며 기타 자금은 차입을 통해 조달할 계획”이라고 자금 마련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밝혔다.
CJ는 그러면서 “자금 운영 안정성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시 말해 일부에서 우려하는 자금 압박이나 그룹 재무구조에 악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높은 인수 가격과 자금 마련 방안에 대해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는 분위기다. 불신은 특히 증권가에서 심하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증권사들은 CJ의 높은 인수 가격을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들 시선의 초점은 대부분 컨소시엄으로 참여한 CJ제일제당에 맞춰져 있다. CJ제일제당과 대한통운 간 발휘할 수 있는 시너지 효과가 의심스러운 데다 CJ제일제당의 보유 현금과 삼성생명 주식까지 내다 팔면서 무리하게 인수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또 관련이 별로 없는 대한통운 인수에 동원돼 CJ제일제당이 당초 계획했던 해외 바이오기업 인수에 대한 기대감마저 상실될까 염려스럽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점을 종합해볼 때 결국 문제는 시너지 효과다. 여기저기서 제기하는 ‘높은 인수 가격’ 역시 시너지 효과를 고려할 때 그렇다는 것이다. 알려진 바로는 CJ그룹의 전체 물류비는 7000억 원 정도. 경쟁 상대였던 포스코는 약 2조 원이다. 물론 CJ 측은 “대한통운 인수를 발판으로 그룹의 물류사업을 2020년까지 20조 원 규모로 키워 글로벌 7대 전문 물류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CJ GLS와 사업이 겹친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시너지 효과를 만끽하기는커녕 대규모 구조조정이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물류업계 관계자는 “사업 특성상 CJ가 대한통운을 인수한다면 꽤 큰 구조조정이 있을 것”이라며 “두 회사가 같이 있다면 센터와 트럭(운송수단)이 많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금융권에서 합병 후 지점을 줄이는 것과 비슷하다”고 부연했다. 그는 또 “두 물류회사의 인수합병으로 효과를 보려면 센터를 줄이되 대형화해 센터 가동률을 100%로 끌어올리고 공차율을 줄이면 된다”고 설명했다. 대한통운노동조합에서 CJ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 대해 강력 반발하고 구조조정에 대한 우려를 적극 표명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CJ의 생각은 다르다. 이관훈 CJ(주) 대표는 인수전 참여 전부터 “대한통운과 CJ GLS는 같은 물류사업이지만 사업의 특성과 주력사업, 고객군 등이 다르기 때문에 양사를 통합하면 최고의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29일 기자간담회에서도 이 대표는 “절대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진행할 계획이 없다”고 못 박았으나 어떤 형태로든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이러한 우려에도 CJ는 왜 대한통운을 그렇게 인수하려 했던 것일까. 사실 CJ는 그동안 여러 차례 대한통운 인수에 강한 의지를 피력해왔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대한통운 인수전이 몇 차례 연기됐지만 그래도 CJ의 의지는 꺾일 줄 몰랐다. 지난 4월 8일에는 이관훈 대표가 직접 “대한통운을 인수한 뒤 그룹의 주력 사업으로 키워 글로벌 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는 것이 이재현 회장의 생각”이라며 대한통운 인수는 총수의 뜻임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포스코 CJ 롯데의 3파전으로 흘러가던 대한통운 인수전은 금호터미널이 분리 매각되면서 롯데가 먼저 포기하고 포스코와 CJ의 각축전이 됐다. 그러다 갑작스레 크나큰 변수가 돌출했다. 지난 6월 23일 삼성SDS가 전격적으로 대한통운 인수에 참여하기로 밝힌 것이다.
올 초 고순동 삼성SDS 대표가 직접 “대한통운 인수처럼 회사를 키우는 관점의 M&A를 고려한 바 없다”고 잘라 말한 바 있어 삼성SDS의 대한통운 인수 참여는 시장을 놀라게 하는 데 충분했다. 더욱이 삼성SDS가 참여한 쪽은 사촌기업인 CJ가 아니라 포스코인 데다 이전부터 나돌던 ‘CJ와 삼성SDS가 연대할 것’이라는 업계 소문도 완전히 빗나가버린 것이어서 충격은 더 컸다.
CJ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CJ는 삼성 일가를 비난한 것은 물론 대한통운 인수 자문사였던 삼성증권이 계약해지를 함에 따라 삼성증권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고려했다. 또 “대한통운 입찰도 재검토하게 됐다”며 극단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CJ는 입찰에 참여했고 마침내 우선협상대상자 자격을 따냈다.
삼성SDS의 참여는 대한통운의 인수가격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CJ는 주당 15만~17만 원이 적정한 수준이라던 시장의 평가보다 훨씬 높게 써낼 수밖에 없었다. 한 증권사 M&A팀장은 “솔직히 19만 원 정도일 것으로 알았는데 20만 원을 넘길 것이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했다”며 “결과적으로 19만 원을 써냈다면 포스코-삼성SDS에 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CJ도 “입찰 마지막 부분에 포스코-삼성SDS 컨소시엄이 구성되면서 다소 가격이 상승”했다며 인정하는 부분이다. 이 말은 즉 높은 가격에 인수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CJ 측은 “무리한 가격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시장의 평가대로 인수 가격 대비 시너지 효과가 그리 크지 않다면 굳이 대한통운을 비싼 값에 인수할 필요가 있을까. 과거 몇 차례 M&A를 성사시킨 바 있는 대기업 관계자는 “M&A라는 것이 막판에 닥치다보면 완전히 냉정해질 수는 없다”며 “오기도 좀 발동하지 않았을까”라고 조심스레 말했다. 즉 사촌기업인 삼성에 또 다시 당하지 않겠다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의중이 담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삼성과 CJ 간의 ‘2차전쟁’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지난 1994~1995년 CJ그룹이 삼성그룹에서 계열분리한 데서 비롯된 갈등과 삼성 측이 이재현 CJ 회장의 집 정문을 볼 수 있도록 CCTV를 설치한 것을 ‘1차전쟁’, 이번 인수전을 ‘2차전쟁’으로 표현한 것이다.
삼성과 CJ 두 기업은 모두 이 같은 해석에 손사래를 치고 있다. 삼성그룹은 삼성SDS의 대한통운 인수전 참여에 대해 “사전에 보고받거나 관여하지 않았다”고 해명했고 CJ그룹은 삼성을 비난한 신동휘 홍보실장(부사장)을 전격 교체하면서 진화에 나섰다. 또 CJ의 한 관계자는 “처음엔 많이 서운했지만 앞으로 사업을 하자면 (삼성과) 잘 지내야 하지 않겠느냐”며 사태가 확산되는 것을 경계했다. 현대차-현대그룹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재벌기업들은 대부분 집안싸움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대한통운 인수전은 CJ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첫 단추를 끼웠다. 그러나 완전히 진화되지 않은 불씨처럼 여전히 조마조마한 상태다. CJ로서는 높은 인수 가격이 부담이 될 것이라는 시장의 우려와 시너지 효과에 대한 의심을 불식시켜야 하며 대한통운 노조의 반발도 무마시켜야 한다. 또 삼성 입장에서는 인수는커녕 ‘사촌기업에 딴지를 걸었다’는 이유로 실추된 이미지를 회복해야 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모색해야 한다.
채권단 역시 대한통운 노조의 반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또 CJ의 실사 과정에서 인수 가격이 조정되는 일도 배제할 수 없다. 대한통운 인수전이 비록 일단락되긴 했지만 이래저래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
임준표 언론인
황태자 밀어주기 ‘헛발질’
▲ 이재용 사장 |
세간에서는 이재현 CJ 회장이 사촌동생인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삼성SDS 개인 최대주주)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었으나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여전히 CJ-삼성SDS의 협력구도가 점쳐지고 있었다. 올 초 고순동 삼성SDS 대표가 직접 “대한통운 인수는 없을 것”이라고 못 박기도 했다. 삼성SDS의 인수전 참여를 두고 말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삼성SDS의 참여는 비밀리에 전격적으로 진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발표 직후에야 삼성 내 직원들도 대부분 깜짝 놀랐기 때문이다. 삼성SDS가 굳이 물류회사인 대한통운 인수전에 뛰어들 이유가 없는 데다 경영권도 없는 4.99%의 지분만 참여하겠다는 것 자체가 의문일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삼성과 CJ의 2차전쟁’, ‘삼성이 CJ를 탈락시키려 한다’는 등의 얘기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삼성SDS의 참여에 대한 분석을 발 빠르게 진행한 사람도 많다. ‘과연 삼성SDS가 계획하고 있는 신사업이 무엇인가’를 정조준하며 관련 주식을 예의주시한 것이다. 대한통운 인수 실패 후 삼성SDS가 자체적으로 물류사업에 진출할 뜻이 있고 오래 전부터 신성장동력으로 물류사업을 지목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의 후계작업의 일환으로 대한통운을 인수하려 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재용 사장은 삼성SDS의 지분 8%가량을 보유하고 있는 개인 최대주주다. 따라서 삼성그룹 측이 “그룹과 전혀 관계없다”고 공식 부인했지만 삼성SDS의 대한통운 인수전 참여를 이건희 회장이나 이재용 사장이 까맣게 몰랐을 리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이에 덧붙여 개인 최대주주로 있는 삼성SDS의 덩치를 키우고 이재용 사장에게 물류사업이라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 후계구도의 바탕을 마련하려는 의도일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이를 삼성의 신수종사업과도 연결시킨다면 일거다득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대한통운 인수전이 CJ의 승리로 돌아감으로써 이런 관측과 예측이 모두 빗나가버렸다. 굳이 맞는 것이 있다면 인수 가격을 높여놔 CJ와 이재현 회장에게 ‘골탕을 먹인 것’뿐이다. 하지만 구원(舊怨)에 이어 또 다시 사촌기업인 CJ의 발목을 잡았다는 이미지 실추, 인수전에서 탈락해 구겨져버린 체면 등 삼성 입장에서는 골탕을 먹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할 듯하다. [임]
‘몰카 소동’으로 앙금 켜켜이
▲ 이재현 회장 |
이건희 회장은 1994년 10월 당시 이학수 비서실 차장을 제일제당 대표이사로 보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손경식 회장과 이재현 회장을 무력화시키려는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제일제당을 빼앗으려는 포석”이라는 CJ 측과 “경영을 도와주려 했다”는 삼성 측 간에 설전이 오갔다.
이어 삼성 측은 이재현 회장의 집 정문을 볼 수 있는 CCTV를 설치했다가 CJ 측 항의로 철거한 바 있다. CCTV를 설치한 목적이 이재현 회장의 집으로 드나드는 사람과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라는 얘기가 많았다. 1997년 CJ가 삼성그룹에서 완전히 계열분리됨으로써 두 기업은 상처와 앙금을 남긴 채 각자의 길을 가게 됐다. [임]